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전, 란 - 리뷰
박찬욱 제작, 강동원 주연!
하반기 초 기대작!!
수많은 주례사 비평은 진짜였을까?
제목이 <전, 란>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국가 간에 벌어진 싸움을 전쟁이라 부르고 지방에서 또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일으킨 무력 시위를 난이라고 부릅니다.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것이 난인 것도, 병자년에 호가 일으킨 것이 난인 것도 바로 명나라를 중심에 둔 조선의 역사적 기술에서 왜도, 또 이미 나라가 된 청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내를 뒤집어보면 이는 전쟁이었고 선조는 파천, 몽진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그 유명한 '굴욕'으로 정화된 항복을 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전"이나 "난"에 관해서 다루는 것인가, 아니라면 상징적인 제목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적 감흥을 주려는 것인가.
미루어 짐작해 보게 됩니다. 적어도 사극이라면 아무리 알차게 돈을 집행해도 100억은 너끈히 들어갈 텐데 제목을 허투루 지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왜 제목이 <전, 란>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를 다 본 지금까지도 영화 제목에 대한 적극적인 유추는 어렵습니다. 다만 영화를 본 시간이 어느 간만 지나서 돌이켜 보면 특정 주인공에 국한하기보다는 '임진왜란 시기의 이야기였다'로 넓혀보면 다소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불타는 경복궁! 역설적인 멋드러진 배경
최근 짧아진 촬영기간으로 인해 한국 영화에서 사계를 담는 일은 시도 자체도, 관람조차도 어려워졌습니다. 아무리 최근작으로 떠올려 보아도 오롯이 한국의 사계를 담아냈던 작품은 20년이 넘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큐 중에서는 최근작인 <땅에 쓰는 시>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집약적인 촬영 기간은 장단점을 내포합니다.
반대로, 이를 위해 고도화되는 것이 바로 CG기술입니다.
적어도 영화 <전, 란>에서는 조선을 배경이라고 쳤을 때 유례없는 역대급 멋드러짐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이게 미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한국영화에서, 임금이 파천하는 상황에서 역사적으로도 기술된 '경복궁 화마'를 이만큼이나 멋있게 활활 불타도록 그려낸 영화가 과거에도 또 앞으로도 있을까 싶습니다. 조금 과장해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화마가 할퀴고 간 경복궁의 폐허 위에 선 왕과 신하의 대비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한국적인 공허를 그려주었습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역설적인 명장면'이었습니다.
이러한 폐허 속에서 두 주인공의 운명이 엇갈립니다.
세 개의 플롯, 두 명의 주인공 그리고 분화
<전, 란>의 큰 줄기는 세 가지입니다. 이는 두 주인공인 천영과 종려의 성장에 따라 갈라지는 플롯입니다. 당연하게도 첫 번째는 천영과 종려의 얽힘힙니다. 천영이 천민이 되는 과정이나 그가 기를 쓰고 도망치는 등의 당위성을 위해 존재하는 과거입니다. 이 과거에서 천영과 종려는 벗이 됩니다.
성인이 된 천영과 종려에게 임진년의 난이 벌어집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이 갈라집니다. 한 사람은 왕을 호위하고 한 사람은 의병이 됩니다. 이를 통해 과거에 더불어 현재가 갈라지며 자연스레 세 개의 플롯으로 분화합니다. 이 세 개의 플롯이 자연스럽게 또 정당성을 얻으며 부스럼 없이 결말에 다다른다면 당연히 좋은 영화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플롯이 다시 한 번 분화를 합니다.
선조의 이야기와 의병의 이야기로 미세 분화하며 복잡 다단해집니다. 우리는 수많은 영화적 경험을 통해 이토록 플롯이 다단해지면 영화가 좋은 결말에 다다르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를 <전, 란>은 극복해 내었을까요?
천영과 종려, 반상의 법도
조선은 유교 국가입니다. 모르는 분들이 없으실 겁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만 해도 몽고풍의 영향이 강해서 사대부들이 색색의 옷에 귀걸이를 하는 등 자신을 꾸미고 다녔습니다. 흰 비단 옷에 갓을 쓴 우리가 아는 조선의 선비는 초기를 지난 이후의 모습에서 정착해 갑니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상의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란 전은 이러한 법도가 곤고해진 시기입니다. 그러하기에 천영과 종려가 벗이 되는 파격이었다면, 종려는 아버지를 이겨 천영을 살게 해주는 게 오히려 맞을 듯한데 영화는 그러지 않습니다. 즉 천영과 종려의 우정은 그만큼 파격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운명적이며 끈끈한 사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이들 둘이 척을 지게 되는 주요 원인은 결국 난으로 인한 특정한 상황인데, 이에 대한 오해가 과연 천영과 종려 사이에 가능했을까. 어떻게 이런 쉬운 단정이 가능했을까.
간단하게나마 주인공을 프로파일링 하자면!
천영은 어떻게든 면천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복원하는 데에 모든 것을 바친 인물입니다. 전란 중에 많은 천민은 노비문서를 불태워 스스로 자유를 택합니다. 심지어 종려의 집이 불타 없어졌으니 노비 문서를 비롯한 모든 것은 재로 사라집니다. 천영이 전란 이후 보이는 행위의 당위성에 대해 얼마만큼 관객이 눈감아 주어야 할까요? 천영이 원했던 게 청천익을 입은 종려의 삶?! 영웅???!!!
