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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Dilbert Dil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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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와의 전쟁]은 그러니까.....제목이 하나의 거대한 맥거핀입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조직폭력배와 이에 영합하는 인간군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약도 나오고, 사시미도 나오고, 나이트 클럽도 나오고, 부산도 나오지만(응?) 이거 다 ~ 하나의 '장치'에요. [범죄와의 전쟁]의 부제는 무려 [나쁜놈들 전성시대]인데 더 정확한 부제로 대체하자면 [한국의 XY염색체들이 대가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어떻게 끼리끼리 모여서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가에 대한 생태학적 보고서]정도가 좋겠습니다.

 

 영화에서 '사내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나옵니다. 하나, 강자와 약자. 둘, 파트너. 셋, 아버지와 아들. 세번째 케이스는 혈연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첫번째와 두번째의 절충형이라고 보면 되겠죠. 최익현(최민식)이 회상하는 인생역정은 적당히 닳고 닳은 '사회인'이 기존의 공동체에서 퇴출당한 이후 저 세단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다시 정착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결코 아웃사이더들의 따뜻한 연대의식이라거나 엣지있는 현대교양인들의 의사소통 따위의 '말랑말랑한'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최익현을 보자. 평론가 듀나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는 '그가 사는 세계의 룰에 의심없이 완벽하게 적응한 평범한' 인물입니다. 이것을 네글자로 줄이면 '닳고 닳은'정도가 적절하겠네요. 그렇다면 최익현의 세계란 어떤 곳인가요? 영화는 즉시 그 답을 줍니다. 아홉글자로 표현해볼까요? 적당하게 해쳐먹는 곳. 그러니까 이 질서가 우리가 교과서에서 봐 왔던 그 질서가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이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아이템은 인맥과 직위에요. '집안 사람'을 통하면 밀수도 용인되고, '주임'정도 되면 봉투도 받는 그런 세계지요. 만수산 드렁칡이 얽히듯 끼리끼리 천년만년 해쳐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늘 그렇듯이 어디선가 문제는 터지기 마련이고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조직은 꼬리자르기에 매우 능숙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하지요. "씨발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리하야 최익현은 "씨발 내가 이기"기 위해 건달의 세계로 투신합니다. 어라? 이 동네도 최익현의 세계와 비슷하네요. 하나, 나와바리 가르고 그 안에서 해쳐먹는다. 둘, 보란듯이 위세떠는 것이 삶의 보람이다. 해서 최익현은 소질과 적성을 살려 이 "세계의 룰에 의심없이 완벽하게 적응"해 나갑니다. 이 때부터 영화는 작정하고 코미디로 나가요. 수컷들이 모여서 태권도 단수와 건달의 품격과 가오와 같은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나누는 그 장면들이란! 이 장렬한 허세들을 말이 되게 연결해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종친회로 대표되는 인맥,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 영화속의 인물들은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지점에서는 이해와 설득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구촌의 손자", 혹은 "은혜갚는 두꺼비"와 같은 비합리적인 권위에 의존하거나, 혹은 다짜고짜 맥주병으로 정수리를 깝니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 검사가 등장합니다. 이 혼란한 정국을 쓸어버리고 새시대를 열어줄 수 있는 정의의 사도! 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세계도 공고한 룰이 있습니다. "어디 검사 어깨에 니 맘대로 손을 얹나?" 뭐 이런식이죠. 최익현은 이번에도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최익현이 검사와 일종의 담합을 맺고 건달의 세계를 빠져 나오면서 내뱉는 대사가 인상적이더군요.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씨발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씨발 새끼들아." 최익현, 사내, 남자들이 사는 세계는 결국 이기기 위해 싸우는 세계, 혹은 살아남기 위해 이겨야 하는 세계입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생계형 투쟁쯤 되겠죠? 그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거치고 나서야 최익현은 새로운 세계의 중산층으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손자를 안아든 최익현은 이제 비로소 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우리는 기어이 그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야 맙니다. "대부님" 그게 보복이 되었든, 혹은 새로운 수컷과의 친교가 되었든, 허세부리며 서로를 제압하기 위한 개싸움은 계속될것이라는 암담한 엔딩이지요.

 

 감독의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볼까요. 윤종빈의 메이저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봤던 사람이라면 [범죄와의 전쟁]이 궁극적으로는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 입대, 입사, 혹은 다른 형태의 공동체에 진입하기 전에 우리가 되뇌이거나 충고랍시고 전해듣는 '세상의 이치'들이 있지요. 모나지 마라, 눈치껏 해라, 인맥을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그 이면에서 은밀하게 전해듣는 또다른 '이치'들이 있습니다. 얕보이지 마라, 만만해 보이는 새끼는 기회봐서 잡아먹어라, 이기는게 장땡이다....우리가 아직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는 '이치'들이 사실은 꼰대스러움, 유식한 말로는 전근대성의 유의어일 뿐이며 이런 것들에 목매달다가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된다는 분노를 윤종빈은 집요하게 건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손자나 손녀를 안아들때쯤,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최익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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