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노래 (1977) 긴다이치 코스케 수작. 스포일러 있음.
긴다이치 코스케의 오랜 친구 이소카와경위는 커리어의 막바지에 이르러 한가지 회한이 있다.
바로 수십년 전 자기가 풀지 못했던 살인사건이다.
무대는 귀수촌이라는 온천마을이다.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답게, 외지고 한적하고 폐쇄적인 마을이다.
하지만 그 마을에는 수십년 전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가메노유이라는 온천장에서 그 온천장 주인 아오이케 겐지로라는 사람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제 퇴직할 때가 가까와지자 이소카와경위는 이 미제사건을 꼭 해결하고자 한다.
이소카와경위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이 마을로 부른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난색을 표한다.
현재 살인사건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수십년 전 사건을 해결해 달라니......
이소카와경위는 온천장을 현재 운영하고 있는 미망인에게 오랜 애정을 품고 있다.
그녀를 위해서 남편을 죽인 범인을 찾아주고 싶다. 자기는 그렇게 못했다.
하지만, 수십년 전 살인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마을에서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마을에 있는 처녀들이 차례차례 살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마을의 전래민요 악마의 공놀이노래라는 노래의 가사대로 말이다.
봉건시대 일본은 어찌된 것인지 귀족들 가문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민들조차도 자기들 집에 옥호를 만들어 스스로를 폐쇄적인 가문으로 만든다. 농민들 상인들도 다 옥호가 있다.
숨막히는 사회다. 그들 간에는 복잡하게 얽힌 질시와 암투가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답게 가계도가 아주 복잡하게 나온다.
다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가문과 가문구성원 이름들이 나온다.
영화를 보다가 보면, 왜 이것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당시 일본사회가 이렇게 얽히고 얽힌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이다.
누구누구라는 이름보다, 어느 가문의 어느 구성원이고 어떤 히스토리가 그 가문에 있고 - 그것이 더
중요한 사회였다니.
마을의 인기 있는 젊은이 카나오는 야스코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데,
후미코라는 처녀가 카나오를 찍사랑해서 괴로워한다. 요즘같으면 그냥 세사람의 러브 어페어다.
하지만,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개인들 간의 러브 어페어라기보다, 가문과 가문이 복잡하게 얽힌 질투와 암투
그리고 사회적인 것이다. 불필요한 갈등과 잔혹이 개인들 간의 관계를 넘어 퍼져나간다.
이것이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를 관통하는 중심주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사회적인 첨예한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악마의 공놀이노래는 긴다이치 코스케영화들 중에서 좀 특이하다.
이소카와경위의 갸매노유온천장 여주인을 향한 오랜 연모가 하나의 중심소재다.
여주인도 이소카와경위의 연모를 눈치챈다. 하지만 자꾸 이를 피한다.
나중애 밝혀지는 이유는, 온천장 여주인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과거 사건이 족쇄가 되어, 여주인은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여주인은 자기 딸마저 살해하고 늪에 투신하여 자살하고 만다. 한번 빠지면 발을 잡아 끌어들여 죽인다고
해서 악마의 늪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여주인이 여기 몸을 던진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여주인을 끌어들여 살인과 자살이라는 늪으로 끌고들어간 것이 수십년 전 죽은 남편이다
(그 남편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 것은 일본봉건사회의 모순이다). 이소카와경위는
자기가 연모하던 여자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손놓고 목격해야 했으며, 자기가 그 여자를 체포해야 했고,
그 여자가 늪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어야 했다. 이소카와경위가 떠나가는 긴다이치를 배웅하러
기차역에 와서 손을 흔드는 마지막 장면에는, 그래서 감상적인 슬픔이 흐른다.
한때 여배우로 각광을 받다가 시골마을에 와서 온천장여주인으로 반평생을 보낸
미망인은 늘 명랑하게 행동한다. "과거에 얽매여 봤자 뭐하겠어요?"하면서 과거를 다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은 강인한 여자라고, 과거같은 것은 다 극복하고 산다 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그 여자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속으로는 한맺힌 일생이다.
거기에다가 남편 때문에 원치 않는 살인을 해야 했다니. 남편 때문에 자기가 낳은 딸은 얼굴 반쪽이 붉은 얼룩에 덮여 창고에서 숨어산다. 그것을 쭈욱 지켜보아야했던 것도 정신적 고문이다. 자기 딸마저 죽였다.
결국 악마의 늪에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인생을 끝맺었으니 정말 이런 처절한 삶도 없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살해한 것을
알게된 카나오는 절규한다. 어머니는 사랑했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살해한 범인은 증오했다.
이제 어머니의 익사체를 눈앞에 두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벌벌 떨며 잠시 망설이다가
"어머니"하고 소리지르며 목놓아 운다. 그도 처절한 비극의 희생자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소설에서는 카나오가 집을 버리고 떠돌이로 마을을 떠나 버린다고 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나 이소카와경위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건이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소카와경위에게 얼마나 우정을 갖고 있는지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다른 에피소드들과는 달리,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개인사적인 분위기로 영화가 진행된다.
멜랑콜리하기까지 하다. 다른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들에서는, 이런 감상적인 요소들이 많이 절제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사건의 스케일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좀 작다.
폐쇄된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저지른 살인사건이니까. 추리영화로서 쾌감은 좀 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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