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리뷰 - 우리 모두의 숨겨진 얼굴
보통의 가족 (2023)
우리 모두의 숨겨진 얼굴
영화가 끝나고 여운의 꼬리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급작스럽고 악몽처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도로 위에서 벌어진 시비로 한 남자가 차에 치어 죽고, 그의 딸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지금 어디에선가 늘 벌어지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죠.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두 형제가 있습니다. 재완과 재규. 형은 변호사고 동생은 의사입니다. 형은 돈이 되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처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유능한 능력자이고, 치매 엄마를 모시는 동생은 형과는 대비되는 고결한 양심의 소유자입니다.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가족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 밑바닥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마치 무덤 아래에서 썩어가는 시체의 고약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만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 그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걸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도로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인명 사고, 이유 없이 행해지는 학교 폭력, 인성이 파괴된 십대들, 가진 자의 횡포, 십대들에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노숙자... 이 모든 것들은 평범하게 보이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있죠.
두 가족의 아이들이 끔찍한 범죄에 연루되면서, 부모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싸우며, 아이들을 지키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위선과 이기심이 낱낱이 드러나죠. 부모들이 악을 쓰는 동안 죄를 지은 아이들의 평온한 생활이 극적 대비를 이룹니다. 그렇게 영화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긴장감을 고조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폭발해버립니다.
영화의 엔딩은 놀랍습니다. 극중 대사를 통해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란? 불안감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하게 따라 다녔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자 충격적으로 와 닿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곪아왔던 종기가 터진 것 같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통의 가족>은 평범해 보이는 세상 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어두운 이면을 섬세하게 들춰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재완과 재규, 그리고 아내가 극단적 이기심과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휘청거릴 때 그들을 비난하긴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 또한 ‘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가족>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정말로 선한 사람인가요?" 그리고 그 대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절제된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내면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조성우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극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음악 선곡과 배치는 마치 하나의 캐릭터처럼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오랜만에 여운을 남기는 영화 음악과 만난 것 같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저버릴 수 있을까요? <보통의 가족>은 우리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잔인한 실험실과도 같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며, 우리의 내면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보통의 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요.
다크맨
추천인 1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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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일정시간 문자를 공개하자는 유사한 작품이 생각나네요. 이런 시한폭탄같은 작품 좋아라 합니다.
간만에 수작이 나온듯 하네요.
생각할 여지도 있고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