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오드리 헵번 목소리 더빙에 대한 비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헵번 (일라이즈 두리틀 역)
이미 아시는 분도 많듯,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의 캐릭터 일라이자 두리틀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극소수의 몇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헵번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가수 '마니 닉슨'의 더빙된 목소리입니다.
따라서 어쩌다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는지 제가 그 비하인드를 한번 적어보려 합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대개 당시의 여러 할리우드 대작 뮤지컬들이 그렇듯, 브로드웨이 공연을 원작으로 합니다.
당시 공연에서 일라이자 두리틀 역을 맡은 배우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메리 포핀스]로 유명한 줄리 앤드류스였죠.
그래서 공연이 영화화된다고 발표되었을 때, 줄리 앤드류스 본인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그녀가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으리라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히긴스 교수 역의 렉스 해리슨이 뮤지컬과 영화에서 모두 출연했듯, 여러 같은 배우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등장했죠.
"마이 페어 레이디"의 브로드웨이 공연 속 렉스 해리슨과 줄리 앤드류스
하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의 흥행을 걱정해, 당시 영화배우로써는 이름을 크게 알리지 못한 줄리 앤드류스보다
더욱 이름값 있고 흥행이 보장된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캐스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라이즈 두리틀 역의 오드리 헵번은 전혀 배우와 배역을 제대로 고려 안 한 미스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 중 일라이자 두리틀이 부르는 노래는 소프라노 음역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헵번의 목소리는 그와 반대인 알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헵번은 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역을 최대한 잘 소화하기 위해 노래와 춤 연습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헵번은 실제로 역시 50년대에 토니상을 받은 브로드웨이 배우 출신이고,
영화 [화니 페이스]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수록곡들을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소화했기에 노래 실력도 이미 검증된 배우였죠.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노래 "Moon River"를 직접 소화한 헵번
그러나 음역대 자체가 안 맞는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순 없었습니다.
워너는 이미 처음부터 헵번의 노래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대체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지만, 촬영 당시 헵번은 이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마니 닉슨이 본인의 목소리를 덮어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헵번은 뒤늦은 배신감에 크나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모두에게나 친절하고 착한 성격으로 알려진 헵번은 더빙 사실을 알아내자 마자 그 날 촬영장을 박차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촬영장에 돌아와서 배우와 제작진들에게 자신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했다고 하네요.
불쌍한 헵번은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본인의 목소리를 빼앗긴 피해자인데도 말이죠.
결국 이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로 인해 무려 세 명의 사람이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본인이 맡아야 마땅할 배역을 충분히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헵번에게 뺏기고,
오드리 헵번은 캐스팅 이후 노래 연습을 열심히 했음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남에게 뺏기며,
마니 닉슨은 영화사가 하라는 대로 비밀리에 목소리 더빙을 했으나 당시 크레딧에 이름도 못 올리는 등 그에 대한 충분한 대우를 못 받았죠.
과거의 할리우드가 돈을 위해서 얼마나 악덕스러운 짓을 하고 배우들에게 상처를 안겼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자신의 역할을 뺏긴 줄리 앤드류스를 찾아와 사과한 건 제작사가 아닌 오드리 헵번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앤드류스의 역을 가로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캐스팅을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앤드류스 역시 헵번은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둘은 이후에도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그래도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의 목소리가 노래 속에 그대로 담긴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Just You Wait"과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화니 페이스]의 노래들이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Moon River"만 들어도 그녀가 얼마나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배우인지 알 수 있는데, 이렇게 그녀의 재능을 낭비해버리다니 본인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오드리 헵번은 영화가 개봉하고 어느 인터뷰에서 만약 더빙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출연을 안 했을 것이라고 말을 했고,
본인의 목소리를 쓰지 않는 이상 다시는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아래 영상을 통해서나마 더빙되기 이전 오드리 헵번이 직접 부른 노랫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데요,
톤이 다소 어색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평소 두리틀의 말투와 그대로 어우러져 개인적으로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이 페어 레이디]를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만, 항상 더빙 사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무언가가 있네요ㅠ
추천인 14
댓글 1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저도 이 사실 알고 있었는데, 참 안타깝더라구요.
근데, 당시 영화사들이 배우들과는 노예계약, 전후 황금기였던 영화 산업으로 정말 배우들에게 마약 성분을 주사하면서 까지 혹사시키는 게 일상이었다고 하니..-_-;; 여배우에 처우도 몹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전 헐리우드 영화, 특히 오늘날 명작으로 불리는 뮤지컬 영화, 그리고 무성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오면서 노래나 목소리 대역을 쓰는데, 그런 배우들은 엔딩 크래딧에 이름조차 올리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로 하기도 했었다고 해요.
나름 연기도 잘하고 실력도 좋은데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요.
덕분에 다시 기억을 떠올리고 합니다.
막상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건 유명하지 않은
메리 포핀스의 줄리 앤드류스였죠.멍청한 제작자들.
남편이 이상한 인간이에요. 애초 비밀 계약이었고 마니 닉슨도 이를 알고 있었죠. 마니 닉슨은 계약대로 한 것이고 억울할 것도 없는게 원래 목소리 대역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 당시 뮤지컬 영화의 흐름이기도 했고. 전 영화는 이게 나쁘지 않다고 봐요. 레미제라블처럼 동시 녹음이 아닌 이상 스튜디오 녹음 버전을 다시 입히는건데 꼭 연기한 배우가 노래를 해야 하나 싶거든요.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경우는 렉스 해리슨 고집으로 렉스 해리슨은 동시 녹음으로 갔죠. 염정아나 니콜 키드만 같은 배우처럼 테이크를 많이 가면 약해지는 오드리 헵번이 렉스 해리슨의 연기 고집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렉스 해리슨의 오스카 수상 소감이 가관이었어요. "이 상을 두 일라이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라는 식으로 얘기했거든요. 헵번은 오스카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당시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메리 포핀스의 줄리 앤드류스가 받으면서 마치 마이 페어 레이디로 남녀 오스카 수상을 받은것같은 효과가 일어났는데 두 일라이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게 맥이는거죠.
헵번 뿐만 아니라 프레디 역의 제레미 브렛도 촬영 중간에 노래 대역을 쓴다는 통보를 받고 절망했는데 헵번이 워낙 스타다 보니 워너의 이중 계약으로 혼자만 당했죠.
안타깝습니다 ㅜㅜ
<로마의 휴일> 캐스팅 비화도 재미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