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2011) 박찬욱감독의 걸작. 스포일러 있음.
내가 본 가장 무서운 호러영화들 중 하나다.
박찬욱감독의 영화들 중 잘 된 편에 속한다는 생각이다.
길지 않은 영화이지만, 강렬하게 구획되는 두개 부분으로 나뉜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처음 부분에서 오광록이 추레한 낚시꾼으로 나온다.
너무 적막해서 신비하게조차 보이는 낚시터에 허름한 옷차림의 오광록이 낚시를 한다. 어찌된 것인지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그 자리에서 낚시를 한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심지어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도 말을 하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낚시에 뭔가 걸린다. 오광록은 낚시줄을 당긴다. 그런데, 낚시바늘에 걸려 나온 것은 머리를 길게 산발한 젊은 여자의 시체다. 오광록은 비명을 지른다. 마치 링의 사다코처럼 움직이는 여자의 익사체는 오광록 위에 겹치다가 뒤엉킨 낚시줄 때문에 오광록의 몸에 꽁꽁 묶인다. 오광록은 기절한다.
관객들 쉽게 눈치챌 수 있다시피, 오광록은 물귀신이다. 그는 다른 데로 가지 못하고, 자기가 죽은 자리에서 지박령이 되어 있다. 이 영화가 성공한 점은, 물귀신 오광록의 생활(?)에 대해 날 것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오광록이 물귀신이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관객들은 이미 오광록이 혼자 낚시하는 장소가 너무 적막하다고 느낀다. 심지어는 귀기마저 느낀다. 이 영화는 귀신을 보거나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강렬한 귀기를 느끼는 영화다. 당신이 진짜 귀신이 나오는 낚시터에 한잠중에 혼자 간다면 느낄 강렬하고 생생한 귀기가 이 영화에 한가득 담겨 있다.
오광록이 정신을 차려 보니, 여자는 이미 생기를 되찾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라? 그 여자는 귀신 아니었나? 오광록은 귀신을 만난 낚시꾼이고? 하지만, 이 여자는 어느새 침울하고 적막한 오광록보다도 더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그제서야 관객들은 왜 지금까지 오광록에 대해 뭔가 아지 못할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게 된다. 그는 너무나 생명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너무나 장면이 바뀌어서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첫번째 부분은 죽음의 세계 그리고 두번째 부분은 삶의 세계이니까. 둘은 스무스하지 않고 강렬하게 충돌해야 정상이다.
무당인 젊은 여자가 굿을 한다. 귀가 아플 정도로 목놓아 운다. 귀신을 부르는 것이다.
여배우 이정현은 진짜 신기가 있나 하고 의아해질 정도로 열연을 펼친다.
그는 귀신을 불러내고 있다. 귀신과 한 몸이 되려 한다. 접신의 과정이다.
굿을 하고 있는 무당 이정현이 귀신 오광록을 찾아갔던 것이다. 첫번째 부분과 두번째 부분은 강렬하게 충돌한다.
이 부분에서는 강렬한 신기를 생생하게 느낀다. 무당이 접신하여 발광하면서 신을 불러들일 그 장면에서 우리가 진짜로 느낄 그 역겹고 강렬한 신기를 진짜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직접 느끼는 것이다.
첫번째 죽음의 세계와 두번째 삶의 세계의 강렬한 충돌 - 그리고 둘을 잇는 무당의 역할에 대해 아주 강렬하고 날 것 그대로 그려냈다. 둘은 충돌하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무당인 이정현이 없어서야 둘이 만날 일도 충돌할 일도 없다. 이것이 무당인 이정현의 역할이다.
대사도 아주 끔찍하다. 오광록 귀신에 빙의된 이정현이 오광록이 되어 딸과 대화하면서 손으로 딸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광록 귀신에게 빙의된 이정현은 목놓아 울면서, 딸에게 "썩은 손으로 만져서 미안하구나"하고 목놓아 운다. 만들어낸 대사 같지가 않다. 귀신을 영화에서 본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가서 귀신의 말을 듣는 것같은 생생함이 있다.
이 영화를 인정 안 할 수 없다.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다. 그래서, 어딘가 거친 입자의 투박한 화면이 느껴진다. 이것이 이 영화에는 맞다. 세련된 화면 대신 아이폰으로 찍은 거칠고 투박한 화면이 이 영화에는 맞다. 영화의 내용에 생생함과 실감을 준다.
길지 않은 영화가 아주 거대하다. 삶의 세계 그리고 죽음의 세계를 강렬하게 병렬시키는 구조다. 많지 않은 우리나라 호러영화들 가운데에서 이 영화는 순위권에 든다. 예술성과 쟝르적 공포는 물론이거니와, 창조성과 혁신성도 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중요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에는 십년에 한번씩 나올 혁신이 일어나는 시대니까. 이제 사람들의 의식 그리고 사회구조 자체가 그런 계속적인 혁신에 맞춰져 변화될 것이다. 계속적인 혁신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잘못 하면, "아이야 청산 가자"하는 식의 예술을 내놓고 대중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게 철옹성처럼 백년 넘게 대중예술을 지배하던 영화도 대체되려니까 삽시간에 되는 시대다. 그 점에서도 이 영화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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