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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1963) 엄청난 영화적 경험

BillEvans
1211 2 0

 

 

김기영 감독의 이 영화는 엄청난 작품이다. 하녀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엄청난 영화적 경험이다. 김기영 감독은 우리나라 감독들 중 가장 독창적인 비젼을 갖고 있었고 이를 기발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구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깊은 존재론적 성찰을 영화로 추구하였던 유현목 감독과 더불어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이다. 하녀를 김기영 감독 대표작 취급하지만, 내 생각에 하녀는 오히려 김기영 감독의 사회반역적이고 인간의 심연을 해부해 보는 파격이 약하다 (김수용 감독도 좋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평가받을 작품인가 하고 의구심을 표했다). 주류 영화에 김기영 감독의 반역정신이 좀 무릎을 꿇은 감 있다. 김기영 감독의 가장 훌륭한 영화는 내 생각에 고려장이다.

 

대 여배우 주증녀 회심의 걸작이 고려장이다. 주증녀는 최은희와 경쟁상대였을 정도로 연극 시절에는 명성을 날렸던 사람이었으나 영화계에 입문한 다음에는 별 단독주연작이 없다. 개인기를 마음껏 발휘하여 대가급 배우임을 입증할 영화가 별로 많지 않았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 처음에 과학자들끼리 모여 좌담회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쥐를 좁은 데 가두면 새끼를 치면서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너무 불어나면 다 굶어죽게 된다. 그럼, 쥐들끼리 싸워서 서로 잡아먹어서 개체수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사회자가 묻는다, "그럼 사람은요?"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다. 이 영화의 내용이 그것이다. 어느 두메산골, 손바닥만큼 좁은 척박한 땅을 부치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도끼로 머릴 찍어죽이고 목매달아 죽이고 불태워죽이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온다. 내가 지금 봐도 "저런......" 소리가 나오는데, 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감독은 이것이 개인적인 싸움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잔혹한 생물학적 법칙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주증녀가 어느 두메산골에 아들 김진규를 데리고 시집을 온다. 어린 김진규가 굶는 것을 보다 못해 재혼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이미 10아들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김진규가 자기들 먹을 것을 줄인다고 해서 죽일 생각을 한다. 뱀을 갖다 풀어놓아서 김진규가 다리 한쪽을 못쓰게 만든다. 주증녀는 경악하여 아들을 살리려면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남편에게서 위자료 조로 작은 밭을 받아 나온다. 무당은 이 열 아들들이 모두 김진규에게 학살당할 것이라 예언한다. 아들들은 자기들이 한 일도 있고 또 무당의 예언도 있고 해서, 김진규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이렇게 25년이 지난다.

 

이 영화 속 두메산골은 정말 그로테스크하고 살벌한 곳이다. 물 나오는 곳이 한군데밖에 없고 늘 먹을 것이 부족하여 유부녀도 감자 조금 얻고자 몸을 팔려고 하고 남편도 아내를 부추겨 몸을 팔게 하려하고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새끼쥐들처럼 흙을 파고 다닌다. 다들 눈에 살기가 어려 다닌다. 이 두메산골은 팽팽한 긴장, 잔인한 공포가 늘 감돈다. 김진규같은 장애인은 이런 두메산골에서 생산력이 떨어지는 심각한 불량품으로 무시된다. 그래서, 김진규와 어머니 주증녀 사이에는 아주 끈끈한 유대가 생긴다. 김진규는 무시당하는 분노를 농사에 쏟아부어 남들보다 감자를 더 비축해놓는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 마을사람들로부터 감자를 주고 땅을 빼앗는다. 가뜩이나 살기 감도는 마을에서, 이런 김진규의 행동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열 아들들은 김진규의 아내를 납치 강간하고 자결하게 만든다. 굶는 가족들을 위해 억지로 김진규의 집에 아내랍시고 밀고들어온 아역배우 전영선은 쪼그만 아이가 밥 짓고 빨래 하고 조강지처 행세를 한다. 하지만 김진규의 삭막하고 얼어붙은 마음은 녹일 수 없었는데, 열 아들들은 이 전영선을 무당에게 제물로 판다. 항아리에 아이를 넣고 긴 바늘로 찔러죽여 귀신을 항아리에 봉인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후회한 김진규가 쌀을 몇배 주고 전영선을 되사겠다고 했지만 무당과 열 아들들은 전영선을 항아리에 넣고 긴 바늘로 심장을 찔러 죽인다. 김진규는 이것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열아들들은 선을 넘는다. 김진규에게 살인죄를 모함해서 목매달아 죽이려 한다. 김진규 어머니 주증녀는 자기가 고려장되어 산꼭대기에 버려져서 신령님에게 빌어 비를 오게 하겠다고 사정한다. 김진규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에 버리러 간다. 그는 눈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벼랑을 올라간다. 이 장면에서 감정 연출이 아주 대단한데, 김진규와 주증녀의 연기가 대가급이다. 어머니를 지게에 업고 가며 김진규와 어머니는 

