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헌트> - 총알의 방향 대신 총알의 의미
지금은 이정재 배우님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다 나이가 적으셨을 때의 매력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오징어 게임>까지. 그가 품은 강렬한 에너지와 분위기는 어느 영화 어느 역할이라도 원래 그 사람인 듯이 스며들었다. 특히 <관상>과 <암살>에서의 열연은 명대사가 '밈'으로 재생산되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상황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전성기 속에서 그가 감독작으로 선택한 <헌트>의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김윤석 배우님이 감독을 맡으신 <미성년>을 재밌게 봐서, <헌트>에서 감독으로서의 이정재 배우님의 모습도 기대했다. 예고편을 보니 총격 장면이 많이 나와서 액션 영화라는 짐작을 하고 영화관을 찾았었다.
<헌트>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였다. 제목인 헌트가 '사냥'이라는 뜻이기에 서로를 향한 피비린내 나는 총질과 조직 스파이 찾기가 주가 되는 영화일 줄만 알았는데 이 사냥에는 훨씬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 군사 독재 체제의 수하로 사는 두 남자의 신념과 목적에 대한 사정이 그것이다. 목적과 동기 모두 다른 두 남자의 기싸움이 재밌다. (특히 두 분이 청담부부임을 이미 알고 있다면)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냥개마냥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이 곱씹어보니 인상 깊었는데, 영화에서 시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해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시대를 잘 알지 못한다면 이해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들도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의 많은 정보량 덕에 멍 때리다 보면 후루룩 지나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헌트>는 다소 따분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스파이를 찾는 것이 주가 되었다면 촘촘한 심리 스릴러의 부재로 극의 진전이 부진했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번 흥미롭지만 느리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예상한 듯 적재적소에 주의를 환기시킬 장치를 넣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총기 액션이다. 큰 사운드와 박진감 있는 액션으로 구성된 사이사이의 액션은 마냥 무거워지는 것 같던 영화에 다시 새로운 관심을 불어넣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총기와 상황으로 연출된 볼거리 가득한 장면들만으로도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할 정도로. 또 '어떻게 이 사람들이 다 모였지?'라는 생각이 드는 특별출연진도 그렇다. 특히 황정민 배우님, 존재감이 엄청나셨다.
특별출연 배우님들만 돋보였던 것도 아니다.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정우성 배우님, 정권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이정재 배우님, 일만 하다가 토사구팽(..)당한 허성태, 전혜진 배우님과 마지막으로 의중을 알 수 없는 연기를 한 고윤정 배우님까지 배우분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시대에 스며든 것 같았다. 특히 깊고 진득한 내면을 표현해야 했던 주연 두 배우님이 정말 캐릭터를 잘 표현해 주셨다. 두 사람이 서로의 정체를 진짜로 마주한 순간과 마지막 테러에서 두 사람 각자의 결과를 맞이한 장면의 표정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딱 맞는 영화다. 이웅평, 안기부, 아웅산 테러, 군사정권 등의 배경지식을 잘 안다면 누가 어떻게 나오는지, 실제 사건을 어느 정도 각색해 내놓았는지 기대하며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쏟아지는 정보를 쏙쏙 집어넣어 이해하기는 어려운 영화였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찾아보는 재미가 될 수 있겠지만 사족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이웅평 귀순 사건은 오히려 흐름을 해치는 듯한 감상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단점이 장점보다 작다. 첫 연출작임에도 박진감 있는 액션과 적절한 시간 분배, 시대상황에 잡아먹히지 않은 전개가 정말 좋았고 이 여름, 영화관에서 보기 가장 좋은 영화인 것 같다. 다음 관람은 꼭 사운드 좋은 극장에서..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