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스포] '언더워터' 초간단 리뷰
1. '언더워터'에 대해 정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이고 심해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다. 대뜸 시작부터 황량한 복도가 보이고 꽤 외로워 보이는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등장한다. 노라의 나레이션이 들려오는데 뭔소린가 싶은 내용이다. 외롭고 무기력하다는 이야기같다. 첫 장면만 해도 이 영화는 심해에 고립된 한 개인의 서사인 줄 알았다. 해양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아트무비가 기대됐다. 어느 방향이건 나는 영화에게 뒤통수 맞는 걸 좋아한다. 그것은 영화에게 유쾌하게 패배하는 감정이며 "너 이녀석, 날 속였어"라는 기특함의 표현이다.
2. 갑자기 복도가 터지고 외로워보였던 노라는 동료들을 깨우며 도망친다. 혼자만 살아남을 줄 알았는데 친구가 하나 더 있다. 그리고 꾸역꾸역 동료가 모이더니 흔한 해양스릴러가 돼버린다. 다행히 이 영화는 간간히 힙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그래 뭐 밑밥 깔고 긴장감 넘치는 해양스릴러가 되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영화는 해양스릴러의 전형에 갇혀버린다. 특출나게 쫄깃하지도 않고 힙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영화가 돼버렸다. 처음부터 기대감을 떨어뜨린다면 다행이겠지만 신선해질 여지가 많았음에도 결국 평범해진 영화를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3. '언더워터'에게는 몇 가지 길이 있었다. 먼저 노라의 서사를 중심으로 고립된 인간의 서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것은 '그래비티'나 '더 문'이 취한 방식으로 인물을 최소화하면서 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 여기에 외적 요인이 추가되면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라의 깨달음과 성장을 다룰 수 있다. '언더워터'가 가야 할 첫 번째 레퍼런스는 '그래비티'였다. 두 번째는 인물의 서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사건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언더워터'는 시작부터 심해에 가 있는 상태다. 사실상 이 영화는 심해에서 시작해 심해에서 끝난다. 그렇다면 맥락없이 사건이 터지고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클로버필드'가 이와 같은 방식을 취했고 '큐브'도 초반에는 이렇게 전개된다('큐브'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의 서사를 드러낸다). '언더워터'가 가야 할 두 번째 레퍼런스는 '클로버필드'다.
4. '언더워터'는 언급한 두 레퍼런스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다 결국 어떤 방향도 선택하지 못하고 '레비아탄'이 돼버린다. 추측해보건대 감독은 분명 힙한 해양스릴러를 원했을테지만 제작사에서 해양스릴러의 클리셰가 보여지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괴물을 다 보여주고, 최소한의 사람은 살며, 스펙터클이 있고, 끝내 미스테리로 남아, 속편의 가능성을 남기는 영화. 그런 걸 제작사가 원한 모양이다. 매력적인 방향을 설정해두고도 가지 못한 영화라면 당연히 그런 아쉬움이 생긴다. 특히 괴물을 온전히 다 보여주는 지점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 정도로 감추고 시작한 영화라면 분명 괴물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클로버필드'가 그랬던 것처럼 괴물의 존재를 최대한 감추고 공간을 한정시킨 뒤 스릴러를 펼치는 것이 이상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괴물이 온전히 자기 모습을 드러낼 때는 "이거 완전 '퍼시픽림'이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5. 마지막 장면도 '사족'에 가깝다. 시작부터 그렇게 밀폐시켜놓고 대뜸 마지막에 환기시켜버리는 것은 김이 빠지게 한다. 이럴 경우에는 나가면 어떻게 되는건지 모르게 하고 끝내는 것이 좋다. 이것은 '큐브'와 '에이리언2'가 택한 방식으로, '에이리언2'의 경우 살아남은 존재들의 향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3편을 만들 계기를 마련했다. 공간 안에서 생략한 채 끝을 냈다면 속편으로 연결하기도 쉽고 관객도 미스테리한 기분을 끝까지 안은 채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6. 결론: 태어날 때 굉장히 비범한 아이였는데 자라는 과정에서 평범해졌다면 과정에서 문제를 찾게 된다. 이 경우는 대부분 평범함을 원하는 주변 사람과 획일적인 교육과정, 조언의 부재가 원인이 된다. '언더워터'는 분명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다. 꽤 매력적이고 유니크한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갈등하다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돼버렸다. 이 영화, 좀 아깝다.
추천인 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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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에서 슈트를 착용 했는데 괴물이 내는 새가 지저귀는 소릴 어떻게 들었는지 이해가 안되고요
4디로 개봉 했으면 더 잼났을 장면 많던데 일반으로만 개봉한것도 아쉬웠습니다
정보를 더 감추면서 해저판 <클로버필드>가 되는 편이 더 나았겠네요 ㅎㅎ 확실히 막판의 사족도 흠결이었죠
공감가는 리뷰네요. 방향 설정 제대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