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무 시사)블랙 필즈 "First Love"-리뷰(약 스포)
우리가 오늘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태내에서부터 축적된 "어제에 관한 체험" 때문입니다. 체험은 많은 것을 무위화하거나 무력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공포는 특히 사람을 옭아매어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를 상징적인 공포로 승화시킨 영화가 <티스>나 <로우>, 멀리는 <캐리>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어려움을 멋드러지는 반전까지 선사해 극찬을 받았던 <툴리> 역시 도무지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육아라는 공포를 영화로 승화시킨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익무에서도 시사를 했던 "Patricia Moore" 역시 결을 같이하는 숏 폼 시리즈였습니다. 이러한 "성장과 체험의 공포"는 인문학 특히 심리학에서 다루어지며 상당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학문으로 끌어다놓으려고 해도, 단 하나 다루지 못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정신과 함께 육체적인 것도 포함합니다. 가령 "섹스"(단어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죄송하네요!)를 가르치는 학문이 있고, 이를 내 사랑에 적용시키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약간의 인기 영합이나 치기일지 모를, 사랑학을 강의한 버스카글리아도 있었습니다만 가장 주체적이고, 또 개별적이며 타인과 완전히 구별되는 내 사랑에 대해, 천편일률적인 교과서와 참고서로 가르치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제한다면요! (너의 사랑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육체적 관계에서는 몇 분 몇 초, 등등등등.(사실 상상만 해도 나쁜 소름이 돋습니다.)) 싫을 겁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한편으로 은밀하고 비밀스럽기를 원하는 맘도 있습니다. 역설과 이율배반이 함께인,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길 원하는 한편으로 아무도 내 사랑에 대해 모르기를 바람도 존재하는 사랑......!
블랙필즈 "First Love"는 이제 대학생이 되기 위해 열심인 잭이 루크의 동생 메르세데스를 만나는 플롯과 더불어 잭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플롯이 병행합니다. 잭은 이제 18살이 되어서 미성년을 벗은(듯한) 반면 메르세데스는 이제 12살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길게도 썼던 배경에 부합한 이야기를 건네자면, 이들의 어제에 "사랑"은 없었고, 잭에게도 또 메르세데스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이나 "사랑의 감정"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둘에게, 어쩌면 사랑은 공포일지도 또 판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속물적인 감성일지도 모르고 설렘만으로도 밤일 새게 만드는 미지의 동경일지도 모릅니다.
단 12살에 불과한 메르세데스는 파괴적인 한편으로 외향적입니다.
18살이 된(또는 되었을) 잭은 모범적인 반면 내성적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둘은,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이라는 뜰 안으로 서로를 들여 보냅니다. 그러나 둘은 정 반대의 상황에 놓입니다. 12살의 메르세데스는 안정과 내향에 가두려는 가족과, 반대로 파괴와 일탈로 한 순간을 망친 잭을 과거가 옭아매려 듭니다.
어떻게 될까요?
간단한 감상만 말하자면, 앞서 "Patricia Moore"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참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 슬픈 동화였습니다. 네, "파괴적이고 아프며 슬픔을 넘은 잔혹한 현실 동화"였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단편 <소나기>의 잔혹 버젼 같은 느낌도 들었답니다. 둘이 행한 선택도 또 둘이 만든 결과도 그 어떤 것도 응원하기 어려운 결말이었습니다. 아마도 방청석이나 재판정에서 둘을 보는 관찰자의 심정이, 관객의 심정이지 않을까! 물론 한편으로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하는 관객도 있겠지만요.
영화를 끝내고는, 끊은 맥주 한 잔이 생각났다고 하면 결론으로 적당할까요.
숏폼 시리즈입니다만, 전체적으로 흐름이 이어지는 한 편의 영화를 10개의 시리즈로 나누어 놓은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본 블랙필즈 시리즈 중에서 플롯의 연결성이 가장 강했습니다. 반면 집중도가 좋아 역시 15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고 한 호흡에 볼 수 있던 장점도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잭도 메르세데스도 응원해주지 못하는 저의 심정은, 그들의 파괴가 불러올 내일이 어떨지를 미리 경험한 "어제"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라 차치합니다. 아픔은 분명 성장을 위한 변곡점이 되지만 통증은 분명 각인이 되고 말 테니까요. 그걸 극복할지 아니라면 계속해서 통증에 시달릴지는 성장을 넘은 개개인의 어제가 만들어 줄 내일이 아닐지...!
덧)잭으로 분했던 얀스 엔슬린? 잰스 엔슬린? 뭐 여튼 이 배우에게서 꼭 티모시 샬라메의 느낌이 살짝 들어서, 잘 성장해서 멋진 배우가 되기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아무튼 모든 역할의 배우님들이 더 큰 성장으로 자리매김하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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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소설가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찝찝한 채로 링크를 닫으셨군요...ㅎㅎㅎ
편안한 밤 되십시오.
저는 보다가 중간에 좀 쉬었다 봤어요.
많이 불편한 상황들이 보여서, 친오빠의 폭력적인 부분들이 참 보기 힘들었네요.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 소녀의 상황도요...
배우 마스크가 꽤 인상적이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