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 감상문(스포)

시태라 시태라
1986 6 8

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투쟁’이라는 단어는, 사실 공산주의 해체 이후 다소 낡은 이념어로 고착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20세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휴전국가에 발 붙이고 사는 우리 역시 크게는 북한과, 작게는 우리 삶의 비아(非我)와 투쟁 중이다. 신채호가 말한 ‘아(我)’는 개인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라는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투쟁도 있지만, 좀 더 이타적이고 거국적인 연대를 통한 투쟁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요?

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는 막다른 궁지에 몰려있던 이들의 연대와, 그 연대의 시발점인 낸 골딘의 삶을 동시에 그려낸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이타적인 연대라는 것은 꼭 그 동기부터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낸 골딘의 투쟁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거나, 거대 기업의 횡포를 반드시 꺾어 시민 개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거창한 이념이 묻어나진 않는다. 그녀는 거침없이 말한다. ‘새클러 가에 대한 나의 분노는 개인적인 것이죠.’ 낸 골딘 및 그녀와 연대하는 이들의 동기는 사실 거대 기업이 고의로 망가뜨린 개인의 삶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그들의 횡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 동기가 때론 유혈사태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래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보도는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

 

국 출신의 세계적 기자 옵솔 형제의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불편한 좌파들의 시위를 정당화하는 편향된 영화라고 하겠으나, 되려 묻고 싶다. 이토를 쏴 죽인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가, 독립운동가인가? 주관을 담지 하지 않은 사실 나열은 진실과 다르다. 그녀의 투쟁은, 영화 속에서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는 그녀의 ‘주관적인 삶 그 자체’를 들여다보지 않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클러 가는 중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약을 그대로 판매하여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양산해 냈다. 타인을 죽여가며 불린 유산이 영화 챕터 2에 비치는데, 동시에 낸 골딘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며 얻은 자산을 보여준다. 영화는 대체로 챕터 제목에 의거하여 끊임없는 비교 대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히 이 챕터에서는 사진을 접하게 된 낸 골딘이 사진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때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피사체로 등장한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빛에 반사된 자기 자신의 객관적 모습을 보며 주관적이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녀는 남들이 담기 원치 않던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드러냈다.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드렉 퀸의 삶을 살아간 그(그녀)들의 모습을 찍어주고 세상에 드러내었던 낸 골딘은, 자신의 추악함을 숨기기 위해 돈세탁을 하는 수단으로 미술품 전시 후원을 택한 새클러 가의 모습과 분명히 대조된다. 여기서 찾아가는 시위는 하나의 행위 예술이 된다. 숨겨지길 바라고 눌러져 있기를 원하는 목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전시관 중심에 서게 된다.

 

골딘은 자신의 성을 팔아 돈을 마련하여 살았고, 새클러 가는 누군가를 죽여가며 얻은 피 흘린 돈을 세탁하며 살아갔다. 정말 더럽게 번 돈은 무엇일까.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세상에 발을 디뎌낸 낸 골딘의 모습과 대비되는 새클러 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짓밟을 타인의 삶이 필요했다. 무지한 환자가 있어야만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모습은 거대한 자금과 거대한 빌딩 사옥에 가려진다. 낸 골딘을 화제 인물로 만든 ‘성적 의존의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는 의존과 자립 사이의 투쟁을 상징한다. 과연 누가 의존적이며 누가 자립적인가.

 

실은 누구보다 의존적인 새클러 가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하며 산다. 미술관 곳곳에 후원의 이름을 남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한, 있지만 없는 이들의 있음을 대변하는 낸 골딘. 치부조차 드러내려는 그녀의 예술과 삶은 치부를 가리려는 새클러 가와 또 한 번 대조된다.

 

저항할 수 있다면 희생자가 아니다

이즈는 사실 동성애 문제로만 매도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건강 보험 제도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교회와 정치권은 이를 동성 간(특히 남성 간) 성관계를 하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낸 골딘은 그런 이들을 데리고 전시회를 열며, 위대한 예술을 정하는 것은 교회도 국가도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천명한다. 에이즈 환자가 작가인 전시회를 열면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가.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인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서체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것 또한 다분히 정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의 글 전시회 또한 정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에이즈 환자들은 세상에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쓴다. 사회와 제도는 그들을 지우려 하지만, 거기에 저항한다. 저항하는 것.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자로서 죽으려 한다.

 

음 챕터에서 새클러 가의 제약회사 퍼듀파마의 파산신청 이야기가 나온다. 벌금, 보상금 지급을 피하고자 말이다. 새클러 가가 백억 달러 이상을 회사 밖으로 빼돌렸다. 이 돈을 몰수할 형사법상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낸 골딘과 연대하는 이들은 끝없이 시위한다. 챕터 제목 그대로 ’도피수단‘으로서 파산 신청한 새클러 가에게 끝없이 따라붙어, 자기가 당면한 문제 앞에 도망치지 않는 용기로 한 걸음씩, 서로 어깨동무하고 같이 드러눕고 한 목소리가 되어서.

 

지막 챕터 제목은 ’자매‘다. 낸 골딘의 언니는 권력(부모)의 무관심과 억압으로 인한 희생을 당했다. 책임지려 하지 않고 부정하는 권력(부모+새클러 가). 낸 골딘을 만들어 낸 삶도, 낸 골딘이 지금 살아가는 삶도 결국 시작은 거기다. 고아원으로 쫓겨나 커튼을 불태우고 탈출한 낸 골딘의 언니에게 붙은 편견의 꼬리표. 그러나 그녀는 그저 House가 아닌 Home을 원했을 뿐이다. 살아있을 수 있는 집. 존재 그대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집.

