'무빙' 일본 매체 리뷰 - 현실적인 드라마가 된 이유
일본 매체 '리얼사운드'에 올라온 칼럼입니다.
스포일러 없이 작품 소개를 잘 해준 것 같아서 옮겨봤어요.
https://realsound.jp/movie/2023/08/post-1407704.html
<무빙>이 현실적인 드라마가 된 이유
슈퍼히어로 작품과의 유사점
글: 오노데라 케이
<기생충>(2019),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영화와 드라마 업계. 이번에 시즌 1이 방영 중인 <무빙> 또한 스케일 큰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리즈다.
한국의 디지털 만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본 시리즈는 초능력 배틀과 청춘 러브 스토리, 패밀리 드라마를 접목한 과잉스러운 내용이지만, 이 요소들이 각각 연결되면서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무빙>의 근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웹툰은 모바일 기기에서 읽는 것에 특화된 세로 스크롤, 풀 컬러 형식의 만화를 말하며 한국에서는 인쇄물 만화와 견줄 만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드라마화돼 화제를 모은 <이태원 클라쓰>도 웹툰 작품이 원작이다. <무빙>의 원작자 강풀은 그런 웹툰의 선구자 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웹사이트에 만화를 발표하면서 독자적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웹툰 플랫폼 카카오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여러 영상 작품의 원작을 제공했다. 그의 만화가 가진 매력은 예상을 뛰어넘는 발상의 이야기에 있다. <무빙>은 그런 원작자가 직접 각본을 맡았기 때문에, 그의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이야기의 한 축은 주인공 김봉석(이정하)의 고3 학창 생활. 그는 감정이 고조되면 몸이 공중에 뜨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한효주)한테서 어릴 시절부터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받은 봉석은, 남들이 보는 상황에서 공중에 뜨지 않도록 발목에 모래주머니, 가방에는 아령을 넣고서 등교하고, 체중을 늘리기 위해 많은 양의 식사를 한다.
이정하는 봉석을 연기하기 위해 무려 30kg을 증량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배역에 맞춰 체중을 급격히 늘리고 줄이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연기 방식이지만, 건강상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 행위여서, 요즘은 그러한 배우의 노력을 무조건적으로 칭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원래부터 캐릭터에 가까운 체형의 배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도의적으로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정하는 본래 애교가 매력적인 신인 배우여서, 어머니의 사랑과 요리를 잔뜩 먹고 자란 고등학생 봉석이라는 역에 잘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아직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봉석은 전학생 소녀 장희수(고윤정)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 앞에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들떠서 자꾸만 허공에 떠오를 것 같다. 마치 조건반사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귀엽다. 또한 성실한 반장 이강훈(김도훈)도 희수에게 연애 감정을 품고 맞서기 시작하는 등, 그들의 학창 생활을 그리는 스토리는 초능력 로맨틱 코미디의 양상을 띄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연애를 하면서도 매일매일 입시준비를 하는 등, 그들이 상당히 빡센 고교 생활를 한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대학 입시가 그 이후의 인생을 결정한다고까지 하는 한국의 가혹한 입시 환경이 있다. 일본에 비해 진학률이 높은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대학 입시를 목표로 노력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일상생활에 대한 의식도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 희수는 류승룡이 연기하는 아버지의 치킨집이 잘 되지 않아 학비를 걱정하고, 지망을 바꾸면서까지 대학에 붙으려고 날마다 노력을 계속한다. 같은 고교생 드라마라도 한국과 일본은 그런 면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암살자의 습격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왔다는 프랭크(류승범)는 1990년대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가 조직한 초능력자들로 구성된 블랙옵스팀, 즉 비밀 작전 부대에 소속된 자들을 찾아다니며 한 명씩 죽인다. 프랭크의 목적과 캐릭터는 차츰 밝혀지게 되는데, 폭력 장면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에게는 추천하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싸움은 목숨을 건, 치열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초능력을 물려받은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다. 부모들은 각자 자식들을 생각하며 일반인으로서 일상 생활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고 한다. 이러한 부모와 자식의 유대감이 시리즈 전체에 감동과 강한 목적의식을 부여한다고 생각된다.
초능력 학원 청춘 드라마와 초능력 폭력 배틀, 그리고 초능력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 모두 상식을 초월한 초능력을 소재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관을 번갈아 가며 그리는 것이 이 시리즈의 취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요소들은 그냥 따로따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본 내용에 다가가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처럼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이 배치된 듯한 시도는, 시청자에게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봉석이 어머니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희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등 흐뭇한 묘사가 그려질수록, 음산하고 잔혹한 싸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공포는 더욱더 커진다. 서로 다른 선과 선이 교차할지도 모르는 상황 때문에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조마조마해지는 것이다.
또한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 의식하게 되는 것이, 슈퍼히어로 작품과의 유사점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싸우게 되는 전개는, 그야말로 아메리칸 코믹스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미국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원작자 강풀은 홍콩의 소설가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양한 영웅들이 활약하는 내용은 정말로 아메리칸 코믹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쨌든 <무빙>을 보면서 <판타스틱 포>나 <엑스맨> 같은 마블 코믹스 작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내용이 마블 코믹스의 여러 히트작 스토리를 담당한 스탠 리의 작가성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필자가 ‘다큐멘터리 <스탠 리>를 통해 배우는 “성공의 비결” 위대한 크리에이터 탄생의 배경’에 썼듯이, 스탠 리는 자기 주변의 문제나 일종의 문학성을 히어로들의 드라마 속에 투영시켰다.
예를 들어 <판타스틱 포>에서는 히어로들이 본부의 월세를 내지 못해 곤란해하는 전개가 나온다. 그것은 스탠 리의 아버지가 좀처럼 직장을 구하지 못해 월세에 시달렸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그로 인해 황당무계해야 할 히어로들의 싸움은 어느새 현실적인 생활인의 이야기로 승화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빙>이 초능력을 소재로 하고, 공중에 뜨는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학비, 입시, 취업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등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드라마를 계속 그려나가는 것은, 그러한 작품 만들기에 뿌리를 둔 사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시리즈가 그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그 자체이며, 우리 마음속의 리얼한 갈등이다.
golgo
추천인 3
댓글 3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