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79] 우리 내면의 악 - 레드 룸스

레드 룸스 – Red Rooms (2023)
우리 내면의 악
먼저 질문을 하나 해볼까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어떻게 인간이 저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곤 범행 현장은 어땠을까? 호기심을 가지지 않나요? <레드 룸스>는 이러한 인간의 양가적 감정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악의 존재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이야기는 어린 소녀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슈발리에의 재판을 시작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다크웹에서 생중계되는 ‘레드 룸’에서 벌어지는 고문과 살인을 행한 범죄의 주인공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를 유심히 관찰하는 두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켈리앤은 모델이자 불법 포커 플레이어이고, 또 한 명의 여성 클레망틴은 슈발리에가 무죄라고 주장하며 다른 지역에서 올라와 그를 지지하죠. 이 두 여성은 사건과 관련이 없음에도,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는 연쇄살인마가 아닌, 사건과 아무 연관 없는 관찰자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접근법을 시도합니다. 도입부의 15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법정 장면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과시하고 있죠.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의 시선처럼 법정을 부유하며, 판사에서 검사로, 변호사로, 그리고 방청객들, 슈발리에의 무심한 표정 사이를 물 흐르듯 움직이다가 이야기의 주인공 켈리앤의 시선에 정착합니다. 이 장면은 법정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내면을 훑어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며, 각자의 입장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의와 악이 공존하는 법정의 팽팽한 긴장감을 포착합니다.
이 법정에서 재판받고 있는 슈발리에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그의 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정의감과 함께, 그가 어떤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공존하는 것이죠. 그리고 영화는 살해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었죠. 스너프를 소재로 한 영화 <떼시스>의 도입부에서 열차 사고가 나고, 그 현장을 두려운 마음과 함께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던 인물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왜 우리는 공포와 혐오를 싫어하면서도 보고 싶어 할까요? <레드 룸스>는 이 불편하게 공존하는 마음을 다루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악은 여러 형태로 다뤄집니다. 첫 번째는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는 순수한 악의 화신, 슈발리에입니다. 그는 악을 은유하거나 상징하지 않고 그 자체로 악의 존재입니다. 두 번째는 클레망틴으로 그녀는 슈발리에의 무죄라고 믿습니다. 이 믿음은 아무런 근거 없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집착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오직 자기 관점만 고수하는 그녀의 행동은 또 다른 형태의 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녀가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살인마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연쇄살인범에게 애정을 표현한 여성들의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으며, 클레망틴 캐릭터는 이러한 현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죠.
세 번째는 영화의 주인공인 켈리앤으로, 영화에서 다뤄지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악으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며 현실에서는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성공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불법 도박에 중독되어 있죠. 켈리앤은 클레망틴을 관찰하며 교묘하게 조종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녀가 범인의 죄를 입증하려는 행동은 정의의 구현이라기보다는, 타인의 붕괴를 지켜보며 느끼는 개인적 쾌락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죠.
그리고 마지막,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악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자신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각종 범죄와 사건 사고를 마치 오락처럼 소비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 불행을 클릭하고, 공유하며 퍼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종의 유희를 느끼곤 하죠.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시선은 영화 속 '레드 룸'을 시청하는 익명의 관객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섬뜩한 호기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들의 시선과 비슷할 겁니다.
<레드 룸스>는 지적이고 매혹적인 호러 스릴러입니다. 자극적인 비주얼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심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영화를 찾는다면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파스칼 플란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켈리앤과 클레망틴 역의 쥘리에트 가리에피, 로리 배빈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에 무게감을 더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덧붙임...
1. 파스칼 플란테 감독은 매번 뉴스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그들을 응원하는 추종자들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하는군요. 그는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했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이버 범죄를 조사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2. <레드 룸스>는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Fipresci) 소속인 퀘벡 영화 비평가 협회(AQCC)가 주관한 2023년 최고의 퀘벡 영화 상을 수상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오늘도 리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