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2>: 있어야 할 게 없고 없어야 할 게 있는
우선 <베테랑 2> 감상평 중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류승완 감독 연출 대충하네 이제."
글쎄요. 전 반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류승완 감독이 고심한 흔적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예전부터 답습하던 연출 공식을 타파하려는 노력이나 무거운 사회 담론들을 한 올 한 올 엮어보려는 노력 말이죠.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노력들이 무색할 만큼 난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림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에 대한 증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느낌이었거든요.
지금부터 철저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느낀 아쉬움을 3가지만 말해보겠습니다.
1. 조잡한 인터넷 방송식 연출
얼마 전 우연히 OCN에서 박성웅 배우가 출연했던 <라방>이라는 영화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에서도 인터넷 방송과 댓글을 화면 전면에 띄우는 연출 방식을 활용하더군요. 온라인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 위한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상당히 정신이 없고 러닝타임 내내 핀트가 나가 있는 느낌을 줬습니다. 화면 밖에 존재하는 대중의 광기 어린 분노를 쉴 새 없이 보여주다보니 정작 메인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주인공들의 갈등 서사가 희석되는 느낌이랄까요. 중후반부부턴 오히려 주인공들이 대중의 불쏘시개에 농락을 당하며 개연성 없는 행동이나 말들을 늘어놓기까지 하고요.
<베테랑 2>의 초중반부 연출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뉴스 화면, 인터넷 방송 화면, 댓글 등 온갖 방식을 동원해 사회 범죄에 대한 정보와 반응을 쉴 새 없이 비춰주는데, 이 열기가 서도철을 비롯한 팀원들의 대사와 행동에 그대로 투영되어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양새로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분노와 막무가내식 정의감을 개연성으로 삼으면 편하긴 합니다. 범죄나 수사의 인과관계도 저거 하나로 치환시켜버리고 강력한 갈등 관계를 보여줄 수 있거든요.
근데 이렇게 되면 문제는 누가 봐도 연출의 성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감독 입장에선 정말 고심한 선택일지라도 말이죠. 최근 개봉했던 안국진 감독의 <댓글부대> 같은 경우가 <라방>과 <베테랑2>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좋은 예시입니다. 소재 자체가 인터넷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서사를 방해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공간을 지배하는 존재들의 힘을 부각시켜주는 조력자 역할에 그치고, 그 존재들을 파헤치려는 임상진이라는 기자의 목표의식이 꺼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계속 좋은 동력원으로 등장해주죠.
하지만 <베테랑2>는 아쉽게도 이 연출 방식에 있어서 만큼은 '과유불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로 얼룩진 인터넷 공간은 어느 순간 관객들로 하여금 '공권력이 하지 못하는 걸 사적 제재를 통해서라도 엄벌해야지'라는 생각에 잠기게 만들고 후반부 서도철 팀의 활약이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론 그냥 <부당거래>처럼 담백하게 인물에게 집중하고 사이드 서사는 사운드나 간략한 화면으로 전달해주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 서사 개연성 부족
<범죄도시>의 경우 마석도가 대놓고 '나쁜 놈은 잡아야 해'라는 대사를 치면서 두루뭉술한 정의감을 강력한 원동력으로 끌고 간다지만, <베테랑>은 1편만 놓고 봐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메인 사건으로 가기 전 영화 초중반부까지 배 기사와의 사이드 서사를 충분히 쌓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사건이 터져도 서도철이 막무가내로 종횡무진해도 관객들은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베테랑>이 가지고 있는 권선징악의 색깔이었고요.
물론 그 색깔이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2편에서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2편에선 개연성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세부 플롯들이 그렇습니다. 아들이 학교 폭력에 왜 연루가 됐는지는 '아이들을 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교장의 전언을 통해서만 짐작해야 하고, 해치의 잔인한 행보도 그냥 마석도의 무대포 정의감과 다를 게 없죠. 그러니 관객 입장에선 전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하고, 당사자들이 그토록 분노하고 폭주하는 걸 보면서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특히 메인 캐릭터인 해치의 살해 방식이 공개되는 순간부터는 '쟤가 다음엔 어떻게 나쁜 놈을 죽일까?'가 아니라 '쟤는 왜 이런 살인을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영화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비슷한 일을 당했는지, 혹은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는지 등 추측만 난무하게 할 뿐 해치의 전사에 대한 힌트를 하나도 주지 않죠. 이렇게 보면 해치는 그냥 정의를 좇는 자경단이 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배트맨처럼 명분이 있다거나 조커처럼 전사가 없어도 악행을 납득할 만큼 절대악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해치의 난폭한 행보는 맥락 없이 과한 정의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되는 거죠.
그게 서도철을 위시한 강력계 팀의 존재 이유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면 달리 할 말은 없겠지만, 영화 전체의 얼개를 탄탄하게 짜지 못하게 방해하는 설정이라는 점에 있어선 달리 부정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3. 너무 많은 이야기
제목 그대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학교 폭력, 위력을 사용한 사제간 성폭력, 모방 범죄, 렉카 등으로 화제가 된 인터넷 사적 제재 등 현재 한국을 휘감고 있는 무수한 범죄 양상들이 이 영화 안에 다 담겨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2>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확실히 느껴집니다. 정의와 부조리의 경계가 흐려진 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겠죠.
그런데 이 많은 사건이 역설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낮추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부장이라는 렉카를 통해 해치라는 익명의 자경단을 만드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서 몇몇 사건은 들러리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특히 학교 폭력 같은 경우에는 서도철이라는 메인 캐릭터의 서사에 던져지는 역할에 그치고 말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서도철 부부와 아이의 대화 부재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그리고 학교에서의 폭력을 '아이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베테랑1>의 대사 하나로 퉁치기에는 너무 성의가 없습니다.
<베테랑1>이 호평을 받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바로 선택과 집중에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대기업 갑질, 정경유착, 마약 문제, 낙태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등장했지만 괜찮았습니다. 이 사건들 모두 조태오라는 중심인물의 테두리 안에 존재했고, 그것들이 집약되어 조태오의 악마성을 강조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베테랑2>에서의 사건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벌어지며 그 인물들 사이에 서도철 아들을 빼고는 얽히고설킨 관계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관객 입장에선 '아, 류승완 감독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근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개인적으론 시류를 신경쓰지 않고 류승완 감독이 뚝심있게, 본인이 잘하던 선택과 집중을 통해 흡인력 있는 서사로 <베테랑2>를 채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마치며
저는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입니다. 한국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고, 액션물을 통해서도 사회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본 유능한 감독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를 요 근래 가져가고 있는 중이고, <베테랑2>도 그 과도기에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이 없진 않았습니다. 정해인이란 배우의 새로운 발견이나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 등은 이 작품이 없었다면 즐길 수 없었을 요소라 생각합니다. 부디 류승완 감독이 이번 작품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옛날에 보여줬던 탄탄한 서사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보겠습니다.
P.S. 사랑하는 감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담아 평점은 따로 매기지 않겠습니다.
추천인 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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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지점을 잘 설명해주셨군요.
저 역시 안본 눈이긴하나 이렇게까지 평이 갈릴수 있나 싶어 의아한 참이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요즘 영화계의 추세인(범도 기준) 빠른 진행과 전형적인 사이다물의 맞추려다 보니 서사도 개연성도 부족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선택과 집중에서 빠른진행에 맞춘 느낌을 받은거죠
서울의봄 파묘에서도 아쉬운 부분은 반드시 존재하는데요 그럼에도 베테랑2는 정해인 연기 하나만으로도 천만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서사 자체가 부족한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