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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 혼란의 칼춤 속 보이는 작금의 현실 <전, 란>

또또비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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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jpeg

 

혼란의 시대! 말 그대로 <전, 란>은 혼란스럽다. 7년 동안 이어진 임진왜란이 아닌 그 이후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야기에는 전쟁보다 더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이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왜란이 벌어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인 조선의 현실을 마주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다. 지금과도 별반 차이 없는 암울한 사회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조선에서 벌어진 혼란의 칼춤으로 소환된 작금의 현실은 무엇일까? 

 

전란 스틸 1.jpeg.jpg


양민이었지만 빛 때문에 노비가 된 천영(강동원)은 콧대 높은 무신 집안의 종으로 들어간다. 그가 하는 일은 그 집 귀하디 귀한 아들 종려(박정민)가 검을 잘못 다를 때마다 대신 맞는 것. 너무 많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천영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밤마다 종려를 불러 검술을 연습한다. 이후, 천영은 회초리의 위협에서 벗어나 종려의 검술 스파링 상대가 된다. 시간은 흘러, 매번 무과 시험에 낙방하는 종려를 대신해 천영은 무과 시험에 합격하면 면천(免賤, 천민의 신분은 면하고 평민이 됨)을 해주겠다는 약조를 받고, 당당히 장원급제를 한다. 하지만 종려 아비는 면천 대신 천영을 죽이려 한다. 오해의 또아리를 풀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이들은 임진왜란을 맞는다. 


<전, 란>은 시작부터 “조선시대 양민과 천민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란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의 무게감을 더하듯 영화는 신분과 계급을 떠나 누구든 평등하다는 의미의 ‘대동(大同) 사회’를 꿈꿨던 정여립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대동의 의미는 곧 왕권을 향한 반란으로 해석한 선조(차승원)는 정여립의 목을 광화문 시장에 전시하고,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곳에 추노에게 붙잡힌 천영이 등장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철저한 계급사회가 존재했던 조선 시대에서 양반과 천민의 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못 박는 듯하다. 천영과 종려는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유대감을 통해 한 때 동무를 꿈꿨던 이들이긴 하지만 왜란을 겪고, 오해와 불신을 거듭한 이들에게 남은 건 분노와 후회가 점철된 칼부림뿐. 계급과 처한 위치에 따른 둘의 대립은 조정과 의병들의 싸움으로 번진다. 이는 생각과 이념이 다른 이들의 싸움처럼 보이고, 결은 다르지만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도 흡사해보인다. 청과 적의 싸움 등 입는 옷 색깔, 손에 쥔 환도의 모양만 봐도 영화의 제목처럼 이들이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다. 

 

전란 스틸 5.jpeg.jpg


앞서 소개했듯이 <전, 란>의 주요 이야기는 왜란 이후의 이야기다. 선조를 위시한 기존 세력은 무너진 왕권과 사회를 정립해 나가려하고, 천영을 대표로 한 새로운 세력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 마치 보수와 진보의 싸움과도 같아 보인다. 


극 중 왜장 겐신(정성일)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 주적은 배가 고파 시체를 먹는 민중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의병 활동으로 왜놈들을 물리친 이들에게 공을 인정하기지도 않은 채 무너진 경복궁(왕권) 재건에만 힘쓰는 선조다. 이 왕은 최악의 지도자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건 물론, 피난길에 부실한 음식 투정을 하고, 살기 위해 나룻배에 매달린 백성을 처참히 죽이라 명하는 등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란 스틸 8.jpg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희화화 하는 선조의 모습은 백성을 일개 종으로 생각하는 인물로 보인다. 이는 누가 지도자를 맡느냐에 따라 변모하는 왕권사회의 헛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 여기에 한 술 더 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어떻게든 지속하기 위해 친일파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의 등장과 백성들의 고혈을 빼먹는 이들의 행동은 울분과 침통함을 곱절 느끼게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화는 천영의 성장 서사를 굳건히 다진다. 이는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자신의 이름에 뜻이 없었던 천영은 종려를 통해 ‘따를 천’, ‘그림자 영’을 받는다. 이후 의병장 자령(진선규)은 ‘하늘 천’, ‘빛날 영’이란 이름을 받는다. 아무 의미 없었던 평민이 세상과의 대립과 싸움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얻는 과정은 양민도, 노비도, 창의검신도 아닌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후 함께 의병 활동을 했던 범동(김신록)의 이름을 따서 그 의미를 부여하는 위치까지 이른다.  

