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3구] 스포일러 간략리뷰
[파리, 13구]는 제가 처음으로 본 자크 오디아르 감독님의 영화였습니다. 우선 가장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 지점은 바로 제가 봐왔던 그 어느 프랑스 파리 배경의 영화와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강렬한 수위, 정갈한 화면, 뭔가 새벽의 흥분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은 음악도,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을 이렇게나 매몰차고 차갑게 조명하는 것이 가능하구나….영화 전반을 통해 보고 느끼던 지점들이 지금까지도 상당히 강렬하게 남아있네요.
영화는 두 편의 단편 영화가 각자의 갈래를 이루며 나아가다가 끝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옭아매어지는 전개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크게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루시 장의 ‘에밀리’, 마키타 삼바의 ‘카미유’, 그리고 노에미 메를랑의 ‘노라’의 세명의 이야기가 주로 구성되고, 제니 베스의 앰버 스위트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그 비중이 높아지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독특한 것은, 정말 지금 젊은 세대의 혼란감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리고 싶었는지, 정작 세명의 캐릭터의 사연 자체는 정말 특별한 지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또한 분량 역시 100분의 러닝타임을 양적으로 아예 딱 구분지어 놓고 있습니다. 우선 카미유와 에밀리의 과거의 사연과 관계를 30분동안 초석으로 탄탄히 다져 놓고, 이후에 노에미 메를랑의 ‘노라’가 도입되고 우선 ‘카미유’와 엮어 놓는 것으로 이어지죠. 그리고 나서는 ‘에밀리’ 혼자로서의 사람, 그리고 ‘노라’와 ‘카미유’의 관계가 오며가며 보여지다가…..슬슬 이들이 접점을 가지고, 사연들이 얽혀가며 후에 어떤 관계로 이어지는 지 보는, 어찌 보면 참 별거 없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캐릭터별로 두드러지는 특성이 없다는 바로 그 지점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공감하고, 다채롭게 볼 수 있는 큰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했지만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해 아파트 하나 겨우 유지하고 있는 ‘에밀리’, 선생이지만 목적성을 상실해버려 방황하며 인간관계를 일종의 과제처럼 접근하는 ‘카미유’등의 모습을 보며 외국의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눈에 밟히는 지점을 제외한다면, 지금 이 영화를 보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지점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이를 한데 묶어 주는 것이 다름아닌 성(性)의 요소입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올해 본 영화 중에서는 성적인 묘사의 수준이 상당합니다. 얼마전의 [인민을….]보다도 베드신의 전체적인 분량이 없다이지 한번 나올 때 상당히 강렬한 묘사가 반복됩니다. 근데 단순히 선정성을 위한 선정성이 아니라 정말 젊음의 혼란감과 성(性)이라는 요소의 연결을 잘 해내신 것 같더라구요. 실제로 주인공 세명의 가장 큰 가치관에서의 차이가 바로 성(性)에 대한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에밀리’는 누구 보다도 쉽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객체와의 관계에서는 충족이 되지를 않습니다. ‘카미유’는 성(性)을 오로지 과제처럼 생각합니다. ‘노라’는 아예 자신의 성(性)적인 만족감이 어디서 오는 지를 전혀 모르고 계속 그 해답을 갈구하죠.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묘하게도…이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다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태도에 대입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차가운 현실 속의 문제들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들에 대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는 그 어느 작품보다 파리를 어떤 공업지역 수준으로 차갑고 냉정하게 담아냅니다. 사이사이 사랑의 도시라는 그 풍경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느껴질 뿐이지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공간이 주는 매력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에펠탑,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말 정갈한 아파트 단지 속 그 도시의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제 3의 영역을 그려냄으로서, 신비로움만이 더욱 가미되는 성격이 있을 뿐이죠. 이 지점에서 참 많이 감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감독님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님이지만, 셀린 시아마와 레아 미지위 두분이 각본에는 같이 들어갈 정도로 영향을 발휘하셨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보시는 것도 상당히 중요해보입니다. 특히 셀린 시아마의 여성 서사를 자연스럽게 극 속에 녹여내는 능력이 엄청난 힘을 종국에는 발휘하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을 레즈비언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정말 저 관계에서 오는 사랑이라는 힘, 그리고 캐릭터의 성장 이 모두를 한데 어우르는 정말 최고의 엔딩이었어요. 셀린 시아마 감독님의 신작도 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네요.
결론적으로 [파리, 13구]는 오히려 파리라는 마법의 공간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젊음이라는 혼돈감이 이 공간을 가득채우고 있을 때 어떤 관계들이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이 시기에서 이들을 이끌어 가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참 재밌는 드라마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메시지가 직설적이고, 뭔가 해석하고 은유되는 지점들이 없어서 …. 다른 말로 영화가 너무 명료하기에 아쉽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을 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대만족이었네요.
- 오프닝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크레딧
상당히 강렬한 오프닝이었습니다.,
- 성의 요소가 정말 묘사가 적나라합니다.
아무리 친한 지인이어도....그냥 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긴해요.
- 노에미 메를랑은 어째....점점 이뻐지나요.
그나저나 솔직히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에밀리'의
[루시 장]이 맞습니다. 여러가지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점이
정말 엄청난 힘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 에펠탑 안나오는 프랑스 영화는 처음 봤어요...^^
- 프랑스의 낭만을 챙기고 싶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
프랑스의 사랑을 챙기고 싶다면, [비포 선 셋]
프랑스의 현실을 챙기고 싶다면, [파리, 13구]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너무 재밌게 봤네요.
추천인 1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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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무리해서 만들어서 봤는데....
너무 재밌게 봤네요
그리고 루시 장도 인상적이었는데 전 초반 어느순간부터 장국영 얼굴이 떠오르더니 끝까지 레슬리 얼굴만 보이더라구요. 암튼 노에미멜랑의 발라당 엔딩까지 강렬하고 넘 좋았습니다.
참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감성적으로 잘 보긴 했는데 이게 정리가 안되던 영화 중 하나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제 결국 가서 봤는데 재밌었어요
좋은 감상 하셨다니 더 좋네요!!
리뷰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나저나 시사회때 보셨다니 정말 부럽네요!
저도 거기까지라면 혹평이었을 텐데,
정말 뒤로 갈수록 영화가 더 좋아지더라구요
리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끌 때 시간 좀 내서라도 먼저 볼걸 하는 생각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