반대로 종려 역시 그만큼 믿어왔던 벗 천영이 자신의 가족에게 특정한 상황을 만들어 낼 거라는 믿음조차 없었을까요? 이는 천영을 풀어주려는 종려의 모습에서 되짚어 볼 수 있을 겁니다.
반상의 법도를 엎은 두 사람의 파격적인 우정을 한낱 칼싸움 앞에 아무것도 아닌 종이쪼까리 정도로 치부해 버린 것은 결국 제작진이 아니었을지. 되짚어 보면 이는 결국 이야기에 대한 정당성의 결속이 사라짐으로 인해 상당수 이야기의 재미가 휘발하는 결론에 다다르고 맙니다. 즉 반상의 법도를 엎은 것은 천영도 종려도 아닌 제작진입니다!
역사와 팩션, 그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약간은 비겁한 이름으로 역사물을 부릅니다. 특정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역사물을 팩션이라고 포장해 팩트에 픽션이 가미된 가짜라고 말하고는 하죠. 그러나 분명하게도 기록된 사실에는 기반해야 합니다. 아무리 과장 즉 MSG를 치더라도 말입니다.
선조는 처세술이 좋은 임금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과정만 살펴도 알 수 있습니다. 적자가 아니었던 그가 왕이 되는 데에는 머리 좋은 그의 지략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물론 많은 역사학자들이 조선사에서 가장 무능한 왕이 선조라는 데에 이견을 두지 않습니다만, 당시 전쟁에서 왕이 잡히면 전쟁은 끝이 납니다. 나라의 존속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됩니다. 광해군을 한양에 두고 파천을 한 것이 전략이냐 무능이냐는 전쟁에서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만, 이덕형을 비롯한 신하들이 얼마나 많은 수를 짜내며 왕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을지는 평가를 떠나 불여일견입니다.
어쨌든 조선사 최악의 임금 선조를 어디까지 비하시킬 것인가!
<전, 란>에서는 제가 지금껏 보아왔던 역사물에서 미쳐 날뛰어 폐위되는 광해군이나, 축출된 연산군, 치매 걸린 선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미쳐보이는 왕으로 그려냅니다. 마흔 일곱에 불과했던 선조를 일흔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화사 최악의 선조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 어떨지. 왜냐, 차승원 배우님의 선조 연기가 제가 느끼기에는 역대급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전,란>은?
영화 배경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즉 많은 이들의 피땀이 녹아들었을지는 보는 관객마다 느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반해 위에서 적은 이야기로 짐작하셨겠으나, 영화 <전, 란>은 플롯을 분화해 가는 과정과 분화한 플롯이 마지막에 합치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천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종려의 현재, 여기서 분화한 왕의 주변과 의병의 주변 그리고 이러한 플롯이 하나로 합치하는 과정이 조금은 나이브하고 결속력이 약합니다. 군데군데 뚝뚝 끊어져 있는 느낌도 적지 않습니다. 플롯의 분화로 인해 이야기가 매우 이완되는 터라 집중력을 잃어도 이야기는 진행하는 데 별 무리없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캐릭터로 살피면, 주인공이 서로를 적대화하는 상황이나 추노꾼도 이기지 못하는 천영이 급작스레 왜군에게 두려움을 안기는 주인공으로 성장해 있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하기에는 예민한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위에서 '반상의 법도'라는 영화 속 대사를 빌어 나열한 부분에서도 설명했지만, 이만큼이나 두 사람이 버름해지는 게 저의 입장에서는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 절반은 액션일 텐데 그래서 액션은 좋았느냐, 아마도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 영화적 잣대로 자리할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천영의 입장에서 몹씬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로 인한 일대 다수의 대결 장면이 적어도 제 입장에서는 유니크한 맛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카메라 워킹인데 이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보기에 가장 자승자박이었던 액션 장면은 마지막 해무 장면이었습니다. 캐릭터 입장에서도 달려오는 적이 보이지 않겠으나 관객 입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액션을 어떻게 알아본단 말입니까. 제 3의 혜안이라도 갖고 있지 않는 한은요. 끊어지는 액션을 만회하려는 한수였을 뿐.
액션의 연결성과 유니크함, 몹씬에서 보여주는 되풀이식의 액션은 뛰어나다기보다 한국영화에서 계속해서 보아왔던 액션이라 무어라 평가할 게 없었습니다. 영화와 붙지 않는 마지막 장면 역시, 의도는 알겠으나 사족이 아니었던가.
영화를 결론하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전란으로 인한 폐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반과 상의 대비'를 통해 이들의 운명적 교차를 보여주려 한 의도는 알겠으나, 액션은 본 듯하고 플롯의 결속력은 약하며 캐릭터의 당위성 역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MSG를 잔뜩 품은 역사적 과장을 통해 의병과 왕의 대비로 공분을 일으키려는 시도 역시 그렇게 좋은 시도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가장 단적으로, 드라마 <추노>보다 못하고 <군도: 민란의 시대>의 기시감에 더불어 <남한산성>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다만 차승원 배우님의 연기만큼은 낭중지추였습니다.
아쉽지만 "많이 보아왔고 거기서 더 나가지 못한 역사적 대비가 결국엔 길을 잃어 평범해지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역사에서 난亂이 전戰에 미치지 못하듯 OTT개봉이 스크린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하다, 더욱 갈고 다듬었어야 할 역사와 액션의 영화적 되풀이!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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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영화인가 싶은 완성도라니..
막상 뚜껑 여니 아쉬운 부분이 있네요.
그래도 차승원의 광기 넘치는 연기 때문에라도 한번 보긴 할 거 같네요. 기대치는 많이 낮춰야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