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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리뷰_여호수아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해리엔젤 해리엔젤
1984 7 11

스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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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가 공개되고난 후 초반 시사회의 엄청난 열광과 실관람객의 냉랭한 평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수많은 과거의 명작 SF들이 연상된다는 겁니다. 예, 맞습니다. 크리에이터는 과거의 명작들에서 많은 소재와 모티브를 빌려 왔습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진부해 보이는 건 소재의 탓이라기보다는 메인이 되는 구세주 서사, 더 정확히 말하면 '구세주와 그를 보호하는 자'의 서사 때문입니다.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성경에서부터 헐리우드까지, 전세계에서 마르고 닳도록 써먹어온 테마죠. 진부하지 않을래야 진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가 구세주 서사를 비트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분명 스토리는 정석적인 구세주 서사인데 여기서 전통적인 서양의 구세주상을 빼고 거기에 불교의 구세주상을 집어넣었거든요.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두 종교의 모티브가 카두케우스의 지팡이처럼 얽혀 있습니다. 

 

여기서 구세주 역활인 알피를 봅시다. 알피는 크리에이터 마야가 자신의 태아를 모티브로 만들어 낸 창조물입니다. 원래 이름은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알파-오메가고, 합장만 하면 어떤 기계는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으며 어떤 A.I는 알피를 보는 그 순간 경의를 표합니다. 석가모니, 흔히 부처로 알려진 고타마 싯달타의 어머니 이름은 다름아닌 마야(MAYA)입니다. 극중의 마야가 그랬듯, 그녀 역시 싯달타를 낳고 바로 죽었죠. 싯달타는 태어나지마자 하늘과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말했다고 합니다. 신성을 뜻하는 알파와 오메가와 일맥상통하죠. 극악한 악귀마저도 참회시켰다는 부처의 자비로운 마음은 어떤 기계든 자신의 의도대로 조작-거의 설득처럼 보이기도 하는-하는 알피의 초능력으로 재해석 됐습니다. 이쯤되면 알피는 A.I계의 부처님인게 분명합니다. 

 

그럼 알피의 보호자인 조슈아는 어떨까요. 조슈아는 성경의 여호수아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의 제일 큰 업적은 바로 모세 사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결국 자신들의 고향 가나안 땅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 유명한 난공불락의 요새, 예리코의 벽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고요. 말그대로 조슈아는 마야(모세)의 뜻을 이어받아 난공불락의 무기 노매드(예리코의 벽)을 쳐부수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남은 A.I 세력들에게 그들의 구세주를 돌려보내죠.

기왕 구세주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아살해로 악명놓은 구세주 킬러 헤롯왕도 나와야겠죠. 이 역활은 하웰 대령이 맡습니다. 극중 하웰은 A.I와의 전쟁에서 두 자식을 모두 잃은 엄마입니다. (실제로 헤롯왕에게는 두 명의 자식이 있었고... 모두 자기 손으로 죽였습니다.) 즉 마야가 비록 자신은 죽었으나(정확히는 혼수상태) 자신의 아이를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엄마(크리에이터)라면, 하웰은 본의는 아니었을지언정 완벽하게 실패한 엄마(크리에이터)로, 둘은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크리에이터는 SF로 풀어쓴 성경과 불경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SF 영화에서 빌려온 듯한 소재들은 그저 이 서사를 SF스럽게 꾸며줄 사족에 불과하죠. 터미테이터2(1991)의 저지먼트 데이를 연상시키는 도입부로 영화는 시작하지만, 막상 이 영화의 A.I들은 터미네이터처럼 살인에 특화되거나 난전 중에도 정교하게 킬각을 재는 그런 기계들이 아니예요. 도리어 인간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계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의미한 짓들을 합니다. 잠을 잔다던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든지, 망자 아니 망봇(...)을 화장하며 애도한다던지... 인간보다 효율적이어야 마땅할 기계들이 왜 이런 짓거리들을 할까요. A.I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처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요. 한마디로 이 영화를 보고 챗GPT가 열어제낀 최신 A.I 트렌드를 생각해보는 건 아무 의미없는 일입니다. 

