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0
  • 쓰기
  • 검색

8과 1/2 (1963) 창조란 무엇인가?

BillEvans
2896 2 0

 

 

창작이란 무엇인가? 정말 뮤즈의 키스를 받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 같은 것인가? 철저한 계산의 결과인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상상력과 환상의 소산인가? 창작에 있어서 얼마나 다른이의 도움이 필요한가? 여기에 대한 영화가 8과 1/2이다. 대감독인 페데리코 펠리니가 자기 머릿속을 풀어헤쳐 의식, 무의식의 흐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자기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다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창작자 입장에서 본다면 8과 1/2은 전혀 어려운 영화가 아닐 것이다.

뇌를 쥐어짜서 물 한방울을 내는 것이 창작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자기가 방금 만들어낸 영화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어떻게 내 머리에서 저런 

영화가 나왔지? 자기가 봐도 신통하다. 하지만 다음 작품은 뭘 만들까? 영감도 에너지도 다 바닥난 상태다. 제작자는 찾아와서 다음 작품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닥달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기 경험, 의식, 무의식, 환상, 욕망, 경건함 등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뒤진다.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며 뭐라도 잡히지 않나 버둥대듯이. 혹시 창작에 도움이 될 뭔가가 건져지지 않을까 해서. 

어릴 적 훔쳐보았던 창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해서, 한번 스쳐지나갔던 옆집 유부녀와 불륜의 환상, 어리숙한 초보 여배우를 자기 멋대로 뮤즈로 만들어서 

이상화한 다음 그녀가 던져주는 창조의 빛, 어린 시절 신부로부터 질책받았던 강한 성욕의 기억까지.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의식, 무의식은 다 뒤지고 다닌다.

뭔가 잡혀라.

 

이 영화는 이것에 대한 영화다. 의식, 무의식이 막 섞이는 것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의식이 나왔다가 이것이 무의식으로 바뀌어있기도 하고 자기가 욕망을 투사한 상상 속의 여자가 어느새 현실의 여자가 되어있기도 하고. "내 어릴 적 보았던 창녀가 걸어나와서 지금 내 아내와 이야기하는데 그 아내가 돌아서더니 내가 은밀히 욕망을 품던 옆집 유부녀가 되었다가 뜨거운 밤을 보낸 다음 깨어나보니 꿈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꿈을 꾼 것은 창작을 해야겠다는 내 강박관념의 결과물이었더라. 제작자가 와서 돈문제 이야기하고 각본가는 와서 요즘 내 창작능력이 퇴보하였다고 하고 불륜녀 아내 모두 와서 날 괴롭히고.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이 내가 창작을 하게 되는 창조적 힘이었던 것이다." 뭐 이런 영화다.

누가 불평하기를, 현실과 환상이 너무 혼란스럽게 섞여있어서 어느것이 환상이고 어느것이 현실인지 분간 안가게 해놓았다 하던데 

전적으로 오해다. 이 영화는 창조에 관한 것이며, 창조의 과정에서는 현실, 환상, 과거, 현재, 미래, 주관, 객관 다 의미가 없다. 이것들은 신비하게 섞이며 페데리코 펠리니만이 알 수 있는 방식에 따라 결합하여 예술작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에게 누가 이 시에 대해 어떻게 쓴 것인지 설명해보라고 하자 "집에 들어갔더니 누가 있어서 하늘로 가라고 했더니 어쩌구 저쩌구" 해서 그게 무슨 설명이냐는 말을 들었는데, 창조란 이런 것이다. 이것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였다는 것은 정말 천재적이다.  

 

어느 존경받는 학자가 "내가 어릴 적에는 속으로 내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다 강간했다" 하고 적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직하게 말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도 이런 영화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코메디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고호처럼, 창조라는 과정이 창조자의 제 정신과 생명을 갉아먹는 파괴의 과정일 수도 있는데, 

이 영화 속 펠리니의 창작과정은 유희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또한 펠리니의 개성일 것이다. 

 

8과 1/2은 지금까지 펠리니가 만들어온 작품들의 수를 가리킨다.

