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리투 감독 영화의 절정, <바벨>
제가 이냐리투 감독에 빠지게 된 건 <레버넌트>와 <버드맨>을 너무너무 좋게 봤기 때문이죠. 버드맨을 이냐리투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바벨>은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아니야, 최고작은 나야. 나를 보라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본 영화입니다. 정작 두 배우의 분량은 30분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알고보니 이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이었습니다. 이혼 위기를 극복하러 아프리카에 간 두 부부 이야기, 그 두 부부네 집 가정부와 부부의 아이들 이야기, 우연히 한 구의 총을 손에 쥐게 된 두 아이 이야기, 그리고 그 총을 팔아넘긴 사람의 농인 딸의 이야기. 네 편 다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옴니버스 형식이다 보니 감독과 배우의 힘이 매우 중요한데요,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키쿠치 린코와 아드리아나 바라자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놀란 것은 브래드 피트와 야쿠쇼 코지의 연기였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직면하면서 생기는 그 당혹감과 긴장감을 너무나 잘 연기합니다. 마지막에 아이들과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최고의 배우란 생각이 들더군요. 야쿠쇼 코지는 본인이 일본 영화들에서 표현해 낸 그 고독감을 이번에도 표현해냅니다. 눈빛이 정말 정말 깊은 배우입니다. 다음 달 초에 개봉하는 <큐어>의 주연이신데, 영화만큼 야쿠쇼의 연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냐리투의 연출은 언제나 그렇듯 말할 필요도 없고,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 영화를 멋지게 매듭지어 포장하는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냅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흐르는 사카모토의 슬픈 음악은 영화의 감성을 그대로 살려주는 음악입니다. 이냐리투의 음악 선택도 탁월한 게 아프리카에서의 에피소드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음악을 사용하고, 일본 에피소드에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사용하여 각각의 에피소드의 독창성을 높입니다. 아카데미 음악상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받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가 적어도 후보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탔어야 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냐리투는 화려한 블랙코미디인 <버드맨>과 자연의 풍광을 응시하는 <레버넌트>로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요,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 <비우티풀>까지 이어지는 그의 깊고 우울한 영화들, 특히 <바벨>은 버드맨과 레버넌트만큼이나 칭송받아야 하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제가 네이버 평점을 신뢰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작품에 평점 6.7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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