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78] 호러로 풀어낸 삶의 자세 - 사유리

사유리 (2024)
호러로 풀어낸 삶의 자세
오시키리 렌스케가 그린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사유리>는 일본 심령 호러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따라가면서, 급작스러운 장르 변화를 꾀한 작품입니다. 영화만 두고 얘기를 한다면 지금까지도 <링>과 <주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J호러에 새로운 시도를 꾀한 작품임엔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한 가족이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됩니다. 시작은 평화롭지만 점차 집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벌어집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초자연적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하나 둘 씩 끔찍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집엔 복수심에 불타는 귀신인 ‘사유리’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죠.
<사유리>의 절반은 익숙히 봐오던 일본 심령 호러이며, 나머지 절반은 코미디로 범벅이 됩니다. 이 구성은 원작 만화와 동일합니다. 이처럼 상반된 두 장르의 결합은 많은 호러 영화에서 시도했고, 모범적인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사유리>도 그들 영화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우선 일본 전통 호러로 채워진 1막부터 얘기해볼까요. 정적인 화면과 음산한 배경 음악, 집 내부의 극적인 명암대비, 긴 머리카락의 소녀 귀신과 엄청난 몸집의 귀신 형태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른이든 애든 가차 없이 죽여 버리면서, 6인 가족이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손자 둘만 남으면서 평범했던 한 가족의 느닷없는 비극을 강조한 것도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2막인 코미디가 시작됩니다. 대사나 상황이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엄청난 변화를 시작으로 영화는 돌변합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다루는 것이 호러인데, 이와는 상반되지만 또 한 편으론 같은 감정, 즉 두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일종의 방어 기제로서 코미디는 호러의 훌륭한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유리>의 코미디 파트는 당혹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진지한 심령 호러를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돌변하냐고, 젠장! 이라며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죠. 원작 만화를 보고 영화를 본다며 이질적인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적응이 힘들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건 순전히 영화를 보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요소입니다.
<사유리>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귀신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을 굴복시키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심령 호러는 인간이 일방적으로 쫄며 농락당하다 후반에 회심의 역습을 가하는 구성인데, <사유리>의 경우는 귀신에게 매번 당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죠. 장르에 대한 시선을 살짝 바꿔놓는 것으로 <사유리>는 심령 호러 장르에서 흔치 않은 영화가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캐릭터 묘사에 공을 들입니다. <사유리>의 진짜 주인공은 할머니와 손자로, 이들의 관계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아들과 남편, 며느리, 손자를 한꺼번에 잃은 후 오히려 과거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되찾아 사유리와 맞서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강인함과 생존 본능을 보여주며, 가족을 잃고 절망에 빠져 삶의 의지를 상실한 손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잘 먹고, 잘 자고, 웃으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라"라는 삶의 자세를 전합니다.
<사유리>는 호러와 코미디라는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어색함이나 과한 감성적 요소가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영화의 매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미미한 결함일 뿐입니다. 한 편의 심령 호러물에 공포, 슬픔, 웃음, 분노, 교훈적 메시지를 모두 담아내는 시도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테니까요. 사다코와 가야코의 영원한 저주에 갇힌 J호러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유리>는 진심 어린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작품입니다.
덧붙임...
1.영화는 오시키리 렌스케의 원작 만화를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사유리 캐릭터의 끔찍한 과거사에 대한 각색입니다.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퇴마사도 원작엔 없는 캐릭터이죠.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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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코미디 재밌겠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