"어머니, 그 긴 세월 동안 결혼도 않으시고 어떻게 혼자 지내셨어요. " "난 널 키우며 참 좋은 때가 많았다. 네가 나면서 내 배를 아프게 하는 것도 좋았고, 아장아장 걸으면서 내게 온 것도 참 좋았고, 기타 등등" 굉장히 슬픈 장면이다. 주증녀의 헌신적인 어머니 연기, 그리고 이것을 잘 반응해주면서 마음을 울리는 슬픈 장면으로 만든 김진규. 이런 어머니를 죽으라고 산에 내버리러 가게 강요하다니...... 

 

 

 

 

 

 

 

 

 

해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산 정상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여기 있으면 산신령이 만나러 온다고 어머니는 김진규 더러 얼른 내려가라고 한다. 그런데 산신령 대신 사람 몸집만한 독수리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김진규 어머니에게 달라붙어 산 채로 뜯어먹는다. 백골이 될 때까지. 이 장면도 암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독수리들을 주증녀 곁에 풀어놓아서 주증녀가 벌벌 떨며 연기했을 것 같다. 독수리가 이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다. 사람 몸집만한 독수리가 몰려드는 것도 끔찍한데, 그 독수리가 김진규 어머니를 산 채로 뜯어먹는 장면은 엄청 충격적이다.  

 

김진규는 눈에 살기가 등등해져 돌아와서 도끼를 들고 열 아들들을 죽이러 간다. 일대 십의 싸움이다. 김진규는 큰 아들은 불태워죽이고 다른 아들들은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죽인다. 이 장면도 노골적으로 다 보여준다. 오늘날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면 잔인하다고 비난받을 텐데 당시엔 오죽했을까? 김진규는 또 마을을 지배하던 미신의 중심지인 큰 고목나무를 도끼로 베어버린다. 마을의 독재자이던 무당이 이를 막다가 고목나무에 깔려 죽는다. 혼자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셈이다. 자, 이제 쥐들의 과잉 상태는 해소되었다. 김진규는 이제 밭을 갈고 씨를 뿌리자는 말과 함께 도끼를 버리고 걸어간다. 

 

우리나라 영화들 중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니. 해머영화사에서 뻘건 피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잔인함의 새 경지를 보여줬다고 야단들이었는데, 그것은 이 영화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하지만 이런 잔인함은 보여주기 위한 잔인함이 아니다. 냉혹한 생물학적 법칙 안에서 잔인함은 필연적인 현상인 것이다. 해머영화사에서 뭐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석하고 하지는 않지 않았는가? 

 

아니, 인간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인간을 해부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법칙을 드러낸 영화가 세계에 있는가? 

 

이 영화는 굉장히 표현주의적이기도 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해골들 언덕, 마치 토굴처럼 야성적인 집들, 마을을 지배하는 기괴하게 생긴 고목 등이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면서 환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영화 무대 자체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런 기괴하고 환상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연극적이다. 

 

드마라가 대단하다. 다른 영화 두개 분량의 드라마가 꽉꽉 채워져 있다. 그래서 밀도가 아주 짙다. 각 드라마가 작은 드라마들이 아니다. 롤러코스터처럼 엄청난 파장을 갖고 영화를 들썩들썩하게 만든다. 

 

배우들이 엄청난 대가들이다. 김진규가 다리 저는 역을, 주증녀가 어머니 역을, 전옥이 무당 역을, 이예춘이 열 아들 중 장남이라서 김진규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불에 타죽는 역을 맡는다. 안 그래도 살벌하고 끊임없이 요동치는 드라마를, 사람 냄새 나고 비극적이고 인간 감정의 복잡한 충돌로 만든 것은 대배우들의 공이다. 이예춘과 김진규 간 갈등은 살벌하고 끔찍하고, 김진규가 주증녀를 산에 버리러 가는 장면은 하도 슬프게 그려놓아서 눈물이 맺힐 정도다. 상처를 하고 많이 받아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장애인 역을 김진규는 대배우답게 훌륭하게 그려낸다. 이예춘은 인간적인 구석이라고는 없는 악 그 자체다. 대배우들이 없었다면, 김기영 감독의 기괴한 비젼도 훌륭한 영화로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완성도가 엄청 높은 정도를 넘어서 놀라울 정도다.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은, 감상이라는 말로 부족하고 강렬한 영화적 경험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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