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개봉 신작들 관람 후기(가여운 것들, 웡카, 페라리, 아이언 클로, 등)
<더 크리에이터> 이후 극장 방문이 뜸하다가 보고 싶었던 작품들이 전부 12월 말 ~ 1월 초에 몰리면서 야심찬 무비 마라톤을 진행했습니다.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런닝 타임과 상영 시간을 딱딱 맞춰 공백 없이 11시간을 쭉 달리고 왔습니다. 쉽지 않은 강행군이었네요ㅠㅠ
1. 웡카
프로덕션 디자인도 훌륭하고, 연말연시 가족 영화로써의 의무를 톡톡히 다 합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티모시가 가진 마스크나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 못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니 뎁의 인상이 아직도 너무 강렬해서 그런진 몰라도, 웡카 특유의 엉뚱하고 괴짜스러운 모습보단 마말레이드 대신 초콜릿을 좋아하는 패딩턴을 의인화 한듯했습니다. 한없이 착하고 따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캐릭터의 느낌이 너무 강했다는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젊은 웡카라서 그 부분을 더 부각한 것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제 웡카의 따뜻한 부분은 충분히 봤으니 속편에선 좀 더 예측 안되게 막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폴 킹 감독이 상당히 안전하게 플레이하려고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팀 버튼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그리워지는데, 부디 본격적으로 공장을 지을땐 더 통통 튀고 신박한 연출을 볼 수 있길 바래봅니다.
2. 페라리
기대에 반도 못미치는 무미건조한 작품이었습니다. 드라이한 각본 탓에 배우들의 연기마저 묻히고, 레이싱 영화인지 엔조 페라리의 전기 영화인지 아님 처첩간의 갈등을 다룬 치정극인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입니다. 편집에도 결함이 있는듯 페이싱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몰입하려고 하면 흐름을 다 끊어먹고 루즈하게 만들어서 열 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제 인생작 중 하나인 <포드v페라리>의 EP로도 크레딧을 올린걸 처음 알았는데, 그래서 더욱 대조적입니다. <히트>과 <콜래트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고는 믿기 않을 만큼 캐릭터 빌딩이 루즈합니다. 페라리 팀 레이서들도 스크린 타임에 비해 기억에 남는 인물이 단 한명도 없고, 조금이라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담 드라이버를 정말 좋아해서 신작 나오는 족족 다 챙겨보는 편인데, 아담의 연기도 크게 와닿진 않았습니다. 오스카 후보로 많이들 꼽는 페넬로페 크루즈도 크게 인상 깊진 않았습니다. 쉐일린 우들리는 미스 캐스팅같고요.
촬영은 정말 좋았는데, 그 외엔 전체적으로 굉장히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3. 아이언 클로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을 웰메이드 레슬링 작품입니다. 아버지 프리츠부터 4형제까지 캐스팅이 너무 찰떡이고, 잭 에프론의 인생연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지컬 적으로 감정적으로도 상당한 열연을 펼쳤습니다. 현지에서는 요즘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제레미 앨런 화이트 덕에 소녀팬들이 꽤 몰릴 것 같은데, 전성기에 박차를 가하는 좋은 연기였습니다. A24 특유의 예측 불허의 정신 나간 연출은 없어도,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감정을 잘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원래도 본 에릭 문의 저주를 알고 계셨거나, 스포츠 영화 좋아하시면 꼭 관람 추천드립니다. 실화 기반인 만큼 최대한 내용을 모르고 극장을 들어가시는걸 추천드릴게요!
