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이토 준지가 이야기하는 공포와 유머의 경계
어머니의 극심한 억압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보는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그의 삶은 기능 장애를 겪고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런 남자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아프고도 웃기는 수많은 실수를 거듭하며 현실과 악몽의 경계를 잃어버린 광기의 여정을 그린다.
“감독님은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가족의 문제를 그려왔잖아요.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의 의존성과 독선은 공포적인 모티브이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이어지죠.
보가 기념품으로 준비한 성모상 뒷면에 어머니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는데, 잉크가 다 떨어져 마지막 ‘LOVE'라는 글자만 지워져 버리는데, 그 섬세한 연출이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토 준지)
“이토 선생님의 작품에도 ‘이상적인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개념을 잘 전복시키고, 거기에서 벗어난 일탈을 그린 작품들이 있어요. 마치 완벽해 보이는 사과의 안쪽에는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요.
전제로 깔려 있는 것은 집단적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풍경, ‘목가적인 일본의 농촌’이나 ‘정돈된 일본의 도시’와 같은 것들을 멋지게 위협하고 파괴해 ‘애초에 전제가 잘못된 것 아닐까?’라는 것까지 표현해요. 그렇게 제시된 이미지에 있는 엽기적인 유머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웃게 돼서 그 점이 정말 좋아요” (아리 애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애스터가 코미디로 분류하는 작품이다. 특히 4부로 구성된 1부에 해당하는 초반부는 바로 그런 엽기적인 유머가 수없이 펼쳐진다. 수도관 고장과 물 없이 마시면 죽는 약, 이유 없는 소음 민원, 집 앞을 배회하는 알몸의 살인마, 방 안에서 꿈틀대는 독거미 ......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여러 부조리는 예를 들어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마을을 그린 이토의 작품 《소용돌이》에도 이어진다.
“제 경우, 작품에 그리는 불안감은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죠.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가슴 한 켠에 무언가 걸리는 것 같고, 막연한 불쾌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 - 그것이 저의 세계에 대한 인식에 색을 더하는 것 같아요” (아리 애스터)
“저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을 그리는 것은 그런 불안을 극복하는 작업과도 같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왜곡을 작품 속에 풀어냄으로써 자신을 정화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치료와도 같은 것이죠” (이토 준지)
웃음은 ‘어떤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두 사람의 창작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불안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창의력은 그것을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증폭시켜 관객 앞에 내놓는다.
“사람들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들여 ‘뭔가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게 한 뒤, 예상치 못한 것을 던져 충격을 주는 것. 공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스리드(mislead: 오해를 이끌어내는)와 농담의 요령은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 의식한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재앙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독자에게 ‘어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고, 그보다 더 기괴한 것을 준비하는 이토 선생님의 작품과도 비슷한 점이 느껴지는데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놓이는 것은 관객이나 독자에게는 고문과 같은 것이겠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에서 저는 변태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아리 애스터)
악몽에 사로잡힌 현실을 살아가는 보의 불안의 근원에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믿게 한 ‘질 나쁜 거짓말’이 있다. 하지만 실은 보가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역시 거짓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계기만 있으면 발산하는 광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작품은 제시한다.
“누구나 광기라는 부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표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든 작든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물의 광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은 ‘내가 광기에 빠질 것 같을 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억제하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감각,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토 준지)
광기의 세계에 휘둘린 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만, 아리 애스터의 엽기적인 유머는 그 진실이야말로 가장 큰 광기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끝나고 고요해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은 그 광기에 사로잡혀 눈도 깜빡이지 못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계약을 맺고 규칙에 얽매여 있죠. 거기에 따르는 막막함을 깨뜨리고 깨부수는 행위, 즉 광기에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광기와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광기를 그리는 예술은 일종의 구원이 되죠. 스스로가 광기에 휩쓸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그 세계를 맛볼 수 있으니까요” (아리 애스터)
(출처: 일본 하퍼스 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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