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관람평(스포O)
‘가웨인 경과 녹기사’ 전설을 모티브로 독창적인 재해석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원전을 모르고 봐도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개괄적인 스토리를 인지한 상태로 보면 짜릿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영화 속 가웨인이 선택의 기로에 섰듯이.
제게 아직까지 데이빗 로워리의 최고작은 <고스트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이번 신작도 매우 훌륭합니다. 정말 야심 찬 중세 여행기입니다. 아직 기대작들이 상당히 남은 올해지만, 이변 없이 2021년 저의 베스트 목록에 이름을 올릴 작품이 될 것입니다.
아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관람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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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로워리에게 자본과 함께(그래봤자 1500만 달러) 싶은 데로 하게 놔두면, 얼마나 특출한 아웃풋이 튀어나오는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그는 단돈 10만 달러로 <고스트 스토리>를 만들었다). 하스미 시게히코 등 일부에서 주목받던 이 미국 감독은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우리가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야심가일 것이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즐겨 쓰는 귀여운(?) 장난이 있다. 위트 있는 짧은 문구를 띄우는 것인데 <고스트 스토리>의 유령 대화나, <미스터 스마일>의 마지막 문구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무 빨리 지나간 1년’ 같은 자막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가웨인 경과...’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같은 서체가 아니다. 그렇다. 가웨인과 관련된 여러 전설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가웨인 경과 녹기사’, ‘가웨인 경과 데임 라그넬의 결혼’, ‘페르스발, 성배 이야기’, ‘웨일즈 전승’ 등등. 지난 밀레니엄 동안 수많은 판본의 책이 나왔을 것이고 여러 가지 폰트의 제목으로 출판되었을 것이다. 그중에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기 좋은, 어찌 보면 훈훈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는 녹기사 이야기가 감독에게 선택되었다.
시작하자마자 권좌에 앉은 가웨인은 불태워진다. 이 영화는 전설을 존중하되,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가웨인 경과 그의 이야기를 비틀기 시작한다.
워밍업으로 가웨인의 어머니로 나온 모건 르 페이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 아서 왕을 다룬 많은 작품에서 마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시 <에레크>의 경우 사람을 새나 동물로 변신시키고, 악령을 조종하는 능력도 있는 모양. 이 영화 내내 가웨인은 감시당하거나 관찰당하는데, 마치 <반지의 제왕> 사우론의 눈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태운 편지를 전달하는 녹기사, 여우, 영주의 성에서 눈을 가린 노파 등 모두가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있는 대리역할이다. 어머니는 이 기묘하고 으스스한 여정의 설계자다.
가웨인은 미성숙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원한 건 막연한 기사로서의 ‘명예’. 그것도 녹기사와의 목게임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삼촌인 아서 왕이 그에게 말한다. 원탁에 앉은 이 많은 기사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전설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 젊은 가웨인은 말할 ‘스펙’이 없다. 용맹에 대한 시험일수도 있지만, <그린 나이트>를 관통하는 1년간의 게임은 조카에게 후계자이자 기사로서의 좋은 커리어 쌓기용 기회를 제공한 어른들의 배려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사도문학, 전설, 설화 등에서 기대할법한 환상을 초장부터 완전히 박살낸다. 바로 무뢰배에게 가진 모든 장구류를 털리게 되는 강도사건에서. 가웨인 경(데브 파텔)은 원탁에서의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목숨을 구걸하며, 기사임을 부정하고 “제발”을 연신 외치며 눈물까지 흘린다. 정말 무게 있게(거의 성스럽게) 여행준비를 하고 맞닥뜨린 첫 위기의 관문에서 기사답지 않은 비굴함을 보인다. 이미 과거의 신화는 해체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대로 산산조각이 나진 않는다. 현대적 재조합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게임으로 말하자면 기껏 고급 아이템 풀세트로 맞추고 길을 나섰더니 첫 번째 던전에서 홀랑 다 털려 무에서 다시 게임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녹기사가 방문했을 때 아서 왕이 “이건 게임일 뿐이다”라고 했었다. 소박한 테스트다. 가웨인은 손발이 묶여 삶을 포기한 비참한 미래를 잠깐 상상해본다. 속절없이 해골이다. 결국 그는 상처 나고 피 흘릴 것을 각오하고 스스로 결박을 푼다.
아서 왕 전설에서 ‘기사도의 모범’으로까지 불리는 가웨인에게 이는 첫 번째 관문일 뿐이다. 시놉시스에도 나오듯 5개의 관문, 고난을 겪게 되는데, ‘5’라는 숫자가 흥미롭다. 웨일즈어로 가웨인은 gwalchmei(그왈흐메이)로 부르는데 여기서 끝의 mei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5월, 또는 평원(5가지를 겪게 되는 여정엔 평원도 물론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기사도의 윤리와 짝을 지을 수 있다. 한국사에서도 서양의 기사도에 대응하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있지 않은가?