4. 가여운 것들(푸어 띵스)
여리고 순수하고 가엽다는 이유로 끝없이 행해지는 보호를 빙자한 구속과 억압. 가여운 것들이 끝없이 더 많은 가여운 것들을 낳는 란티모스만의 디스토피안 월드입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살상로봇이나 인간인지 AI인지 구분이 안가는 칙칙하고 암울한 미래도시보다 어쩌면 더 잔인하고 암담한 디스토피안 월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AI로 그린 듯 아름답지만 어딘가 이질적이고 부조화스러운 이미지 덕에 더욱 괴상하고 섬뜩한 느낌을 극대화시킵니다. 우리가 아는 장소이지만 사는 사람들과 환경이 아예 달라서,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닌 평행 우주 어딘가에 있는 이세계라고 하는게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별다른 설정 없이도 란티모스가 창조한 세계가 가진 흡입력은 어마무시한데, 다섯 편중 가장 마지막에 관람했음에도 가장 집중해서 봤을 만큼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미친듯이 빨려들어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근래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수위가 높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입니다. 과하지만 이유 없이 과하다기 보단 분명히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이기에 거북함을 살짝 덜어줍니다. 엠마 스톤의 살신성인 연기가 대단했지만, 한편으론 이정도까지 몸을 내던지며 열연하기까지의 목표의식과 아티스트로써의 열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캐릭터가 성장함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연기가 실로 대단했습니다.
마크 러팔로는 실제 성격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엠마스톤 인터뷰 피셜) 옹졸하고 치졸한 하남자를 연기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는 영국 액센트까지 캐릭터의 엽기적인 이미지를 더 부각시킵니다. 윌렘 데포 역시 특수 분장을 뚫고 나오는 고유의 분위기가 엄청나고, 라미 유세프라는 젊은 코미디 배우까지 좋은 연기를 선보입니다.
란티모스가 가장 공들여 만든 야심작이며, 정신 나간 컨셉이지만 컨셉에 사로 잡혀 으스대는 느낌이 아니라 정교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감당하긴 버겁지만 감당만 한다면 여러 사람들의 인생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5. 아쿠아맨 2
국내 미개봉작은 아니지만 HBO 맥스에 풀리기 전 극장에서 먼저 관람하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워낙 안좋은 평을 많이 봐서 그런진 몰라도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가장 중요한건 관람 내내 이 위기가 어떻게 해소될지 궁금증이 자리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편의 초중반 액션 시퀀스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전편만큼은 아니어도 칭찬할만한 괜찮은 씬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이복 형제의 버디 무비, 7080 아케이드 게임 효과음, 그리고 삽입곡 Spirit In the Sky 등 군데군데 타이카 와이티티와 제임스 건의 색채가 묻어나서 반갑기보단 게으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충분히 본인 색채가 뚜렷하고 능력있는 제임스 완 감독이라서 더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DCEU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제이슨 모모아를 새로운 안티 히어로 로보(Lobo)로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됩니다.
6. 메이 디셈버
극장에서 관람하진 않았지만 미국 넷플릭스 서버에서 12월부터 스트리밍 중인 작품입니다. 실제로 일어난 여교사의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을 루즈하게 각색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입니다.
오묘한 음악과 어정쩡한 블랙 코미디가 잘 어우러져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캐롤>이나 <다크 워터스>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헤인즈 감독의 재치가 보이는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할리웃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인 나탈리 포트만의 "오버 더 탑" 연기도 좋았고,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이후 괜찮은 주연작을 만나서 정말 좋았습니다.특히 찰스 멜튼이라는 배우가 보인 의외의 열연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객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올해 역시 전년도와 비슷하게 대형 블록버스터들보단 예산에 상관 없이 컨셉 참신한 웰메이드 작품들이 큰 인기몰이를 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당초 예정된 대형 작품들도 많이 없는게 사실이고요. 기회가 된다면 저의 24년 기대작들도 다뤄보겠습니다!
빼꼼무비
추천인 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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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레터박스,트위터 등 해외 평에서도 편집 문제가 많았다고 부자연스러운 흐름과 자동차 충돌 시퀀스에서도 cg문제도 있다고 했는데 역시.. 음향 믹싱에서도 이상하게 들리는다는 평이 많더군요..
웡카랑 가여운 것들이 젤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