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랑 보면 좋은 스필버그 감독 초기 생애
영어 위키백과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자료들 중 감독이 되기 전 초기 생애... 그리고 유명해지기 전 내용들만 옮겨봤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teven_Spielberg
<파벨만스>에서 그려진 모습들과 비교해서 읽어보시면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생애와 배경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는 1946년 12월 18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레아(née Posner, 훗날 애들러 19920~2017)는 식당 지배인이자 콘서트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 아놀드 스필버그(1917-2020)는 컴퓨터 개발에 참여한 전기 기술자였다. 그의 직계 가족들은 상황에 따라 개혁파 유대인/정통파 유대인이었다.
'파벨만스' 보기 전 알면 좋은 스필버그 아버지 이야기
스필버그의 친조부모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그의 할머니 레베카(결혼 전 성은 Chechik)의 고향은 Sudylkiv, 할아버지 슈무엘 스필버그의 고향은 Kamianets-Podilskyi였다. 슈무엘은 러시아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하려고 1906년 신시내티로 탈출했고 1908년에 약혼자 레베카를 데려왔다.
스필버그에게는 세 명의 여동생 앤, 슈, 낸시가 있다. 1952년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RCA사에 고용되면서 뉴저지의 하던 타운쉽으로 이사 왔다. 스필버그는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랍비 앨버트 L. 루이스가 가르치는 수업을 들으며 히브리어 학교에 다녔다.
1957년 초, 그의 가족은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이사했다. 스필버그는 13살 때 유대교 성인식을 치렀다. 그의 가족은 유대교 회당에 다녔고 여러 유대인 친구들이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스필버그는 부모님이 "항상 그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늘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필버그의 아버지는 홀로코스트로 인해 16~20명의 친척을 잃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집안의 전통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쉽게 인정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제가 7~9살이었을 때,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저는 우리가 정통파 유대인이라는 게 당혹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의 유대교 관습에 대한 외부의 인식에 당황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절대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불안했습니다.”
스필버그는 또한 반유대주의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 저는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습니다. 쌍코피를 흘렸는데 끔찍했죠." 그는 가족이 여러 동네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자신들만이 유대인이란 걸 알게 된 후, 사춘기 동안 유대교와 멀어졌다.
<파벨만스>
스필버그의 영화에 관한 관심은 어린 나이에 시작되었다. 12살 때 그는 장난감 라이오넬 기차를 가지고 열차 사고를 다룬 첫 번째 홈 무비를 만들었다. 1958년에는 보이스카우트가 되었고, <The Last Gunfight>라는 9분짜리 8mm 영화를 제작하여, 사진 공훈 배지 자격 요건을 충족. 결국 이글 스카우트 계급을 따냈다.
스필버그는 아버지의 영화 카메라를 사용하여 아마추어 영화를 만들고 스카우트 여행 때마다 카메라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13세에 스필버그는 학교 급우들과 함께 40분짜리 전쟁 영화 <Escape to Nowhere>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주 전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십대 초반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입학 후에도 스필버그는 15~20편의 8mm “모험” 영화들을 만들었다.
피닉스에서 스필버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지역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그가 초기에 영향을 준 영화로 인용한 작품은 <고질라>(1956),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들, <굿바이 마이 라이프>(1937), <피노키오>(1940), 그리고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였는데, 그 영화를 가리켜 “나를 여행길에 오르게 한 영화”라고 언급했다.
그는 1961년 아카디아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 동안 다녔다. 그는 1963년, 자신의 첫 독립영화로 <Firelight>라는 140분짜리 SF 모험물의 각본을 쓰고 감독했는데, 이것이 훗날 <미지와의 조우>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Firelight>의 제작비는 600달러 미만으로, 주로 그의 아버지가 지원했고 지역 극장에서 하룻밤 상영되었다.
1964년 여름,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편집 부서에서 무급 조수로 일했다. 그의 가족은 나중에 캘리포니아주 새러토가로 이사하여 새러토가 고등학교에 다니며 1965년에 졸업했다.
1년 뒤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스필버그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여 아버지와 함께 지냈고, 그의 세 자매와 어머니는 새러토가에 남았다. 그는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영화 제작자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영화과에 지원했지만 평범한 성적 때문에 거절당했다. 그는 다음으로 지원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롱비치 캠퍼스에 입학했다.
<파벨만스>
관광버스를 타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간 스필버그는 한 간부와 우연히 대화하다가 3일짜리 입장권을 얻었고, 그것으로 다음날에도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넷째 날, 스필버그는 입장권 없이 스튜디오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고, 경비원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는 그로부터 두 달 동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지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에 비공식적인 견습생이 되었죠.”
1968년 유니버설은 스필버그에게, 극장 개봉용 단편 영화인 26분짜리 35mm 영화 <앰블린>(Amblin)의 각본과 연출을 맡겼다. 스튜디오 부사장 시드니 셰인버그는, 여러 영화상들을 수상한 그 작품에 감명받아서 스필버그에게 7년의 감독 계약을 제안했다. 1년 후,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유니버설에서 텔레비전 프로덕션 감독을 시작했다. 이로써 그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장기 계약을 맺은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스필버그는 2002년 롱비치 캠퍼스로 돌아와 영화 및 전자 미디어 예술 학사 학위를 받았다(이때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것이 <쉰들러 리스트>).
1969-1974: 영화와 텔레비전 진출
전문가로서 스필버그의 첫 업무는, 1969년 로드 설링이 각본을 쓰고 조앤 크로포드가 주연을 맡은 TV 시리즈 <제6지대>(Night Gallery)의 파일럿 에피소드였다. 크로포드는 어리고 경험 없는 신인이 연출한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히고 겁이 났다.”라고 말했다. 스필버그는 멋진 카메라 워크로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했지만, 경영진은 그에게 빨리 촬영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때문에 스필버그는 스튜디오 업무에서 잠시 쉬어야 했다. 하지만 크로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티븐과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즉시 깨달았을 거예요. 여기에 젊은 천재가 있다는 것을요. 더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스티븐처럼 직관적인 영감을 얻지 못하고, 그저 일상적인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경험 많은 감독들을 떠올렸습니다. 그게 소위 ‘경험’이라는 거죠. 그때 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리우드가 항상 재능을 알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스티븐의 재능은 간과할 수 없었죠. 저는 스티븐에게 쓴 메모에 그렇게 적었어요. 로드 설링에게도 쪽지를 보냈죠. 스티븐을 감독으로 승인해줘서 정말 고맙다. 전적으로 당신이 옳았다고 말이죠.”
1970년대 초, 스필버그는 저예산 영화 제작을 위한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텔레비전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작업한 TV 시리즈물로는 <Marcus Welby, M.D.>, <The Name of the Game>(‘L.A. 2017’ 에피소드), <형사 콜롬보>, <Owen Marshall, Counselor at Law> <The Psychiatrist>가 있다. 스필버그는 그 작품들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자기 기술을 실험하고 영화 제작에 대해 배울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제작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꾸준한 수입을 얻어서 로스앤젤레스의 로렐 캐년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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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TV 영화 <듀얼>(1971)을 찍으면서 실력을 인정 받고, <슈가랜드 특급>(1974)으로 상업적 실패를 본 뒤, <죠스>(1975)를 통해 모두가 아는 스필버그 감독이 되었습니다......
golgo
추천인 7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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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느낌도 더 있고여~~젊었을때는 인상이 강하신~
평론가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감독님 실제 얘기가 섞여있네요
샘의 어린시절이 감독님 어린시절하고 판박이던데 스필버그형님이기에 이 영화가 더 값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