 

전란 스틸 7.jpg

전란 스틸 9.jpg

 


다만, 흥미롭게 진행되는 역사적 이야기에 비해 극 중 인물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주요 인물은 천영과 종려는 역사라는 무게감에 짓눌렸는지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머리로는 울분과 비통함을 알겠으나, 마음까지는 설득되지 못한다. 차승원, 김신록의 연기는 돋보였지만, 이 또한 마음을 이끌어내는 데는 다소 약하다. 대신 알고 있었지만 영상화된 좌절의 역사를 보는 것 자체는 그 의미가 깊다. 극화된 부분임에도 고난의 연속이었던 민중의 삶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계기는 영화의 큰 의의다. 수위가 높음에도 학생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은데 특히 마지막 선조가 열라하는 궤짝 장면은 시청각교재로 꼭 쓰고 싶다. 


아쉬움을 달래듯, 영화의 가진 주제의 무게감을 덜어내듯 화려한 검술 액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도: 민란의 시대>만 봐도 강동원이 검을 들면 엑션이 산다는 건 당연지사. 이번에도 그의 검술 액션은 멋진 감상 포인트다. 박정민과 정성일의 검술 액션도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마지막 해무가 가득한 해변에서 이들이 검술 대결은 그 자체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전란 스틸 4.jpeg.jpg


<전, 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본디 영화제의 개막작이라고 한다면 그 시대를 반영하는 주제를 갖고 있거나 영화제가 지향하는 주제가 담겨 있기 마련.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OTT 오리지널 영화로서 첫 개막작 선정이라는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보면 안다. 왜 영화제가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했는지를 말이다. 멋진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를 통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활용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는 보는 이들에게 갈리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는 건 모두다 마찬가지일 터.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평점: 3.0 / 5.0
한줄평: 혼란의 칼춤 속 보이는 작금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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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리뷰 잘 봤습니다.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어떤 성과를 거뒀을지 좀 궁금해집니다.

11:12
24.10.15.
golgo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어느 정도 스코어는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움은 있어도 미술과 액션은 마음에 들어서 ㅎㅎ
16:06
24.10.15.
즐거운인생
박찬욱 감독님이 제작하고 각본을 맡아서 더 아쉬움이 남네요 ㅜㅜ
16:06
24.10.15.
profile image

전 갠적으로 연출력이 너무 절망감이 들정도라...
이야기는 너무 구태의연하고 화면을 보는데 드라마보다도 못한 화면을 보여줘서
이걸 영화로 생각하고 봐야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제가 영화의 90%는 감독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배우빨로 본 영화였습니다.

11:53
24.10.15.
방랑야인
저보다 더 큰 아쉬움이 드셨군요 ㅜㅜ
영화보다 드라마로 풀었다면 사서의 단점을 어느 정도 채웠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16:07
24.10.15.
profile image
방패를 활용한 새로운 액션을 시도했는데 별로였어요. 거기에 쏟을 에너지를 천영, 종려의 서사 구축에 썼으면 어땠을까....아쉽네요.
17:47
24.10.15.
뱅돌
서사에 좀 더 힘을 싫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더라고요
11:43
24.10.24.

조선시대 양반과 천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진짜 양반이었던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보면 나옵니다.
세종시대 재상을 지낸 최윤덕이 어릴 적, 아버지가 먼 벼슬살이를 가면서 친구에게 맡기고 갑니다.
그 친구가 사냥꾼입니다. 최윤덕은 어린 시절을 사냥꾼 집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라자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신분제가 강하기는 했지만, 천영과 종려같은 관계는 아주 불가능하다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백범 김구의 삼촌인가 하는 분은, 상민이었는데 양반을 보면 

욕하고 성질 내서 양반들이 피해다녔다는 것이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신분제이니까 상민들은 무조건 약자로 당하면서 산 것도 아닙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왕실 여자 누구인가는 레즈비언이었는데

상대가 신분이 낮은 여자였는데, 왕실 여자를 조종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냥 그때도 사람이 살던 시절이었고, 인간관계를 신분제만으로 완전히 조종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12:11
24.10.16.
BillEvans
조선 역사와 실상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말씀처럼 그때도 지금도 사람이 살던 시절인 것 공감합니다!
11:44
24.10.24.
Sonatine
작은 그릇에 큰 이야기를 담은 듯한 그래서 많이 흘러 넘치는 영화였어요
11:45
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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