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멜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3
1. The Eight Mountains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들 중의 하나인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습니다. 피에트로와 브루노, 두 남자의 수십년간을 이어오는 우정을 장엄한 서사시처럼 다룬 영화인데, 이탈리아 자연의 광활하고 장엄한 모습과 함께 두 남자의 진한 우정이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줍니다. 피에트로는 브루노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되고, 브루노는 피에트로를 통해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합니다. 올해 절대 놓치면 안되는 영화중의 하나.
2. Joyland
파키스탄 영화로는 최초로 칸영화제 본선에 올라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인데,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 내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다룬 영화입니다. 갑자기 확 변하는 엔딩 부분의 만듦새만 제외하고는 드라마로서의 짜임새도 꽤 괜찮은 편이네요. 동성애자에 대한 온갖 차별과 성희롱이 난무한다던지, 여성이 임신하면 사회적인 활동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던지 하는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는 마치 1980년대의 한국사회를 보는거 같습니다.
3. Vortex
가스파 노에가 작년 칸영화제에 출품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 다리오 아르젠토가 남자 주인공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치매와 질병으로 점점 망가져 가는 80대 노부부의 삶을 다룬 영화인데, 화면을 둘로 갈라 하나는 남편의 시각, 다른 하나는 아내의 시각으로 주변을 보게 만드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네요. 마치 겔럭시 폴드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ㅎㅎㅎ
이전의 자극적인 가스파 노에의 영화들과는 달리 점점 망가져 가는 노부부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는 방식이 가스파 노에가 참 많이 성숙해 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인도 곧 환갑이 가까우니 남의 일이 아니어서 그랬는지도...ㅎㅎ
4. R.M.N.
올 칸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들중의 하나인데, 극우로 치닫는 현재 유럽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마티아스는 본인도 돈벌려고 독일에 가서 일하다가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견디지 못하고 루마니아로 다시 돌아온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있는 빵 공장에서 스리랑카인을 고용하자 그들을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몰아내는데 앞장섭니다. 이 영화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들을 믿고 무조건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최저 임금으로 사람을 쓰기 위해 지역 노동자들보다는 외국 노동자들을 선호한 기업주들도 같이 비판합니다. 아마 이런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마티아스의 아들이 산에서 본 '괴물' 인지도 모르죠.
5. Eami
올해 로테르담 영화제 타이거상 수상작입니다. 파라과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몽환적으로 담아낸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네요
6. The Quiet Girl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아일랜드 대표로 출품된다고 들은 영화인데, 이미 아일랜드와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나약하고 소심해서 자매들에게도 따돌림 당하고 학교 생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외톨이 소녀 케이트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할 날짜가 다가오자 여름 휴가동안 친척집으로 보내집니다. 이블린 이모 부부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케이트는 점차 어두운 성격을 떨쳐내고 점점 자기 스스로 일어설수 있는 강인한 소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으로부터 이블린 부모 부부의 아픈 과거사를 듣게 됩니다....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영화인데, 눈물 찔끔 나는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챙겨보실만한 영화입니다...ㅎㅎ
7. Yuni
내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에 인도네시아 대표로 출품될 영화인데, 보수적인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사회에서 자기 선택권 없이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결혼을 하면 대학도 갈수가 없고, 남자의 청혼을 두번 이상 거절하면 가족에게 불운이 온다고 해서 싫어도 억지로 결혼해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인도네시아의 여자들을 보며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관습을 비판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면 지금이 1970년대인지 2020년대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8. Speak No Evil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나서 친해진 가족의 집 초대에 응했다가 봉변을 당하는 가족의 이야기인데, 영화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이 꽤 인상적인 영화지만 영화 전체가 불쾌감을 주는 타입의 호러인지라 호불호가 좀 심하게 갈릴 작품 같네요. 보고나면 마음속에 불편함이 찐하게 남는 그런 타입의 호러입니다.
9 Utama
올해 선댄스 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 수상작인데, 전통과 관습대로 살아오던 시골의 할아버지가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몰락해가는 현재의 모습을 황폐해져가는 자연의 모습과 함께 잘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주변이 점점 사막화 되어가면서 키우던 리마들에게 물을 제대로 먹일수조차 없는 환경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10. Leila's Brothers
올해 칸 영화제 화제작 중의 하나였던 이 영화는 대를 이어 내려오는 빈곤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장남의 직장이 불황으로 도산하면서 4형제가 모두 실직자가 된 상태가 되자, 결혼 적령기를 지나서도 독신으로 집에서 살던 막내 레일라가 오빠들과 머리를 짜서 어떻게든 가게를 하나 열어서 4형제를 실직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노력은 아버지의 이기심과 무능력한 오빠들 때문에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빈곤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현재 이란의 상황에서 과연 해결책이란 있는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이 영화는 꽤 의미심장하게 현재 자본주의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끝납니다. 뭐 이런 상황은 현재 전 세계 모두가 직면하고 고민하는 상황인거 같네요...
언젠가 여유가 되면 하나씩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