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 리뷰(노 스포)
*들어가기에 앞서, 소설 원작 이외에 이를 바탕으로 만든 이탈리아 영화 이바노 데마테오 감독의 <더 디너>(2015)와 리처드 기어 주연의 리메크이작 <더 디너>(오렌 무버만)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보통의 가족
살며 사랑하며 죽이며
감성 장인 허진호가 도전하는 서스펜스
허진호입니다.
그 이름으로 상표가 됩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 <호우시절> 등, 로맨스를 가미한 감성적인 영화에서 장인의 기질을 십분 발휘한 감독입니다.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경우,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레전드 로맨스 영화입니다. 특히 관계 속에서 '죽음'을 이용해 한축을 무너뜨림으로써 폭발적 감성의 극대화를 기하는 데에 노림수를 자주 둡니다. 이 노림수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되어 관객은 노림수에 걸려들고 맙니다.
반면 스코어는 좋았을지라도 <덕혜옹주>나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경우 관객에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 길게 적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그가 만들었던 영화를 살피면 영화의 장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감성이 더해지며 '죽음'을 활용한 플롯의 경우 스코어를 떠나 파괴적일 정도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가족>은, 허진호 감독이 처음 도전하는 서스펜스 장르입니다. 지금껏 그가 파헤쳐왔던 장르적인 감성에 더해진 서스펜스가 되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가히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해볼만 합니다.
감정을 그리는 장르, 서스펜스
클래식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황금기 미스터리 시기는 그야말로 가추와 소거를 통한 지적 놀이의 대활황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러한 유희는 하룻밤 만에 만들어도 되는 장르라고 비하하는 문학평론가들도 적지않을 정도였습니다. 문학과 담쌓은 듯 오로지 범인잡기에만 몰두하는 유희 정도로 정착해 버리자 반발하는 기류가 '당연히' 생겨납니다.
인간의 감정 특히 범죄 중 살인에 다다르는 상태와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기 시작한 겁니다. 이러하다 보니 사건의 해결에 천착하기보다는 '사건'을 두고 이 사건을 통해 벌어지는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다루는 데에 중점을 둡니다. 문학으로는 프랑스에서 대표적인 장르가 되어 활황했고 프랑스를 휩쓸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영화들 대부분이 1940년대부터 활황하며 영화의 대표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스펜스 장르에 걸작이 태어납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이 시기에 대단한 작품들이 탄생했는데 영화로만 꼽아보아도 <공포의 보수>, <이창>, <환상의 여인>,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 그리고 이름이자 장르인 알프레드 히치콕과 서스펜스의 끝판왕 같은 작품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도 탄생합니다. 그러나 탄생이라는 말에는 역시나 명멸도 함께 있는 법이라 1960년대를 지나며 심리적인 것에 천착하기보다는 행동에 천착하는 스릴러로 이야기의 흐름이 완전히 바뀝니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 스페인 영화에서 이러한 서스펜스를 가미한 스릴러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협소한 공간이나 특정 몇몇 인물을 내세워 그들 사이의 알력이나 숨겨진 배경을 어떻게든 끄집어내려는 영화들입니다. 최근 소지섭이 주연했던 <자백>의 원작이었던 <인비저블 게스트>의 뛰어난 완성도는 다들 보셨으리라 압니다.
그렇다면 <보통의 가족>은 어떠했을까요?
현대적인 서스펜스 <보통의 가족>!
보통의 가족은 4+2, 6명이 주축이 된 연극 같은 작품입니다. 트리거가 되는 2인과 이들로 인해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4인이 그들입니다. 트리거가 되는 2인은 4의 자식들입니다. 즉 가족극이며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특정한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을 밀도 높은 서스펜스로 그려냅니다.
즉 심리극입니다.
이 심리가 잘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 놓습니다!
결론, 매우 뛰어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줄거리를 가져와 봅니다.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리고 매사 완벽해 보였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데…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그날 이후,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 4인극에 가까운 이야기를 위해 허진호 감독은 매우 극명하고 대립적인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영화사가 홍보한 줄거리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1.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
2.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3.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
4.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현대적인 가족입니다. 결국 이들이 그리는 모습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현대적인 서스펜스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의 명제가 등장합니다. 잘 시도하지 않는 한국에서의 서스펜스!
이 영화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보통의 가족, 극명한 장점과 단점의 교차
앞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매우 뛰어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화두를 하나 던졌습니다. 이 캐릭터 영화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로 1-4의 캐릭터 유지, 희비의 쌍곡선을 통한 캐릭터 교차, 결과적으로 캐릭터 폐기 수순일 겁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걸 잘하지 못하기에 또는 잘하기 어렵기에 그 수많은 서스펜스 영화들이 망하고는 합니다.
줄거리 이외에 내용은 일단 함구합니다만!
그 모든 것을 뛰어나게 해내며 영화는 허진호 감독이 노렸을 파괴적인 지점에 도달합니다. 어떤 관객은 탄성을 지를 것이고 어떤 관객은 뒤통수가 얼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여기에 다다르는 과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깔아놓은 암시와 복선 역시 무리없이 회수하는 과정을 거치는 터라 몇 번 곱씹을 관객들 역시 '살며 사랑하며 죽이는' 이들 6인의 모습에 많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단점 역시 명징합니다.
