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2024) 야쿠쇼 코지의 열연. 스포일러 있음.
야쿠쇼 코지하면 1985년작 탐포포가 생각난다.
거기에서 그는 단역이었고 줄거리에 하등 상관 없는 그런 역할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야쿠쇼 코지였다. 언제 그 사람이 나오나 하고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야쿠쇼 코지를 다시 본 영화는 섈 위 댄스였다. 카리스마 있는 강렬한 역이 아니라, 사회체제 내에 순응하고 조직의 부속품으로서 열심히 건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 하려는 성실하고 착한 가장 역할이었다. 너무나 이 역할을 잘 해내어서, 이후 그의 성공에 기반이 된 기념비적 영화다.
야쿠쇼 코지는 일본 버블기부터 현재까지 주연으로 활동하는 배우다.
(나카다이 타츠야같은 대배우는 일본 호황기부터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버블기가 전성기였던 배우다. 오늘날 일본인이 말로만 듣고 별로 와닿지 않는 대호황 대버블기를 상징하는 larger than life 고전적 배우다.)
야쿠쇼 코지는 오늘날 일본인에게 와 닿는 대배우다. 그가 맡았던 역할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shall we dance 에서, 자기가 맡은 조직에 충성을 다하는 삶에 대해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는 역할이다. 경제며 회사는 엄청 잘 나가고 있는데, 그 속에서 자기 물질적 풍요도 누리고 있는데, '아, 이건 뭔가 좀 아닌데?'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하는 역할이다. 그는 버블기의 화려하고 gorgeous한 역할 -> 소시민적이지만 강렬한 역할 -> 소시민의 역할로 서서히 옮아간 배우다. 이는 일본경제와 사회의 점진적인 변화와 대응하는 것이다.
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이런 야쿠쇼 코지 배우사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무대가 일본인 이유가 있다.
야쿠쇼 코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정해진 대로 정해진 작업복을 입고 출근해서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너무 정확하고 늘 똑같은 단순반복작업이라서, 야쿠쇼 코지가 마치 태엽시계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로봇같다.
그는 이 일을 즐기는가? 이 일에서 무슨 의미를 찾아내는가? 아니다. 그는 그냥 공허하다.
그의 젊은 파트너는 일에서 기쁨, 보람,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당연히, 화장실 청소같은 것은 농땡이치려 한다. 잘 생겨지지도 않는 여자친구를 만들려고 한다. 쾌락적 인생이다. 하지만, 돈도 없고 얼굴도 추악하기에 바라던 쾌락은 오지도 않고 늘 불만이다.
야쿠쇼 코지는 버블기로부터 일본불황기를 살아낸 인물이고, 젊은 파트너는 호황이라고는 말로만 듣는 아무것도 없는 세대다. 그는 버블기에서 살아왔던 그대로 조직의 충실한 부속품으로 살아간다. 지금 그 조직이라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의미없어지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면서 꿈을 꾼다. 너무나 빨리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기에 무엇인지 캐치하기도 어렵다.
지루하고 의미없는 일상은 총천연색이지만, 무언가 황홀하게 마음을 붙잡는 이 꿈은 흑백에다가 형체조차 뚜렷하지 않은 재빨리 지나가버리는 직선들이다. 마치 지나간 버블기의 짧았던 그러나 영광스러웠던 번영처럼. 이 꿈은 야쿠쇼 코지에게 노스텔지어를 주지도 안타까운 갈망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고통을 준다. 그의 무미건조한 일상은, 이 고통으로부터 무감각해지기 위한 것일 지도 모른다.
어느날 조카가 가출해서 야쿠쇼 코지를 찾아온다.
조카는 진정한 괴로움을 모른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출을 한 그녀에게는 야쿠쇼 코지가 영웅이다.
야쿠쇼 코지는 느닷없이 찾아온 조카 때문에 단순반복으로 기계처럼 계속되던 일상이 깨진다.
조카는 모른다. 그의 평범하고 잔잔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꿈속에서 보여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조카에게는 야쿠쇼 코지가 무슨 일상을 초월한 도인같은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야쿠쇼 코지는 사실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다. 야쿠쇼 코지가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과거와의 불화가 있다. 그는 자기 과거와 단절한 대신 이런 삶을 선택했지만, 사실 이 삶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를 사회와 삶과 단절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들어 왔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사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 버블기의 영광으로부터 추락한 그 아픔을 애써 무감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젊은 세대는 경험해 본 적도 없기에, 그들이 무엇을 상상도 못한다.
야쿠쇼 코지는 음악도 낡은 워크맨 카세트테이프로만 듣고, 듣는 음악도 1970년대 지나간 팝송들이다.
그는 새로운 세계나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공간과 소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산다. 철저한 자기 고립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야쿠쇼 코지의 얼굴은 평온이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 혹은 슬픔이 동시에 지나가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고요나 평온과는 거리가 멀이다.
그것은 아주 격렬하다. 자살을 하거나 묻지마 살인을 하려는 사람의 얼굴이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시 그 일상의 평온함(?)으로 돌아갈까? 자기 껍질히 벗겨진 그 암흑과 고통이 세계에 뛰어들까? 자기 학대를 할까?
자살할까? 어느쪽이 되든 야쿠쇼 코지에게는 지옥이다.
감독의 타이틀 퍼펙트 데이즈는 물론 반어법이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아주 변태적으로 만나는 왜곡되고 고통에 찬 시간 - 그것이 현재 일본의 일상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어찌 비단 일본뿐이랴? 독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이고, 다른 나라들에게도 번영이 서서히 지고 있는 중이다. 국가가 사회가 지옥이 되어 버린다면, 개인의 일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일상을 통해 소극적으로 지옥에 무감각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오늘날 개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규정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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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보기까지 20년이 넘는 시차가 있어서 몰랐네요. 알려주신 덕분에 알았네요.
일본 배우를 따로 찾아보지는 않아서 이번 글을 통해 몰랐던 여러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체화한 캐릭터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