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의 아버지 (2023) 미야자와 켄지의 아버지 이야기. 스포일러 있음.
야쿠쇼 코지가 나왔다고 해서 본 영화다. 원래 전기물을 좋아하는데, 픽션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실제 사건들이 핍진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은하철도의 밤 등 100편의 동화를 쓰고 시를 써서 최고문인으로 지금 평가받는 미야자와 겐지의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야쿠쇼 코지가 아버지로 등장한다.
만화 은하철도 999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유명한데, 일본어는 모르고 해서 영화 내내 등장하는 그의 아름다운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시들이라고 하니 무척 아름다울 테지만 말이다.
겐지는 천재이지만, 아버지는 평범하다.
지극히 성실하고,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고, 자식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밀어주려는 사람이다.
대대로 이어내려온 전당포를 자신에게 물려받도록 강요한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대대로 해온 전당포로 말미암아 부를 이뤘지만, 동네사람들에게 박하게 하지 않고 인심도 얻고 해서
존중을 받는 편이다. 은행에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금을 제공해줘야 한다 하는 사명의식도 있다.
딱, Shall we dance 에 나오는 샐러리맨의 메이지시대 판이다.
이런 평범한 아버지의 눈에 비친 돈키호테타입 천재 미야자와 겐지의 일생이 주이야기다.
참 저렇게 살기도 힘들겠구나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실현불가능한 꿈을 좇는 사람이 아들 겐지다.
중학교를 80명 중 60등으로 졸업하고서도 상급학교로 진학하겠다고 한다.
전당포를 하려면 중학교로 충분하다고, 더 공부하다가 문학같은 거 하겠다고 하면 집안 망한다고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쓴소리를 물리치고 겐지를 상급학교로 진학시키는 것도 아버지다.
그런데 학교를 마치고 와서는 인조보석을 만드는 회사를 세우겠다고 거액의 돈을 마련해달라고 조른다.
벌써 마음은, 사업이 성공해서 설비를 더 사고 주식 발행하고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유한 아버지로서도 도저히 언감생심인 돈이라 그냥 이 계획은 버려진다.
그러더니 남묘호렌교라는 불교에 빠져서 밤마다 불경을 읊는가 하면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며
북을 두드리고 불경을 소리치고 다닌다. 동네 창피해서 아버지는 아들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러자, 이 불경만 외우면 극락에 가는데 왜 안하냐고 아버지에게 버럭버럭 대든다.
가출해서 교단에 들어가고자 하다가 거절당해서 집에 돌아온다.
집을 나가서 동경에 가 안 돌아오는가 하면, 마을에 돌아와 농업지도소를 세우고 자기가 농업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계몽활동을 펼친다. 마을사람들 앞에서 첼로를 켜는 연주회를 하는가 하면
참 종잡을 수 없다. 평생 실현될 수 없는 꿈만 좇는 아들이 걱정도 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밀어준다.
광기 어린 장면들이 될 수도 있는 사건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참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선량하다.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두 자식들을 자기보다 앞세워 보냈으니 팔자도 기구하다고 할 수 있다.
겐지의 여동생 토시가 죽는 장면은, 내가 영화에서 본 장면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다.
영화가 잘 연출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물 토시와 겐지가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미야자와 겐지가 겨우 37세에 죽었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이제 보니까 그럴 만도 하다.
남들 에너지 몇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응축된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며, 일본영화가 과거 저력을 서서히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정적이고 사소하고 스토리텔링이 희미한 그런 영화가 아니다. 일상을 따스하게 다루지만, 그 속에는
뚜렷한 스토리텔링을 끈질기게 이어가는 힘같은 것이 느껴졌다. 대배우 야쿠쇼 코지는 일본 과거 그 어느
대배우에게도 지지 않는다. 젊은 야쿠쇼 코지는 경력 초기, 이타미 쥬조의 탐포포에서 단역으로 몇장면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나니 야쿠쇼 코지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저 배우 잘못 캐스팅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전체 균형을 깨뜨려서 안 좋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 인물은 자기 길을 알아서 찾아간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영화계에 야쿠쇼 코지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1960년대 우리나라 영화계에 김진규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야쿠쇼 코지의 영화들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천인 4
댓글 12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아들들은 다 잘 두었죠. 가장 똑똑한 자식은 일직 죽은 딸 토시인 것 같습니다.
잔잔한 영화인데 광고문구는 왜이리 거창한거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볼때마다 놀라워요😮
스다 마사키도 좋아해서 두 사람의 조합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