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스포]'조커 폴리 아 되' 단상
반말 양해 부탁드립니다 :D
아이와 물풍선을 만들며 놀아줄 때였다. 물풍선 크기보다 지나치게 많은 물을 넣으며 즐거워하던 아이는 금방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 물을 많이 넣어 풍선이 터지고 만 것이다.
‘조커: 폴리 아 되’를 보면서, 영화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깜짝 놀랐다. 감독의 메시지가 선명했지만, 관객(나아가 고담시 대중들도!)이 전혀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굉장히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으로서 조커의 파멸, 하지만 누구든 언제든 조커가 될 수 있는 고담시. ‘너희가 원하는 아서 플렉의 조커는 없다’고 단언하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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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아 되라는 제목을 보고 대부분은 ‘조커-할리퀸’두 사람의 광기 공유가 고담을 어떻게 혼란에 빠트리는지 보여줄 것임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오히려 조커와 할리퀸 두 사람을 둘러싼 고담, 그리고 그 둘의 광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폴리 아 되’의 대상이 됨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일찍이 전작에서 조커의 탄생을 바라보며, 우리는 조커가 어떻게 고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낼 것이며 또 그에 대응하는 영웅적 존재의 등장이 어떻게 은밀히 암시될 지를 기대하였다. 영화 내 고담시민들도 조커의 등장을 마치 영웅처럼 반겼다. 부조리한 고담을 너나할 것 없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존재는, 악당이 아니라 영웅에 다름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감독은 그런 조커는 적어도 아서 플렉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심신이 미약한 아서 플렉이 감당가능한 조커는 이미 1탄에서의 그 모습이 끝임을 알려준다. 관객도 고담도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1탄만큼 충격적이고 압도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도리어 더 곱씹게 만드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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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개인의 정체성이란 없다. ‘사회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시니피앙 역시 ‘사회와 단절된’이라는 시니피에를 담지하고 있다. 아서 플렉은 마치 작은 물풍선과 같았는데, 고담과 관객은 그에게 그 이상의 물을 담으려는 우리 아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고담이 아닌 곳에서라면 조커가 되었을까? 조커가 된들, 그정도의 추앙과 기대를 받으며 오히려 범죄에 대한 부추김을 받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멀쩡하지만 감옥까지 굳이 들어와 아서 플렉의 조커 정체성을 일깨우려했던 리 퀸젤(할리 퀸)은 관객과 고담 모두를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로 작용하게 된다.
그녀는 영화에서 단 한번만 ‘할리 퀸젤’이라는 풀네임으로 불린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서 법정에 등장하여 존재감을 과시한 그 이후, 그러니까 다시금 조커의 정체성을 일깨우기 직전에야 풀네임으로 불리게 된다. 조커의 부활은 곧 할리퀸의 탄생이다. 그러나 조커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며, 할리 퀸은 여전히 불완전한 리 퀸젤이 되어 고담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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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질문을 던진 것에 자답을 해보자면, 그는 고담이 아닌 곳에서 그런 학대를 받으며 자라났다하여도 조커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설령 조커가 되었다하더라도 그만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고담이었기 때문에 조커는 주목받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고담이었기 때문에 아서 플렉은 조커로 완성될 수는 없었다. 개인이 감당 불가능할만큼의 ‘파멸’로서 정체성을 주문한 고담은 결국 그 파멸의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도 돌린 아서 플렉을 볼 수밖에 없었다. 조커가 날뛰면 고담의 혼돈은 더욱 상징적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고담의 문제는 조커와 같은 돌연변이가 날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검경조직, 불안한 치안, 하층민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지배층 등등, 복합적인 사회 요소가 모두 무너져내린 곳이 고담이었다. 당연히 이것을 한 사람이 자아낼 수도, 한 사람이 해결할 수도 없었다. 이 영화는 이 앞문장을,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이 뒷문장을 각각 결말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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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객들이 지닌 실망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다. 아니, 오히려 관객이 실망하면 할수록 영화의 완성도는 올라간다. 폴리 아 되,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집단적 공유 정신병은 조커와 할리퀸이 아니라 관객과 고담이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조커: 폴리 아 되, 2024년 개봉.
시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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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솔직히 즐겁진 않았습니다만 호평하는 분들 반응도 이해가됩니다.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