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리뷰] 거미집 (★★☆) "세로줄만 밟으면 잡히지 않는다"
왜 호불호가 갈리는지 의외로 쉽게 알 것 같습니다. 극중극 구조로 표현되는 각 인물들의 인간군상과 뒤엉키는 이야기들, 그리고 영화와 현실이 동기화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학 등 좋은 점을 많이 갖고 있는 영화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러한 점들을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여겼을 겁니다. 특히나 인간군상을 표현하려던 지점이 그래요. 그리 좋은 평을 주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 거미집은 어중간하게 인간군상을 시도한 것이 가장 큰 패착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인 만큼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주인공 김감독이 극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김감독의 영화 제작에 수많은 인물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점차 김감독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역할로 전락하죠. 인물들이 끼어드는 방식도 마치 고전 영화에서 한 명씩 앞으로 나서며 대사를 치는 것처럼 치고 빠지기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 순간까지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른 인물들과 엮으려 시도합니다. 옷을 꺼내야 하는데 엉킨 옷가지들이 다 같이 삐져나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보니 결국 매력적인 캐릭터는 남지 않았다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고요. 김감독 캐릭터를 이런 방식으로 소비하려면 송강호 캐스팅을 포기하고 아예 난장판 소동극으로 가든지, 아니면 김감독의 비중을 높여서 영화 제작의 고뇌와 그 속에 담긴 알레고리를 전면에 내세우든지 했어야 합니다.
혹시 거미집에 담긴 원리를 알고 계신가요? 거미집의 가로줄은 점성이 높아 벌레들을 붙잡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지만, 세로줄은 점성이 없고 매끈해서 이 부분을 밟으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죠. 이 영화는 구조상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거미집입니다. 대략 20만 명의 관객들이 거미집의 같은 부분으로 날아들었지만 몇 명은 잡히고 몇 명은 빠져나갔을 거예요. 어떤 거미집이든 끈적한 가로줄로만 만들어질 수는 없지만, 줄을 조금 더 촘촘하게 짰다면 가로줄의 틈새 사이로 빠져나가는 벌레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에도른자
추천인 8
댓글 21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