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in time (1980) 신파조의 고전. 스포일러 있음.
Somewhere in time 은 참 이상한 영화다. 보통 걸작의 조건이라고 할 만한 절제와 균형이 없다.
그냥 다 과잉이다. 걷잡을 수 없이 폭주했다가 과도한 멜랑콜리에 빠지고, 개연성같은 것 혹은 논리같은 것은
그냥 싹 무시한다. 작곡가는 평소에는 프로페셔널하게 일했는데, 이때 마침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음악도 굉장히 펠랑콜리하다.
그렇다면 한번 비웃어준 다음, 그냥 무시하면 될까? 안 좋은 영화가 가지는 조건은 다 가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이 멜랑콜리한 영화는 관객들의 폐부를 찌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큰 슬픔과
무한히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 뭐 그런 것들이 있다. 우리가 평생 몇번이나 만나게 될까 궁금할 정도로
큰 슬픔과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동경이 이 안에 있다. 너무 멜랑콜리한 글로 읽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 영화가 너무나 감동적인 나머지,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맥키나섬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본 다음에는, 이 사람들이 이해가 될 것이다. 좋은 영화니 걸작이니 하는 틀에 사로잡혀,
이 영화가 가지는 엄청난 정서적 힘을 무시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타임 트래블이 소재다. 아주 목숨 걸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저 무한한 시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시간에 살고 어디 사는지 장소만 모른다면, 언젠가 만나리라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에 있다. somewhere in time 이다. 요즘은 이런 종류 설정에 참 익숙해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나온 것은 1980년이다.
참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리차드 콜리어라는 청년은 대학 졸업파티에서 어느 할버니 귀부인을 만난다.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인데, 손에 척 보아도 비싼 회중시계를 쥐어주며, "Come back to me"라고 말한다.
리차드는 뭐라 할 지 몰라서 그냥 할머니를 바라만 보는데, 그녀는 군중들 속으로 사라진다.
리차드는 나중에 각본가로 대성공한다. 상도 즐비하게 타고, 누구나 그의 각본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다.
하지만, 이제 영감이 다 바닥났다. 그는 갑자기 그의 스포츠카를 타고 무작정 떠난다.
그러다가 길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을 발견한다. 그는 즉흥적으로 그 호텔에 투숙한다.
호텔에는 호텔박물관이 있었는데, 그는 시간을 죽이려고 거기 들어갔다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의 흑백사진을
발견한다.
그는 사진 속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의 각본을 담당한 리차드 매드슨의 실제경험이다. 모드 애덤스라는 여배우의 사진이었다. 사실 이 각본을 쓰게 된 동기가, 모드 애덤스의 사진을 보고서였다.
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차드는 사진 속 여인에 대해 집착을 보인다.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다닌다.
그녀의 일생에 대해서는 수수께끼가 있다. 어느 연도를 기점으로 해서 그녀는 180도 바뀐다.
그 전에는, 연극활동도 활발히 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그 해 이후로 그녀는 연기활동에서 은퇴하고 은둔자가 되어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평생 보낸다. 리차드는, 그녀가, 자기가 졸업파티를 한 그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치 평생에 걸친 무언가를 해냈다는 듯 만족스럽고 평온한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리차드 콜리어가 과거로 돌아가 여배우 엘리즈를 만나는 방법이라는 것이 좀 괴이하다. 바로 자기 최면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 영화에서, 과학적인 설명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자기 최면은 아주 취약하다.
내가 20세기에 있다는 사실을 아주 약간만 기억해내도 이 최면은 깨진다.
리처드가 흑백사진 속 인물이 살아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엘리즈(여배우)는 놀라지도 않고, "Oh, it is you."라고 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얼마 전 점성술사를 만났고, 그는 엘리즈가 평생의 사랑을 만날 것이지만, 이 사람 때문에 일생이 파괴되고 은둔하고야 말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그녀는 겁이 났지만, 실제 리처드를 만나자
자기 일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리처드야, 원래 엘리즈를 만나기 전부터 사랑에 빠졌으니까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영화는 그 정서적 힘이 강렬하다. 흑백사진 속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 유치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속 장면을 보면 공감하게 된다. 그만큼 영화가 멜랑콜리하면서도 아주 아름답게 촬영되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안은 어둡다. 그리고 천정의 창문을 통해서, 강렬한 햇빛이 여기저기 직선으로 내려쏟고 있다. 리처드는 어둠 속으로 들어선다. 벽에 어느 흑백사진이 있다. 리처드는 아주 신비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 사진으로 다가간다. 아주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이 거기 있다. 자신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아름다움을 손에 넣었다는 듯 거기 있다. 리처드는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혼이 빼앗긴다.
그는 황홀을 느낀다. - 이런 느낌이다. 멜랑콜리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을 이토록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포착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리처드는 이 여인의 일생을 망칠 것이다. 이 여인이 모든 연기생활을 은퇴하고 은둔자가 되어 평생을
보내게 되는 것도 리처드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겠지만, 이 여인이 리처드의 졸업파티에 나타나
"Come back to me"라고 말한 그 할머니이다. 리처드가 이 여배우를 만나기 위해 그토록 애쓴 것도,
실은 엘리즈 때문이다. 엘리즈는 자기 일생을 망칠 리처드를 과거의 자기에게 보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것이다.
나중에 리처드와 엘리즈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은 대단한 감동을 준다.
타임 트래블이라는 깨어지기 쉬운 방법이 없어도, 그들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들을 예리하게 분리하던, 서로 다른 시간이라는 것도 이 영원 속에서는 의미없어진다.
이제 아마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영화 가지고서는, 이런 멜랑콜리하고 로맨틱하고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소재와 주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자기 목숨조차 격정속에 내던지는 사람을,
보통의 영화가 어찌 잡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그것을 해낸다.
걸작이라고는 도저히 말 못하겠지만, 아주 비범한 영화라는 것은 틀림없다.
소섕크달출을 보고 감동해서 그 촬영장소에 가서 산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그 촬영장소인 맥키나 아일랜드에 가서 사는 사람은 있다.
그 사람은 아마, 이 영화가 포착해내는 영원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잡아보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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