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래치드'의 미쟝센/색감을 보고 떠오른 작품들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확실치 않으나, 예전엔 저예산, B급 감성 등의 분위기로 잘 알려져있던 호러 장르가 언젠가부터 촬영과 미쟝센, 그리고 색감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저 점프 스케어만으로 차 있는 킬링타임용 영화들이 아닌, 예술의 경지에 올라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호러 영화의 이러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가장 먼저 각인시켜준 감독은 바로 조던 필 감독입니다. <어스>에서의 시뻘건 복장, 시퍼렇고 샛노란 조명 등.. 강렬한 색감으로 가득찬 영상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호러 영화라고만 한정지어서 분류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있긴 하지만, 아리 애스터 감독 역시 호러 장르를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죠. <미드소마>에서의 꽃들로 가득차 있는 아름다운 영상미가 만들어내는, 어딘가 옥죄는 듯한 숨 막히는 분위기 역시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무시에티 감독의 두 편의 <그것> 영화들도 조명의 활용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호러 장르가 점차 메이저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 호러 장르에 있어서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기에, 넷플릭스에서는 <래치드>라는, 미쟝센에 어마무시하게 힘을 준 시리즈가 나오게 됩니다. 보기 시작하는 순간 곧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 떠오르는 감각적인 영상미, 그리고 스크린에서 뿜어져나오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색들은 극장 스크린으로 보지 못하는 게 참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이 단순해보이는 하나의 쇼트 안에 몇 종류의 다른 색의 조명이 쳐진 건지...사라 폴슨의 얼굴에 비친 붉은 조명, 큰 창문 밖 공간을 은은히 비춰주는 에메랄드빛 조명, 램프에서 뿜어져나오는 은은한 흰 조명, 뒤편에 위치한 작은 창문 밖 공간에서부터 들어오는 강한 흰 조명, 뒷공간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노란빛의 텅스텐 조명... 그리고 이 모든 조명들과 어우러지는 사라 폴슨의 푸른 의상, 붉은 립스틱, 붉은 머리, 그 사이에 포인트를 주는 듯한 노란 배지들... 이렇게나 단순해보이는 하나의 쇼트에도 뜯어서 분석할 만한 미쟝센적인 요소들이 차고 넘칩니다. 더 화려한 미쟝센을 자랑하는 장면들 같은 경우엔 다른 분들도 화려함을 쉽게 눈치채실 것 같아서, 일부러 비교적 별볼일없어 보이는 단순한 쇼트를 가져와봤습니다. 이런 단순한 쇼트에 들어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연스러운 노력들이 오히려 크고 화려한 장면들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 작품의 미쟝센에서 떠오른 또다른 넷플릭스 작품은 바로...
'엄브렐러 아카데미'였습니다. 위에 올린 사진들만 봐도 이 작품의 색감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는 바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극장에 걸리는 대다수의 상업 영화들도 미쟝센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극장용도 아닐 뿐더러,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그마한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접하게 될 작품들임에도 불구, 영상미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건 관객의 입장에선 언제나 감사한 일입니다.
근데 이게 그저 영상미를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고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면 문제인데, 다행스럽게도 <래치드>에서의 색감과 영상미는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주로 피가 떠오르는 붉은빛, 그리고 의사 가운이 떠오르는 푸른빛 등의 색감들이 눈에 많이 띄었기에, 뭔가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 어린 시절 병원을 찾아갔을 때의 그 막연한 공포감 같은 것들을 영상만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스토리는 좋은데 미쟝센이 엉망이라면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책으로 쓰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평상시에 하는 관객으로서, 이렇게 한 작품의 미쟝센을 중점적으로 뜯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네요. 앞으로도 이런 식의 감각적인 미쟝센을 자랑하는 독특한 호러/스릴러 장르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래치드>의 미쟝센을 살펴보다 보니 갑자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들이 보고 싶어지네요...ㅎㅎ <래치드>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프리퀄격인 시리즈라고 하는데, 소문으로는 익히 들어 잘 아는 작품이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그 작품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챙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래치드>를 안 보신 분이라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함께 정주행을 하시는 것도 좋은 시청 방식이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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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브렐러 아카데미 찜만 해뒀는데 빨리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