이는 처음 캐릭터의 관계 설정과 대놓고 던져주는 떡밥 즉 복선부터 영화의 결말까지가 추측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거기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영화가 전개되고 맙니다. 그어떤 영화적 예외는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매우 잘 만든 시나리오이겠으나, 바꾸어 말하면 매우 전형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희비의 쌍곡선'이라 표현한 캐릭터의 전격적인 희비의 교차 즉 서스펜스의 마지막 한방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이는 러닝타임을 생각한 편집에서의 생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뒷부분이 조금 급작스럽거든요. 아마 이부분에 대해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 아쉬웠던 점은 연기의 감정 라인에서 유독 한분만 튑니다. 과유불급. 이건 같이 갔던 여러 분들께서 지적하신 겁니다. 물론 저 역시, 혼자만 튀어서 감정 라인을 어느 정도 조정했어야 하지 않았던가, 했더랍니다.
다만 위 질문, 이 영화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에 대한 답은 나왔지 않나 싶네요. 대립과 희비의 갈림, 그리고 아래에 나올 연기의 활용을 통한 서스펜스의 극대화!
극단적 클로즈업 극단적 감정의 대립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그 어떤 영화보다 소위 '얼빡' 샷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는 분명하고 충분한 감독의 의도입니다. 매우 미세하고 감정적인 순간의 연기 하나하나 유의미한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게 전해집니다. 그러하기에 수현은 그 어떤 때보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얼굴을 관객에게 들이밀고 설경구 배우의 라미네이트를 한 듯한 앞니 역시 몇 번이나 스크린에 수놓아집니다. 한때 대한민국 얼굴 미남 1위였던 장동건 배우 역시 입술 아래에서 회오리를 만들어내는 듯한 주름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김희애 배우 역시 장동건 배우보다 연상이라는 설정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 또한 이 '얼빡' 샷 즉 극단적인 클로즈업 탓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의도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적극적인 감정의 전이였을 겁니다. 배우의 눈떨림, 입술 움직임, 볼과 얼굴의 미묘한 변화까지 보여주며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들이댄 결과! 관객은 내 앞에서 침을 튀기며 말하는 듯한 극단의 대화에 빠져들었을 게 분명하니까요.
즉 몰입감 극대화! 이는 분명 성공한 도박이었습니다.
몰입감 극대화의 성공한 도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죠. 바로 대립이었습니다. 이 대립은 밀도 있는 연기를 통해 최적의 현장감을 제공하며 관객에게 서스펜스의 롤러코스터를 제공합니다.
걸작은 아닐지언정!
2024년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서스펜스였습니다. 오리지널 IP는 아닌 소설 <더 디너>의 한국판 영화이지만 충분히 한국적인 영화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작품이 원작이라는 걸 생각하면, 최근 스페인의 서스펜스는 세계 최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거고.
<보통의 가족>은 2024년을 장식할 영화 중 한 작품이 아닐까. 특히 누구에게든 주연상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피 튀기는' 연기를 통해 관객은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체감을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이는 곧바로 서스펜스의 극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서스펜스의 극대화는 보통의 가족이 특별한 가족으로 승화했음을 말해줍니다.
제 기준으로 보자면, 영화 전체의 플롯이 예상 가능할 정도로 안일했고 결말의 설득력이 부족했음에도 명징한 주제 의식과 현대에 대한 비판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비록 걸작은 아닐지언정 2024년의 최고작 중에 한편은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이유 하나를 댄다면, 네, 올해 개봉작 중 처음 리뷰하는 작품입니다. 그것으로 작품에 대한 설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합니다. 별점 주는 놀이는 하지 않지만 혹시 궁금하실까봐 개인 별점을 몇 개를 줬을까, 저는 3개. 대외적인 부분을 떠나 제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반드시 말씀드립니다. 감독판 내 주세요!
꼭, 감독판 내 주십시오.
추천인 10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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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보시기를 바랍니다. 잼나요.
흥행 궁금하네요
스페인 영화가 어떤지 보고 싶은데
아, 원작이 스페인 소설입니다. 내용 살짝 고쳐 두었습니다.
배우들 연기 정말 좋았습니다. 즐기는 것과 다르게 오랜만에 몰입하면서 봤습니다.
좀 더 길게 후반부 가져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말씀하신 특정 배우의 심리가 좀 이해되더라고요.
선한 것 같지만, 은근 속물적이고 위선적이라는 힌트를 중간중간 던져줘서 그랬는지 말입니다.
특정 배우분은 두 번 보면 또 다르게 보이겠지요.
영화는 뭐, 잘 만들었어요 정말...!
봄날은 간다,행복처럼 감성적인 로맨스드라마가
생각나는데 (사극인 천문도 감성적인..)
서스펜스와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가지고 와서 개인적으로 흥미롭네요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더욱 기대되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오늘 보러갑니다 ~ 와드박고 끝나구 볼게요 ^^
영화 잘 만들었습니다. 올해 하반기 문제작!!!
최고였습니다 !! 마지막에 포스터까지 딲 ~~
그리고 감독판 달라 ~
좋은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유쾌한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를 잘 만들어서 즐겁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십시오.
주말에 한 번더 보려고 합니다.
개봉이 16일이던데... 대규모 시사 보면 영화에 얼마나 자신감 있는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