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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다 위스키 패밀리 (2024) 볼 만은 하다.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411 3 7

 

80년대 만들어진 명가의 술이라는 걸작만화가 있다.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인데, 쌀을 더 많이 깎아내야 술의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양조장끼리 기술개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쌀을 조금이라도 더 꺾아낼 수 있을까 경쟁한다. 

이 만화는 궁극의 사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양조장 사장 딸에 대해 그린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 코마다 위스키 패밀리의 주인공 또한 위스키 증류소 여사장이다. 하지만 "궁극의" 위스키를 만들겠다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다. 1980년대 정신이었던 "궁극에 대한 치열한 추구"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시대정신이 아니다. 

 

코마다 증류소에서 만든 코마라는 상표의 위스키는 나름 인기를 끌었었다. 그렇다고 뭐, 궁극의 위스키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여사장의 아버지 대에서 벌써 위스키는 퇴물이 되고, 코마다 위스키는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에 처했었으니까. 

여사장 루이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 그리고 가족처럼 지내던 직원들 모두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위스키를 

마시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녀에게 코마는 가족의 술이다. 루이는 이미 사라진 코마를 되살림으로써 

가족을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위스키 원액을 생산하길 포기한 코마다 위스키 증류장이다. 어떻게 코마를 복원한단 말인가?

루이에게는 너무 막막한 일이다. 하지만, 가족의 복원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루이는 험난한 장애물을 뚫으며 서서히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간다.

 

당신이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지 모르겠다. 가족의 복원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라니. 러브스토리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안 나온다. 모험도 없다. 인간극장 에피소드 하나 정도로 딱인 소재와 주제다.

 

루이가 흔들릴 때,

직원들 그리고 가출했던 오빠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코마의 부활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들 모두 가족의 복원을 염원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이 주제를 좋아하든 아니든 간에,

이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다. 

 

이 주제가 과연 복고적인 것인가 아닌가 알 수 없다. 

가족의 복원을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일본사회가 개인주의로 해체되어 버린 것인가? 개인주의에서 가족 복원으로 가자는 것은, 다시 80년대로 돌아가자는 복고적이고 반동적인 것일까? 아니면, 일본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이 가족주의라는 것일까? 이 주제를 이 애니메이션이 다루어야만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전달하려고 하는 그 분위기는 알 것 같다, 

 

궁극의 사케를 만들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 노력만큼이나, 가족의 술을 복구하겠는 루이의 노력도 치열하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은 루이의 노력과 간절함에 대한 것이니까.     

 

루이가 코마라는 위스키를 복원시키려 노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전역으로부터 도움이 쇄도한다. 루이의 가족복원주의는 일본 전역에서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명가의 술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은 이제부터다. 

 

또 다른 주인공은 타카하시라는 신입기자다. 그는 고등학생 때 밴드를 하다가 그만둔 사람이다. 가수를 하던 친구는 

음반회사에 들어가 잘 나가는 프로듀서가 되어 있다. 친구를 보니, 과거 밴드를 그만두었던 자기 결정이 후회된다. 

직장마다 시시하게 느껴져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직장을 다섯번이나 옮겼다. 그는 금수저들을 싫어한다. 

그는 코마다 위스키 증류소 사장 루이에게 반감을 가진다. 태어나면서 위스키 증류장 하나 딱 물려받고 사장이 되지 않았나? 자기처럼 어떻게 하면 위로 올라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생 항로가 다 결정되어 있다. 저 위에서 논다.

루이가 코마 위스키를 복원한다 어쩐다 하고 발버둥치는 것도, 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복 때문이다. 

내게는 시시한 일만 주어져서 직업을 여러번 갈아치우며 방황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그는 별 다른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기에 불만인 것이다.  

 

그는 곧 발견하게 된다. 루이는 금수저이기는 커녕 똥수저다. 코마다 위스키 증류소는 파산 직전의 망한 회사이고, 루이는 이 망한 회사에 발이 묶여 같이 바닥으로 끌려내려가는 형편이다. 루이는 미대에 다니다가 회사를 살리려고 미대를 그만두고 회사사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 망한 회사 사장이라는 것은 스트레스일 뿐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루이와 자기는 비슷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천지차이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열정적으로 루이를 돕기 시작한다. 그는 루이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것일까?

루이의 노력에 대한 기사를 써 올리면서 그는 자기 재능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루이를 돕도록 몰려들 정도로 그는 흥미로운 기사를 써 낸다. 그 재능은 처음부터 그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찾아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타카하시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마지막에 그는 민완기자로 성장한다. 타카하시가 바라던 화려한 재능은 아니었지만, 그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 

 

이 애니메이션은 루이를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루이는 미술학교에 가서 자기 재능을 깨닫는다. 자기 재능은 

만화를 그리는 정도다. 진짜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낀다. 루이가 코마다 위스키회사에 돌아온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루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도전을 회피했던 것일까? 그녀는 그냥 패배자였던 것일까? 그녀는 코마를 복원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그 속으로 도망칠 울타리를 복원하길 원했던 것일까? 굳이 이런 장면을 이 애니메이션에 넣은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이리라. 루이도 특출난 의지의 여인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일본에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로맨틱코메디를 예상하셨다면 이 애니메이션에는 그런 것 없다.

 

잔잔하고 일상을 다룬 소심한 것이다. 1980년대 애니메이션처럼 관객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고 감동시키고 압도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엄청 재미있고 창의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네?"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대의 정직한 반영, 거창하지는 않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 내에서 가족을 복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방황하는 젊은 군상들 같은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다.

 

또 하나, 오늘날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있다. 루이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코마 복원 자금을 조달한다.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푼돈을 받아서 그것을 모아 코마를 복원하려는 것이다. 은행이니 정부니 하는 데서 개인의 발전을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시대가 아니다. 핀테크의 시대다. 개인에게서 개인에게로 자금이 조달되는 시대다. 자금조달 자체가 fun 이 되는 시대다. 결국 루이의 코마 복원을 돕는 것은, 정부나 은행같은 것과 무관한 개인들이다. 굳이 크라우드펀딩을 언급하여 못박아두는 것도, 아마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주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1시간 40분 정도인데도,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계속 이어간다. 늘어지는 부분도 없고, 갑자기 툭 튀는 부분도 없다. 루이나 타카하시 캐릭터도 아주 현실성 있고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드라마틱한 것 없이, 그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도 내에서 노력한다. larger than life 는 전혀 없다. 소심/소박/내 주변 이야기 -> 이런 접근방법 자체가 현재 일본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애니메이션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만들겠다 하는 패기와 야심은 더 이상 오늘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정의하지 않는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가? 약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공감했는가? 약간 공감했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감동했는가? 약간 감동했다.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약간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에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가치가 아주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 이런 사람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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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3

  • BeamKnight
    BeamKnight

  • 진지미
  • golgo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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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소개해주신 명가의 술이라는 만화도 궁금해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09:13
16시간 전
BillEvans 작성자
golgo
전설이 된 만화입니다. 하지만, 먼 과거 일을 다루는 만화가 되고 말았군요.
09:35
15시간 전
profile image 3등
이 글로만 보면 '추억은 방울방울'과 비슷한 작품인 것 같네요.

괜한 딴죽이지만, 클라우드 펀딩이 아니라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아닌가요?
09:37
15시간 전
BillEvans 작성자
BeamKnight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팩트를 담담하지만 정직하게 제시하려는 작품입니다. 지브리작품들과는 기본 접근방법 자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수정하였습니다.

10:21
14시간 전
profile image
BillEvans

아, 이제 보니 P.A.Works 작품이네요.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연출되었나 보군요.

10:25
1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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