 

음 국가가 만들어질 때도 그랬다. 개인이 존재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제도를 위해 연대하고 계약하며 국가를 만들었다. 국가는 비실존체이나 개인은 실존한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국수주의 등 비실존하는 이념에 개인이 점차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거대한 Home이 되어줘야 한다. 그러나 개인을 머릿수로 계수하려는 House가 되려는 순간, 그 속에 수없이 죽어가는 개인을 숫자 몇 개 바꾸는 것으로 대체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로 전락해 버린다. 삐딱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삐딱한 시선은 언제까지고 주변인들에게 좌파니 빨갱이니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유혈사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결국 유혈사태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조금 멀리서 응원하게 된다.

시태라 시태라
3 Lv. 1696/1740P

공포, 한국 로맨스 빼고 거의 다 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6

  • Sonatine
    Sonatine
  • Robo_cop
    Robo_cop

  • 이상건
  • 해리엔젤
    해리엔젤
  • MJ
    MJ
  • golgo
    golgo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탐욕으로 미국에 마약중독자들을 무수히 만들어낸 새클러 가에 저항한 아티스트 이야기라던데.. 꽉 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10:57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golgo
호불호는 충분히 갈릴 수 있고, 영화로서 완성도는 아리송하긴 하지만...의의 자체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21:14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이상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21:14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Robo_cop
졸고를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날아갈 것 같네요
21:14
24.06.04.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2025년 3월 17일 국내 박스오피스 golgo golgo 45분 전00:01 309
HOT 폴 러드 <어벤져스: 둠스데이> 출연 가능성 언급…“루... 카란 카란 1시간 전23:20 429
HOT 셀린 송 ‘머티리얼리스트‘ 뉴 포스터 1 NeoSun NeoSun 2시간 전22:26 581
HOT <노스페라투>(2025)를 보고 나서 (스포 X,추천) - 로... 7 톰행크스 톰행크스 2시간 전22:22 383
HOT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포스터와 스틸 3 시작 시작 2시간 전22:06 873
HOT 내년 오스카상 사회도 코난 오브라이언이 맡는다 2 시작 시작 2시간 전22:00 544
HOT '미키 17'에 영향을 준 지브리 애니메이션들 1 golgo golgo 2시간 전21:52 938
HOT <더 폴: 디렉터스 컷> 18만 관객 돌파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21:23 446
HOT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 20만 관...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9:21 628
HOT <콘클라베> 15만 관객 돌파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6시간 전18:38 835
HOT 루소 형제 '일렉트릭 스테이트' 해외 단평 - 넷플... 7 NeoSun NeoSun 6시간 전18:02 1949
HOT 버라이어티 칸 프리미어 예측 : 짐 자무쉬 '파더 마더 ... 2 NeoSun NeoSun 7시간 전17:18 726
HOT 일본영화 킹덤4 대장군의 귀환 블루레이 개봉기 2 카스미팬S 7시간 전17:08 368
HOT [오리지널 티켓] No.135 플로우 2 무비티켓 7시간 전17:04 692
HOT 14년작) 위플래쉬 코돌비에서 보고 온 후기입니다. 10 갓두조 갓두조 8시간 전16:22 877
HOT 나타지마동요해 깨어난 포스 제치고 역대 영화 흥행 5위 5 밀크초코 밀크초코 9시간 전15:14 840
HOT 17세에 칸 품었던 에밀리 드켄, 43세 나이로 사망 5 시작 시작 10시간 전14:44 3255
HOT 일본 공포 영화 [사유리] 4월 16일 개봉 2 시작 시작 10시간 전14:38 975
HOT 폭싹 속았수다 8화까지 단평 4 왕정문 왕정문 10시간 전14:04 2347
HOT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마츠시게 유타카 내한 ... 3 golgo golgo 10시간 전13:51 1186
1170033
image
NeoSun NeoSun 31분 전00:15 129
1170032
image
golgo golgo 45분 전00:01 309
1170031
image
카란 카란 1시간 전23:20 429
117003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22:57 335
117002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22:28 390
1170028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22:26 581
1170027
image
톰행크스 톰행크스 2시간 전22:22 383
1170026
image
시작 시작 2시간 전22:06 873
1170025
image
시작 시작 2시간 전22:00 544
1170024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21:52 938
117002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21:23 446
1170022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20:58 702
1170021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20:54 426
1170020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4시간 전20:43 404
1170019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9:40 655
1170018
normal
동네청년 동네청년 5시간 전19:26 537
1170017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9:21 628
1170016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6시간 전18:38 835
1170015
normal
영화를읽다 영화를읽다 6시간 전18:29 632
1170014
normal
영화를읽다 영화를읽다 6시간 전18:16 665
1170013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18:07 417
1170012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18:04 399
1170011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8:02 586
1170010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8:02 1949
1170009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8:01 475
1170008
image
Balancist Balancist 7시간 전17:34 744
1170007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7:18 726
1170006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7시간 전17:17 421
1170005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7:13 423
1170004
image
카스미팬S 7시간 전17:08 368
1170003
image
무비티켓 7시간 전17:04 692
1170002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6:53 250
1170001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16:41 638
1170000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16:41 709
1169999
normal
KimHakim 8시간 전16:37 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