크리에이터는 보고나면 감독 이름보다 아트 디렉터나 메인 컨셉 디자이너의 이름이 더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 동서양을 섞어 비틀긴 했어도 여전히 조금은 식상한 구세주 서사를 구원하는 건 ILM의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아트 디자인입니다. 크리에이터는 최신 SF의 세련된 트렌드를 총동원, 영화 내내 멋진 소품과 메카닉으로 관객의 시선을 빼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로 미학적으로 정리된 SF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이나 리들리 스콧, 닉 블롬캄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을 비웃기나 하듯이 가렛 에드워즈와 ILM은 멋지게 해냈습니다.

여러모로 현대 SF 디자인의 첨단에 서있는 작품이다보니 아무래도 비주얼만은 꽤 근사한 닉 블롬캄프의 작품들과 많이 닮은 구석이 보입니다. 무엇보다 채피(2015)에서 닉 블롬캄프 역시 기억의 이전을 통한 환생(윤회)라는 방식으로 죽은 자를 살려내죠.  하지만 제멋에 취해 시시때때로 급발진해버리는 닉 블롬캄프와 달리 가렛 에드워즈는 참을성을 가지고 천천히 영화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전작 고질라 때도 그랬지만 이 영화의 템포는 다소 느리고 루즈합니다. 분명 좀 지루할 수는 있어도 영화적 완성도에는 여러모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총평하자면 크리에이터는 취향만 맞는다면 SF팬들에겐 꿈과 같은 근사한 영화입니다. ILM이 구현하고,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담아낸 영화속 세상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분명 서사는 다소 식상하고 군데군데 헛점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못된 인간과 착한 A.I, 관용의 동양과 배척의 서양이라는 도식적이고 이분법적인 설정은 이해와 공존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발목을 잡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아직 성글지 못한 세계관의 헛점도 종종 보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렛 에드워즈는 다른 데서 끌어온 소재들을 1차원적으로 붙여넣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관에 열심히 녹여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명 기대치를 최하로 맞추고 간 덕도 있겠지만, 그래요. 전 이 정도면 여지없이 대만족입니다.

PS.

1. 오리엔탈리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거는 어쩔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구인들에게 동양, 그것도 전쟁중인 동양의 이미지라면 베트남전이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남았을테니까요.

2. 마지막에 노매드가 파괴되고 추락하는 장면말인데요. 대기권에서 다 타지도 않고 저 정도 규모의 덩어리가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면... 전쟁이고 나발이고 걍 인류 대멸종 아닌가요?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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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저도 조슈아가 여호수아겠구나.. 정도는 떠올렸는데, 이렇게 심층적으로 종교적 상징을 찾아내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21:19
23.10.06.
profile image
golgo
다 데즈카 오사무의 걸작만화 붓다 덕분입니다.^^
22:00
23.10.06.
profile image 3등
글 잘 잀었습니다 ㅠ 상징성은 좋았으나 중후반부가 너무 빨라서 아쉬웠어요
21:38
23.10.06.
profile image
갓두조

스포 안당하려고 아무 글도 안읽고 갔다가 이제서야 다른 분의 리뷰를 보는 중인데...
갓두조님께서 라디오헤드의 키드A 앨범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를 언급하셨더군요.
진짜 절묘한 선곡이었습니다.

가오갤3의 크립도 그렇고, 라디오헤드 붐이 오나 봅니다^^

21:58
23.10.06.
profile image
해리엔젤

솔직히.. 저도 라디오헤드 잘은 몰랐던 밴드였는데, 뒤늦게 알았어요 ㅠ
특히 바닐라스카이를 재밌게 봐서 그런지 선곡이 기가 막혔습니다 ㅎㅎ

22:15
23.10.06.
profile image
저도 재밌게 2회차를 해서 써쿠로 내일 3회차 예매해놨네요ㅎㅎ
21:50
23.10.06.
profile image
천시로

흐흑 저는 써쿠 미끄러져서....ㅠㅠ

어쨌든 다음주에 2회차 갑니다^^

22:01
23.10.06.
profile image
영화는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멋진 리뷰에 감탄하고 갑니다👍
23:44
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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