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탕고 버섯인간의 습격 (1963) 단단한 호러영화. 걸작. 스포일러 있음.
마탕고 버섯인간의 습격은
싸구려틱하게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일급영화사에서 일급배우들을 고용해서 일급각본에다가 대예산으로 만든 영화다.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던 요트가 미지의 섬에 불시착하는 바람에,
모두 죽음의 공포를 겪는다는 내용은 너무 흔하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다.
그 섬은 이상한 거대버섯으로 넘쳐나는 섬이다.
사람 하나, 동물 하나 없다. 형형색색 몽실몽실 부풀어오른 거대버섯들이
여백 하나 남기지 않고 섬을 빽빽히 채우고 있다.
그로테스크하다. 주인공들은, 이 섬이 먹을 것 하나 없는 황량한 장소임을 발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들은 탈진에다가 노이로제상태에 놓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해"하다가, 점점 더 서로 싸우고, 마침내 서로 죽이려까지 하게 된다.
어느 사람이 엄청난(?) 착상을 하게 된다. "먹을 것이 왜 없지? 저 버섯을 먹으면 되잖아?"
저거 먹어도 되는 건가? 어쨌든 굶주리는 것보다 낫다. 그런데, 희한하게 버섯의 맛이 좋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그는 버섯에 중독이 되어 계속 먹게 되고, 점점 더 버섯이 되어 간다.
상당히 섬세하게 각본이 쓰여져 있다.
두개골 속이 버섯으로 교체되면서,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해진다. 공격적이 되고, 인간의 윤리나 상식같은
것을 벗어나게 된다. 마약을 멏대는 맞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처음엔, 버섯으로 변하는 친구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그룹을 벗어나 버섯들로 뛰어간다.
버섯으로 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뇌, 상식, 죄의식, 고통같은 것 다 버려 버리면서, 행복한 버섯이 되어가는 것 말이다.
이것은 군국주의같은 것을 상징할 수도 있고, 종교를 상징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고통이나 괴로움, 굶주림을 버리는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옳은가?
인간은 고통이나 굶주림을 가지기에, 인격을 가지고, 자의식을 가지고, 가치를 가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버섯으로 변하는 것에 저항하고, 점점 더 좁아지는 그룹 속에 남아, 고통과 굶주림, 공포에 저항하는
주인공이야 말로 참된 인간이다. 고통은 인간의 본질이다. 공포도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두개골이 환각작용 일으키는 버섯으로 차 오르며,
고통 없는 환각상태에서 쾌락만이 남아있는 버섯인간들은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형태만 인간을 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그 본질 속에서도 인간임을 버리는 것일까?
무슨 버섯이 나와서 고어처럼 잔인한 학살을 벌이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속 공포는,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버섯이 되어 버릴 지 모른다는 공포다.
이 공포가, 엄청나게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공포로 강력하게 살아난다는 것이,
이 영화가 훌륭한 점이다.
그렇다. 저 끝간 데 없이 섬을 채우는,
형형색색 그로테스크한 거대버섯들 - 다 버섯으로 변한 인간들이다.
이 섬은 인간들로 처음부터 가득차 있었다. 인간들로 가득찬 그 한가운데 있으면서,
여기는 무인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군국주의 사회를 상징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의 정체성, 고뇌, 고통같은 것은 신에게 맡겨 버리고,
정신적 환각상태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는 종교를 상징할 수도 있다.
아니면, 대중 속의 소외감이나 고독같은 것을 그려내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주인공 혼자 남는다. 모두 뛰쳐나가 버섯이 되어 버렸다.
버섯으로 변한 친구들이 손짓하며 그를 부른다. 왜 버섯이 되는 것에 그동안 저항했는지 모르겠다고.
정신줄 다 놓고 버섯이 되어가는 것이 이리도 행복하고 황홀하다고.
이제 이 섬에서, 오히려 주인공이 이상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고통이라고는 없는 행복한 바보세계에서,
굳이 고통과 굶주림, 고뇌를 버리는 것에 혼자 저항하니 말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저 모든 버섯들이 그를 향해 걸어온다. 뭐, 버섯들이 와서 그를 물어뜯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버섯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대중을 상징?), 그는 대중 속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낀다.
주인공 혼자 섬을 탈출해서 문명세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섬에서 있었던 사실을 말하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그는 깨닫는다. 버섯들이 지배하던 사회나, 인간문명사회나 똑같다.
무언가에 자신의 양심이나 고뇌같은 것을 위탁하고, 대중 속에서 고독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 -
현대인이라고 다른가? 버섯인간들 사이에서 버섯이 되지 않으면 느끼는
정신적 압박과 고통 - 문명사회라고 다른가?
여기라고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할 일이 없는가?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낙인찍는 것이 없는가?
그는 점점 더 후회하게 된다. 차라리, 버섯사회에서는 모든 고통을 버리고 황홀과 행복만 남는
상태라도 있었다. 이 문명사회는 인간의 양심과 죄의식을 버리고, 대신 다른 종류의 고통과 고독을 안는다.
그는 버섯사회를 그리워한다. 그는 그 섬을 떠나서는 안되었다.
정신병원 안에서, 그도 두개골 안에 광기와 고통이 차올라간다.
배우들도 일급연기를 펼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대미술이다. 화려한 환상과 상상력을
화면 안에 구현해놓은 듯한 조각들로 넘쳐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 영화는 훌륭한 표현주의영화다.
추천인 5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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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60년대에 일본 사회가 왜 끓어오르던 시절이었나요???
전후 일본사회가 625 이후로 파멸은 면했습니다. 일본의 정신적 풍경은 혼란스러웠죠. 보수적인 일본 전통을 강조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부터 해서, 반전주의, 휴머니즘, 공산주의까지. 이 모든것들이 영화에 반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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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전으로 했는데 소재는 같아도 섬나라만이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랄까 주제의식 같은게 확실히 구분되네요. (이것도 고지라 제작진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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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합니다
고도성장기 일본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온갖 개성넘치는 영화들도 만들고, 관객들도 그걸 수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