 

P.S. 영화 처음에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펠리니가 차를 타고 가는데 교통지옥이다. 그런데 차 안에 갑자기 연기가 차서 그는 질식한다. 그는 차문을 열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너무 상쾌하다. 그가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누가 발에 밧줄을 걸고 아래로 잡아당긴다. 제작자다. 그는 결국 밧줄에 끌려 아래로 추락한다. 이것은 펠리니의 꿈인 동시에 현실이기도 하고 환상인 동시에 강박관념이기도 하고 자유인 동시에 직업인으로서 가지는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P.S. 펠리니는 허풍과 과장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 안에 묘사된 그의 창작과정 중 얼마가 진짜고 얼마가 농담인가. 이 안에 묘사된 창작과정이 얼마나 픽션인가. 이 안에 묘사되어 있는 창작과정을 창작하는 그 과정은 또 무엇인가. 8과 1/2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창작과정의 신비에 대한 물음을 계속 준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

  • Trier
    Trier

댓글 0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도뷔시]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5 익무노예 익무노예 1일 전22:17 1027
공지 [디피컬트]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2 익무노예 익무노예 4일 전20:46 1775
HOT [단독] 염혜란, 박찬욱 감독 신작 물망...손예진·이병헌·이... 2 장은하 1시간 전18:23 679
HOT 다시 영화보러 서울가는 시대가 열렸다. 7 oldboy 1시간 전18:02 687
HOT 라이언 고슬링, <라라랜드> 포스터의 손목 각도 후회 8 카란 카란 2시간 전17:18 970
HOT 일본 주말 박스 오피스 랭킹 TOP10 및 성적 정리 (5/3~5/5) 2 카란 카란 1시간 전18:00 212
HOT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해외 SNS 반응 번역 8 golgo golgo 3시간 전16:16 2124
HOT 인터넷 올라온 '수퍼맨' 수트 분석 및 팬아트 1 NeoSun NeoSun 1시간 전17:49 538
HOT <에이리언: 로물루스>, <에이리언 2> 미공개 장... 6 카란 카란 4시간 전15:42 784
HOT 주드 로 주연 ‘스타 워즈’ 새 드라마 <스켈레톤 크루>... 4 카란 카란 2시간 전17:40 436
HOT 영화제들을 가보자.. 6 이안커티스 이안커티스 5시간 전13:58 790
HOT 백상 현재 부문별 후보 근황 / 레드카펫 모음 NeoSun NeoSun 2시간 전17:33 601
HOT bay of blood (1971) 최초의 현대적 슬래셔무비. 스포일러 ... 4 BillEvans 2시간 전16:46 330
HOT 조지 밀러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언론사 첫 ... 2 NeoSun NeoSun 3시간 전15:49 1709
HOT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간단 후기 8 소설가 소설가 7시간 전12:25 715
HOT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해외 SNS 반응들 번역 5 golgo golgo 5시간 전14:06 3610
HOT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쇼생크 탈출> 5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4:43 769
HOT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1, 2화 - 초간단 후기(약 스포) 2 소설가 소설가 5시간 전14:12 852
HOT '혹성탈출' 전작들은 안봐도 되지만서도... 8 golgo golgo 6시간 전13:09 2682
HOT 사무엘 L.잭슨-헨리 골딩,SF 심리 스릴러 <헤드 게임즈&g... 2 Tulee Tulee 6시간 전13:18 408
HOT 페이 더너웨이-하비 카이텔-앤드류 맥카시,초자연 로맨스 &l... 2 Tulee Tulee 6시간 전13:04 260
HOT 개인적으로 느끼는 슈퍼맨 슈트 호불호 10 21C아티스트 6시간 전12:56 1169
113557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분 전19:41 41
113557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분 전19:40 51
1135572
image
스콜세지 스콜세지 5분 전19:40 36
1135571
image
시작 시작 13분 전19:32 93
1135570
image
샌드맨33 13분 전19:32 78
1135569
image
시작 시작 19분 전19:26 128
1135568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7분 전19:18 105
1135567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2분 전19:03 151
1135566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43분 전19:02 192
1135565
image
시작 시작 47분 전18:58 215
1135564
image
카란 카란 57분 전18:48 287
1135563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8:33 251
1135562
image
장은하 1시간 전18:23 679
1135561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8:19 194
113556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8:14 302
1135559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8:11 263
1135558
image
SmartS 1시간 전18:07 228
1135557
normal
oldboy 1시간 전18:02 687
1135556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8:02 140
1135555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1시간 전18:02 184
1135554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18:00 212
1135553
image
Sonachine Sonachine 1시간 전17:59 213
1135552
normal
하늘위로 1시간 전17:57 184
1135551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49 538
1135550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7:44 152
1135549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7:42 306
1135548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7:41 264
1135547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7:40 436
1135546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7:39 297
113554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33 601
1135544
image
로제크림파스타 2시간 전17:18 108
1135543
image
카란 카란 2시간 전17:18 970
1135542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02 482
1135541
normal
카스미팬S 2시간 전16:56 466
1135540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6:54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