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선덜랜드 - 마음을 움직이는 실패의 기록 (넷플릭스)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하부리그로 강등된 축구팀, 선덜랜드 AFC의 1년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위기 - 단결 - 노력 - 극복/승리
스포츠 드라마의 뻔한 공식을 완벽하게 빗겨나 있는 이야기죠.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당한 상황이니 일단 크나큰 위기에 빠진 것은 맞는데, 현실에서는 그 위기에서 다시 헤쳐나오기가 정말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몸값이 높은 팀의 핵심 선수들을 불가피하게 대거 정리해야 했으며, 새롭게 팀의 기둥이 된 신입 선수들은 기회만 된다면 어두운 전망의 선덜랜드를 떠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수선한 팀 분위기에 경기력은 점점 떨어지는 악순환, 그야말로 '안되는 팀'의 전형이네요.
2부 리그로 강등되어 쪼그라든 팀의 수입과, 이미 프리미어리그 레벨에 맞춰져 비대해진 지출 규모 때문에 심각한 적자는 일상이 됩니다. 경영진이 계속 돌파구를 찾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경영 방식은 많은 상황에서 구단 내부 직원들이나 팬들과도 마찰을 일으키기 일쑤죠.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선덜랜드 AFC 구단 자체의 실패보다, 구단과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성입니다. (다큐의 분량을 보면 구단 내부의 사정 / 팬들의 온갖 희로애락이 대략 반반으로 나눠지고 있어요)
선덜랜드는 한때 영국 최대의 선박 생산량을 자랑하던 공업도시였지만, 선진국의 많은 공업도시들처럼 어느 순간 성장 동력을 잃고 급격히 쇠락해버렸습니다. 전체적인 소득이 줄고 이렇다 할 즐길거리도 없는 이 곳에서, 자랑스러운 프리미어리그의 일원인 선덜랜드 AFC는 자연히 도시의 자부심, 나아가 도시의 영혼 같은 존재로 자리잡은 겁니다.
이에 다큐는 구단의 경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선덜랜드 시민들의 삶에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젊음을 잃은 도시임을 상징하듯, 다큐에 출연하는 팬들은 과거의 영광을 생생히 기억하는 중노년층이 대부분입니다. 도시와 구단의 황금기를 모두 겪은 그들은, 자신의 삶과 역사를 구단과 동일시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 팬들은 이제 와서 선덜랜드에 대한 응원을 철회하는건 꿈도 꿀 수 없다고 하죠.
비교적 젊은 팬들은 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경기를 보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부모에 대한 아기의 사랑이나,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동물들의 사랑이 연상되는 부분이도 하구요.
이 다큐멘터리는 팀의 실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팬들의 반응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구단이 아무리 실패를 겪으며 추락해도, 이들은 술에 만취해 선수들과 경영진에게 욕을 퍼붓고 망연자실해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절대 사랑을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참담했던 시즌이 끝난 후, 아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온 아버지의 목메인 한 마디는 이 시리즈의 제목이 되었죠.
".... 죽어도 선덜랜드잖아, 그렇지?"
이러한 팬덤의 모습은 프로 스포츠의 지역적 기반이 미약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생소하고 신기한,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 어떤 성공담보다도 감명 깊은 풍경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다큐는 실패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착오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헛되다고 할 수 없는, 지역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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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 방영 후 미국에서 선덜랜드 구단 관련 매출이 급증했다고... ㅎㅎ
인터뷰하는 선수들도 대부분 현재 팀을 떠난 선수들이다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