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 간략후기
티빙과 극장 개봉으로 동시 공개된 공유, 박보검 배우 주연의 영화 <서복>을 보았습니다.
최초엔 여름 텐트폴 영화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며 미뤄지다 이번에 티빙과 극장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불신지옥>과 <건축학개론> 등의 걸출한 영화들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메시지가 텐트폴 영화치고는 꽤 진하게 녹아 있는 듯 합니다.
제작비가 이 정도로 많이 투입된 영화가 이렇게 진지한 화두를 끌고 가기가 쉽지 않기에 특히 눈에 띄는 경우인데,
잘 만든다면 <블레이드 러너>에 버금가는 SF 수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서복>은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으나, 그 모든 인상들이 영화 자체에 대한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느낌입니다.
전직 정보국 요원인 기헌(공유)은 국가 기밀을 다루는 일을 하다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큰 트라우마를 안고 직을 떠난 상태입니다.
뇌종양으로 인해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처지에 내일의 삶이 절실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에게 별안간 임무가 주어집니다.
그의 상관이었던 정보국 안 부장(조우진)이 건넨 그 임무는 '서복'(박보검)이라는 실험체를 비밀리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라는 것.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인 서복은 탄생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인해
질병으로는 죽지 않는 영생의 신체와 특수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노리는 곳이 많은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임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의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기헌과 서복만이 남게 됩니다.
기헌과 서복은 서로만을 의지해 동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이들을 쫓는 이들의 추격 또한 본격화됩니다.
늘 실험실 안에 갇혀 주어진 환경만을 접해야 했던 서복은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세상과 만나고,
기헌은 그런 서복이 던지는 화두에 동요하며 그를 진심으로 지켜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영화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이와 영원한 삶이 주어진 이의 동행을 따라가는 휴먼드라마 감성의 브로맨스물처럼 보이지만,
그 정도의 대중적인 터치보다는 유한한 존재와 무한한 존재의 공존에서 오는 진지한 고민에 생각보다 깊게 몰두합니다.
그래서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생각보다 정적인 영화의 전개에 좀 당혹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 비로소 진짜 세상과 만나며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은 본래 목적을 정하지 않고 태어나 생의 과정에서 목적을 세우고 이루어가며 성장해 가는 존재인데,
반대로 서복은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태어나 그 목적을 위한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길러지는 존재입니다.
유한한 생을 두려워 하기에 자신을 채찍질하는 본성을 거스른 채 다른 존재를 희생시켜서라도 영생을 꿈꾸는 인간과,
정해진 목적으로만 이용되며 영생을 사는 것을 두려워 하는 서복의 대비는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 합니다.
이런 고뇌가 영화를 예상보다 진중하고 서정적인 버디물로 만드는 한편 비주얼 면에서는 예상보다 강렬한 임팩트를 주려 합니다.
추격과 격투가 절정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서복을 중심으로 SF영화다운 볼거리를 선보이는데,
그 내용이 텐트폴 영화니까 적당히 타협하겠거니 하는 수준을 아주 살짝 넘는 꽤 파괴적인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메시지와 볼거리 면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으나, 아쉬운 건 이들이 유기체가 아니라 파편처럼 다가온다는 겁니다.
영화는 의도한 메시지를 일일이 말하기보다 보여줄 때 큰 울림을 주게 마련입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내러티브와 시청각 요소이 결합해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됨을 알 때의 쾌감은 대단하죠.
하지만 <서복>은 메시지를 '말하는' 구간과 장르에 대한 기대치를 '보여주는' 구간을 따로 정해놓은 것만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인상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고 인물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됩니다.
그러다가 SF 장르에 기대할 만한 볼거리가 나타날 때에는 그 질문의 의미는 잠시 자취를 감추고 즉각적 감정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파편적으로 다가오는 '좋은 인상'이 영화 전체에 대한 '좋은 감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느낌이 듭니다.
서복이 탄생하게 된 계기, 서복에 대한 각기 다른 인식, 도망치는 쪽과 쫓는 쪽이 각자 지닌 명분 등
개연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부여되는 극적 요소에서도 새로움은 느껴지지 않아서 울림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영화의 투톱인 공유, 박보검 배우의 조화는 기대한 만큼의 값을 훌륭히 해냅니다.
기헌 역의 공유 배우는 생의 벼랑 끝에서 서복과의 만남으로 인해 또 다른 변화를 겪는 인물을 극적으로 그려냅니다.
수시로 욕설을 내뱉을 만큼 정서적으로 거친 상태에 있는 인물이지만 서복과 교감하면서 동요하고 각성하는 과정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섬세하고 담백한 연기로 보여줍니다. 간간이 등장하는 액션 장면 소화력 역시 명불허전이고요.
한편 서복 역의 박보검 배우는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 캐릭터를 기대 이상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합니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그만큼 언제 깨질지 모를 눈빛과 말투를 하고서 아이 같은 순수와 자비 없는 분노를 오가며 보는 이를 철렁하게 합니다.
역할 특성상 기헌은 물론 관객의 마음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굵직한 질문을 던질 때가 많은데, 그 발화자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이 밖에도 안 부장 역의 조우진 배우를 비롯해 서복을 최초로 개발한 책임연구원 임세은 역의 장영남 배우,
서복을 개발한 기업의 대표이자 연구원인 신학선 역의 박병은 배우 등 베테랑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공유, 박보검 배우와 달리 이들은 인간의 존엄 문제를 다루는 경향의 SF물에서 흔히 볼 법한 기능적 역할을 벗어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극중 복제인간의 이름이기도 한 '서복'은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으러
바다 끝에 있는 신산으로 배를 타고 떠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는 '서복'이란 인물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단순치 않은 주인공 이름의 유래와 같이 <서복>은 블록버스터급의 상업영화이지만 사유와 메시지 전달에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곱씹을 만하지만 신선한 수준까지는 아니었기에 그것을 전할 만한 재미나 극적 장치에 충분히 공을 들였어아 했으나,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메시지가 머리를 넘어 가슴까지 건드리는 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전설 속의 서복처럼, 영화 또한 사유의 여정을 용감히 떠난 것은 좋았으나 그 종착지에 만족스레 다다르진 못한 듯 합니다.
추천인 27
댓글 8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