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2>: 왜 뮤지컬인가?
(imdb)
<조커 1>은 아서 플렉이 어떻게 ‘조커’가 되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영화 자체에 대한 갑론을박은 제쳐두고서라도 1편은 그런대로 마무리 지어졌다. 상도 받고 한국에서는 530만에 가까운 관객 동원에도 성공했다. 속편에 대한 떡밥도 남긴 것처럼 보인다. 2편에서 펼칠 수 있는 조커 서사의 경우의 수는 많았을까? 조커가 도시를 휘저으며 폭력적인 혁명의 주도자가 되는 서사. 3편까지 낸다는 가정이라면, 배트맨의 등장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다.
물론, 극 중에서 브루스 웨인이 물리적으로 성장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아니면, 또 다른 조커의 등장이나, 이번에 등장한 할리 퀸젤 같은 조커의 파트너가 등장하는 서사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1편을 봤던 관객들 입장에선 2편에서는 본격적인 조커의 모습이 펼쳐지길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토드 필립스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2편을 내놨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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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아서 플렉의 서사를 모조리 드러내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조커에 대한 감정 이입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동정심과 일말의 합리화를 의도치 않게 이끌어 냈다. 이와 관련한 부정적인 평이 많았다. 조커 뒷이야기가 자세히 펼쳐져서 매력이 반감되었다는 의견부터 미국에서는 모방 범죄와 관련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기도 했었다.
토드 필립스가 의도한 바가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토드 필립스는 자신이 선택한 방식의 연출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고민했을 것이다. 다만, 1편에 대한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이 늘 생각했던 것처럼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1편의 파장으로 인해 토드 필립스는 속편 제작에 있어 선택의 기로 앞에서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아서 플렉의 서사를 넘어 본격적으로 조커의 서사로 나아갈 것인가? 또는, 조커의 서사를 통해 아래에서부터의 혁명이 정의가 될 수 있는가? 와 같은 클리셰이지만 더 큰 주제를 다룰 것인가. 이도 아니면, 1편과 같은 파장을 피하기 위해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할 것인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이유에서든, 토드 필립스는 1편과 다른 방향성을 지닌 <조커 2>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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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조커와 다른 캐릭터를 이용해 조커 영화와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이 만들어낸 조커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조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거나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들, 유명인에 휩쓸리는 사람들, 비윤리적이지만 조커의 선택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 모방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 조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가진 평단과 관객들이 조커 현상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1편과 이번 편에서 아서 플렉의 조커는 종교적이며 미디어의 특성을 지닌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조커 2>에는 그럴듯한 서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조커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전편에서 아서 플렉의 서사를 탈탈 털어버렸기에 이야기를 펼칠 내용이 없다. 그래서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에 또 한 번 눈길을 더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편에서 아서가 정신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소개되었다.
이 점에 집중해 조커와 아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망상하는 모습으로 영화를 채우기로 결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서 플렉에게 살인을 하는 순간 당신이 조커의 자아로서 그랬는지 아서의 자아로 그랬는지 묻는 장면과 변호사가 아서에게 조언하는 장면들이 아서의 혼란을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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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퀸젤과 펼치는 뮤지컬은 아서가 처한 상황을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구분을 위해 차용한 형식이라 생각한다. 아서의 혼란과 망상을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뮤지컬이 상당 부분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사의 부족함을 감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뮤지컬은 많은 관객들이 호감을 가지지 못한 연출 수단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등장한 캐릭터들은 서사의 완성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소비된 쪽에 가깝다. 레이디 가가의 할리 퀸젤은 앞서 언급한 조커로 대변되는 종교와 미디어의 흐름에 따라가는 맹목적인 대중이나 실제의 관객을 비유하기 위해 쓰인 것처럼 보였다. 할리는 조커로서의 아서에만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서가 더 이상 조커가 되지 않고 싶다고 말할 때, 조커에 대한 할리의 마음은 바로 식어버린다. 조커에 대한 그녀의 상상이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기대와 상상으로 재구성된 시각으로 타인이나 물체를 바라보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라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쓰이는 인물로도 쓰인다. 이외에 등장하는 증인, 변호사, 배심원단, 검사, 재판관, 언론도 제2, 제3의 할리 퀸젤에 가깝다. 동시에, 어떤 이유에서든 살인을 저지른 아서는 옹호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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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영화인지 아서 영화인지 명확한 판단이나 정리를 요구하는 현실 대중들과 평단의 모습을 재판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표현한 것 같다. 이게 맞다면, 훌륭한 연출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이런 스타일의 연출이 신선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막상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예전에도 이런 스타일의 연출을 시도하는 영화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할 때,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의 의도를 완성하고자 노력한 시도는 신선한 도전이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이번 <조커 2>는 전편과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영화다. 조커의 서사를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함이 아니라, 감독 스스로의 의도를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거기에 뮤지컬 연출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관객과 평단에서는 혹평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전편 흥행 성적에 한참 못 미치는 56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화면에서 보이는 세심한 디테일들이 때깔 나기 때문이다. 미장센을 위해 공들인 노력이 충분히 느껴진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차력쇼는 전편을 넘어서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을 위한 <조커 2>는 아니다. 감독 스스로와 영화를 위한 <조커 2>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적 완성도는 있지만, 관객들이 만족하는 영화는 아니게 되었다.
*‘폴리 아 되’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제목의 의미가 더 와닿는다. 마지막 장면을 꼭 유심히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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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과 조커의 모습을 카메라 프레임에 넣어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조커에 대한 영화인지 아서에 대한 영화인지 판단 내리기 모호하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물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서 감독 자신이 만든 영화를 단순히 조커와 아서의 이야기로 판단해 구분 지으려는 행위를 비판하는 연출로도 보였다.
*1편과 2편에서 계단을 오르는 조커의 모습은 있지만, 조커가 계단을 완전히 오르는 장면은 없었다.
*1편의 확장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런 방향성은 전편의 조커를 감독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이다. 아서에서 조커를 만들었는데 다시 아서를 다룬 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해변의캎흐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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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라는 해외 기사가 눈에 띄더라고요.
할리우드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곳입니다.^^
제대로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볼거리와 재미는 없지만 못만든 영화는 아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