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영화제] 남방차점적취회 (2019) 관람평
호수의 여인
남방차점적취회 (南方車站的聚會, The Wild Goose Lake) _ 디아오 이난, 2019
디아오 이난의 신작 누아르다. <백일염화 (白日焰火)>(2014)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디아오 이난은 신작의 행선지로 칸영화제를 선택했다. 이미 <야간 열차>(2007)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분에 나갔던 그로서는 당연한 노선일지도 모른다. <남방차점적취회>가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칸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대받으면서, 디아오는 중국영화의 다음 주자로 확실하게 이름을 알린 셈이다. 한국의 영화제에선 아직 상영되지 못했는데, 영화가 워낙 어둡고 거칠어서 개봉은 불투명해 보인다.
<남방차점적취회>는 올해 마카오영화제의 ‘월드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됐다. 영화의 상영에 앞서 감독의 무대 인사 및 프로그래머의 영화 소개가 있었다. 선형적이지 않은 구조와 탁월한 이미지를 영화의 특징으로 소개한 프로그래머는, 훌륭한 누아르로서 쿠엔틴 타란티노와 박찬욱의 영화를 능가한다고 했다. 완전히 수긍할 수는 없으나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을 전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평가였다. 작년 마카오영화제의 문제작이 <디아만티노>(2018)라면 올해는 <남방차점적취회>다.
비 오는 밤, 남자와 여자가 어제와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서로 기억을 전달한다. 갓 일어난 사건과 뒷이야기는 그런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지역의 모터바이크 갱 사이에 분란이 생긴다. 관계를 중재하는 자리에서 총격이 발생해 관계는 더 나빠지지만, ‘모터바이크 훔치기’ 시합 안이 새롭게 제시되고 게임이 벌어진다. 한쪽 갱의 리더인 남자는 시합 도중 음모에 휩싸여 실수로 경찰을 죽이고 만다. 다음 날, 아내를 만나기로 한 남자 앞으로 웬 여성이 나타나 아내 역할을 맡겠다고 제안한다.
무대 인사에서 감독은 “왜 누아르 장르냐?”라는 질문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중국에서 양극으로 나뉜 계층의 문제를 다루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범죄를 통해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백일염화>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더 어두워졌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호숫가 지역’은 경찰도 쉽게 개입할 수 없는 우범지역이다. 자연광을 강조한 카메라는 극빈층의 열악한 삶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활동하는 범죄자의 모습을 담기 위해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이 영화의 풍경은, 프로그래머가 언급한 타란티노나 박찬욱 영화의 그것과 별로 상관이 없고, 1960년대 경제 발전의 그늘에 놓인 빈곤층을 보여준 일본영화나 필리핀의 서민을 다룬 리노 브로카의 영화와 연결해 읽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카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디아오 이난 감독(사진 우측)
이미지가 실제 중국 하층민의 삶과 어느 정도로 닮았는지 모르겠으나, 풍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강렬하다. 지하의 막힌 공간에서 흔들거리는 백열전구 아래로 몰려 앉아 서로 으르렁거리는 갱들의 모습은 <엠>(1931)의 군중 신을 재연한다. 사람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낮의 에메랄드빛 호수와, 갱과 경찰과 주인공이 엇갈려 헤매는 밤의 아파트 미로를 대비시키는 방식이 탁월하다. 야광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1970년대 말에 유행했던 보니엠 <라스푸틴>과 징기스칸의 <징기스칸>에 맞춰 군무를 추는 장면은 싸구려 코미디와 아방가르드의 효과를 동시에 득한다. 그 위로, 그림자와 비가 빚는 암울한 톤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의심의 흔적이다. 극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남자는 아내를 믿어야 하고, 그만큼 다른 여자도 믿어야 한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믿고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 배신자와 경찰과 갱의 조직원들도 어떤 믿음을 기둥처럼 붙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는 게 비극이다. 의심이 그들의 믿음을 파괴한다.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영화의 비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의심은 대체로 돈 때문이다. 크든 작든 돈에 대한 욕망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디아오 감독은 거기에서 현대 중국의 블랙홀을 찾는다.
의심으로 내달리는 영화이지만, <남방차점적취회>의 엔딩은 아름답다. 그건 평범한 반전이 아니라, 어떤 세계관을 뒤집는 정도다. 형사가 엔딩에서 지었던 미묘한 표정, 스크린을 보는 나도 아마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주연을 맡은 호가는 왠지 나카다이 타츠야와 비슷하다(닮았다기보다 느낌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위에서 언급했듯이 <천국과 지옥>(1963) 같은 영화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팜므파탈로 분한 계륜미의 바짝 마른, 건조한 매력은 압권이다. 과연 현대 중국영화의 중요 배우답다.
● 대사의 양이 적지 않은 영화다. 중국어 자막 밑으로 깨알같은 영어 자막을 읽느라 너무 힘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온 중요한 자막은 아예 읽지도 못했다. 뭐였을까.
이용철ib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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