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70] 괴물이 될 순 없다 -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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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 The Hidden (2015)
괴물이 될 순 없다
오늘은 독특한 서사를 가진 영화 <히든>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묘한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더퍼 형제가 만든 작품인데,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호러 영화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에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죠. <히든>은 제한된 예산으로 드라마와 호러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구성한 재능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레이와 클레어 부부가 어린 딸 조이와 함께 지하 벙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지상은 '브리더스'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감염자들이 점령했고, 이들 가족은 그것들을 피해 숨어서 살아갑니다. 벙커 안은 늘 어둡고, 식량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거기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벙커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가족은 잔혹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우선 후반부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면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놀라게 하는 반전이 아니라, 이 가족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반전이죠. 그리고 이 반전이 영화의 주제와 캐릭터들의 생활과 선택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히든>에서 가족이 살아가는 벙커라는 공간의 쓰임새는 다양합니다. 폐소공포증이 일 것 같은 이 답답한 공간이, 마치 등장인물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듯 기능합니다. 더퍼 형제는 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가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희망까지 세밀하게 그려나갑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울한 생활 속 캐릭터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사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이 있기 때문에 <히든>의 이야기는 새롭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더퍼 형제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서바이벌 호러의 클리셰적인 전개를 비틀고, 인물과 이야기에 더 집중한 것이죠. 유혈 낭자한 피범벅 액션을 절제한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정한 규칙 중에 "절대 이성을 잃지 말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이 곧 영화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 좁은 벙커에서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처절한 의지가 느껴지죠. 만약 영화가 단순히 가족과 브리더스의 추격전이나 혈투로만 채워졌다면 식상했을 텐데, 더퍼 형제는 그러지 않았어요. 대신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과 내면을 비추며 결말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갑니다.
<히든>에서 진짜 무서운 건 음침한 지하 벙커 생활도, 지상의 브리더스도 아닌, 바로 극한 상황에서 쉽게 깨질 수 있는 인간성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입니다. 영화는 지하와 지상, 생존자와 죽은 자를 통해 이런 주제를 섬세하게 다듬어 나갑니다.
<히든>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가족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으로 관객을 붙잡는 안정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지하 벙커에 스며드는 긴장감도 인상적입니다. 단순한 반전으로 끝나지 않고, 그 결말이 이야기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기에 가족의 생존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든>은 더퍼 형제의 뛰어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소품 규모의 영화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도 좋을 작품입니다.
덧붙임...
1. 영화 대부분의 장면들이 밴쿠버 근교의 실제 지하 벙커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벙커의 좁고 답답한 공간은 배우들의 연기에 자연스러운 긴장감을 더했고, 제한된 공간을 창의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들로 폐쇄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초기 버전은 현재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라고 하는군요. 강렬하고 충격적인 비주얼을 의도했지만, 결국 최종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순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영화의 주제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다크맨
추천인 5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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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가 그냥 뚝딱 나온 게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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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호러 리스트에 올려놔야겠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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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봤는데 아쉽게도 국내 OTT엔 없네요. 어디서 봐야할지 뒤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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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