19세기(이미 기사가 멸종한 시대지만) 기사도 리스트 중에 ‘어디서든 언제든 부정과 악에 맞서 정의와 선의 투사가 되어라’가 있다. 중세인 11세기 노래에도 유사한 기사도 항목이 있다. ‘불공정함과 비열함, 기만을 경멸하라’ 그가 음흉한 강도(배리 케오간) 앞에서 이를 지켰는가? 심지어 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두 회수된다. 어떻게? 관문을 거치면 전리품을 얻는다. 도끼는 성 위니프레드의 집에서, 허리끈은 버틸락 성주 부인에게서, 말은 녹색 예배당에서.
강도는 길 안내의 대가를 요구한다. 가웨인은 동전 정도면 호혜주의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 관문에서 성 위니프레드(아서 왕 전설에서 요정인 호수의 여인이 생각나기도 한다)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한다. 목을 찾아주면 무엇을 줄 것이냐는 가웨인의 말에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의아해한다. 하지만 가웨인은 대가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앞서 말했던 전리품이 집 한 편에 놓여있다.
초반부의 에셀과 후반부의 버틸락 성주의 부인과의 이야기를 함께 놓고 바라볼 필요가 있는데, 이 둘을 맡은 배우가 같다(알리시아 비칸데르). 에셀과 정을 통하지만 가웨인은 에셀의 소망을 듣고 침묵한다. 에셀은 그에게 사랑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웨인에게 에셀은 그저 욕정의 대상. 기사도에는 이런 것도 있다. ‘여성의 명예를 존중하라’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을까?
성주 부인은 빨간색과 녹색에 대한 비교를 이야기한다. 욕망, 욕정은 빨갛다. 그마저 꺼져버린 잔해는 녹색이다. 녹색을 감당할 수 없다면 녹기사의 게임도 극복하기 힘들다. 원전에 충실하게 성주 부인은 가웨인을 성적으로 유혹한다. 마력이 깃든 녹색띠를 선물로 주며 핸드잡을 동반한다. 이것도 그의 관문이 될 수 있다. 넘겨진 녹색띠에는 그의 정액이 묻었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 불경한가. 마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처럼. 영화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가웨인은 자다가 눈을 뜬다. 왕이 될 자가 누추한 서민들의 거처에서,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가웨인을 그리스도의 알레고리로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인이 말한다. “당신은 기사가 아니에요.” 자신만의 명예와 전설을 얻기 위해 최후의 관문을 앞둔 그는 키스까진 받았지만 남의 여자와 동침을 하진 않았다. 눈을 가린 노인은 그것을 보았고 아마도 버틸락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웨인에게 먼저 키스했다.
목을 건 ‘용기’를 시험할 관문이 남았다. 1년을 기다린 건곤일척이다. 배경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두드러지는데, 아서왕의 도시와 녹색 예배당의 극명히 대조된다. 이는 감독의 의도다. 아서 왕의 도시 밖은 벌목이 거의 끝나있다. ‘작은 호의’ 챕터에서 전장은 시체들과 타버린 황무지만 남았다. 예배당의 햇살은 따사롭고 크리스마스 같지 않다. 맑은 물이 계단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우리가 가웨인의 상상을 통해 보게 되는 흥망성쇠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대안미래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대사 없는 효율적 몽타주 효과는 감탄이 나온다.
<그린 나이트>는 고결했던 전설의 기사를 세속으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상당히 현대적인 캐릭터성이다. 다만 이는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보인 가웨인의 추락과 비굴함이 단지 조롱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것. 현대적 버전으로의 캐릭터 리모델링이며 생동감 있는 변형이다. 여기에 성장영화의 측면도 있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고주망태가 되어 귀가한 가웨인의 모습은 자신의 방황하던 10대 시절 모습을 떠올리며 집어넣었다고 한다.
실존적 문제가 남았다.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가 했던 말처럼, “죽어서 영웅이 되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자신을 보거나.” 데이빗 로워리는 여기에 한 가지의 가정을 추가한다. (어째 이순신 제독의 ‘생즉사 사즉생’이 떠오르긴 하지만) 살아서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대안.
권력의 무게를 견디는 자는 무지한 자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정이 시간의 굴레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다. 신화란 곧 전범이 되는 원형적 이야기다. 끊임없이 전승되고 교훈이 되고, 때론 반면교사가 된다. <그린 나이트>는 신화의 해체인가? 아니다. 오히려 소박한 에피소드 정도였던 원전을 장대한 신화로 격상시킨다. 영웅의 자질이 위대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함의 휘장을 두른 전설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거부 못 할 마력의 이야기와, 위대함을 얻기 위한 건곤일척의 여정'
★★★★☆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 즈음 아주 짧은 쿠키영상이 있는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본편의 이야기와 결부시키면 흥미로워집니다.
오오.. 해설들이 아주 팍팍 이해되네요.^^
다소 애매하게만 다가왔던 장면들이 더 또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