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 감상문(스포)

시태라 시태라
1003 6 8

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했다. ‘투쟁’이라는 단어는, 사실 공산주의 해체 이후 다소 낡은 이념어로 고착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20세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휴전국가에 발 붙이고 사는 우리 역시 크게는 북한과, 작게는 우리 삶의 비아(非我)와 투쟁 중이다. 신채호가 말한 ‘아(我)’는 개인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라는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투쟁도 있지만, 좀 더 이타적이고 거국적인 연대를 통한 투쟁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요?

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는 막다른 궁지에 몰려있던 이들의 연대와, 그 연대의 시발점인 낸 골딘의 삶을 동시에 그려낸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이타적인 연대라는 것은 꼭 그 동기부터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낸 골딘의 투쟁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거나, 거대 기업의 횡포를 반드시 꺾어 시민 개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거창한 이념이 묻어나진 않는다. 그녀는 거침없이 말한다. ‘새클러 가에 대한 나의 분노는 개인적인 것이죠.’ 낸 골딘 및 그녀와 연대하는 이들의 동기는 사실 거대 기업이 고의로 망가뜨린 개인의 삶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그들의 횡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 동기가 때론 유혈사태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래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보도는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

 

국 출신의 세계적 기자 옵솔 형제의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불편한 좌파들의 시위를 정당화하는 편향된 영화라고 하겠으나, 되려 묻고 싶다. 이토를 쏴 죽인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인가, 독립운동가인가? 주관을 담지 하지 않은 사실 나열은 진실과 다르다. 그녀의 투쟁은, 영화 속에서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는 그녀의 ‘주관적인 삶 그 자체’를 들여다보지 않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클러 가는 중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약을 그대로 판매하여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양산해 냈다. 타인을 죽여가며 불린 유산이 영화 챕터 2에 비치는데, 동시에 낸 골딘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며 얻은 자산을 보여준다. 영화는 대체로 챕터 제목에 의거하여 끊임없는 비교 대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히 이 챕터에서는 사진을 접하게 된 낸 골딘이 사진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때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피사체로 등장한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빛에 반사된 자기 자신의 객관적 모습을 보며 주관적이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녀는 남들이 담기 원치 않던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드러냈다.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드렉 퀸의 삶을 살아간 그(그녀)들의 모습을 찍어주고 세상에 드러내었던 낸 골딘은, 자신의 추악함을 숨기기 위해 돈세탁을 하는 수단으로 미술품 전시 후원을 택한 새클러 가의 모습과 분명히 대조된다. 여기서 찾아가는 시위는 하나의 행위 예술이 된다. 숨겨지길 바라고 눌러져 있기를 원하는 목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전시관 중심에 서게 된다.

 

골딘은 자신의 성을 팔아 돈을 마련하여 살았고, 새클러 가는 누군가를 죽여가며 얻은 피 흘린 돈을 세탁하며 살아갔다. 정말 더럽게 번 돈은 무엇일까.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세상에 발을 디뎌낸 낸 골딘의 모습과 대비되는 새클러 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짓밟을 타인의 삶이 필요했다. 무지한 환자가 있어야만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모습은 거대한 자금과 거대한 빌딩 사옥에 가려진다. 낸 골딘을 화제 인물로 만든 ‘성적 의존의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는 의존과 자립 사이의 투쟁을 상징한다. 과연 누가 의존적이며 누가 자립적인가.

 

실은 누구보다 의존적인 새클러 가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하며 산다. 미술관 곳곳에 후원의 이름을 남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한, 있지만 없는 이들의 있음을 대변하는 낸 골딘. 치부조차 드러내려는 그녀의 예술과 삶은 치부를 가리려는 새클러 가와 또 한 번 대조된다.

 

저항할 수 있다면 희생자가 아니다

이즈는 사실 동성애 문제로만 매도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건강 보험 제도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교회와 정치권은 이를 동성 간(특히 남성 간) 성관계를 하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낸 골딘은 그런 이들을 데리고 전시회를 열며, 위대한 예술을 정하는 것은 교회도 국가도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천명한다. 에이즈 환자가 작가인 전시회를 열면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가. 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인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서체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것 또한 다분히 정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의 글 전시회 또한 정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에이즈 환자들은 세상에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쓴다. 사회와 제도는 그들을 지우려 하지만, 거기에 저항한다. 저항하는 것.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자로서 죽으려 한다.

 

음 챕터에서 새클러 가의 제약회사 퍼듀파마의 파산신청 이야기가 나온다. 벌금, 보상금 지급을 피하고자 말이다. 새클러 가가 백억 달러 이상을 회사 밖으로 빼돌렸다. 이 돈을 몰수할 형사법상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낸 골딘과 연대하는 이들은 끝없이 시위한다. 챕터 제목 그대로 ’도피수단‘으로서 파산 신청한 새클러 가에게 끝없이 따라붙어, 자기가 당면한 문제 앞에 도망치지 않는 용기로 한 걸음씩, 서로 어깨동무하고 같이 드러눕고 한 목소리가 되어서.

 

지막 챕터 제목은 ’자매‘다. 낸 골딘의 언니는 권력(부모)의 무관심과 억압으로 인한 희생을 당했다. 책임지려 하지 않고 부정하는 권력(부모+새클러 가). 낸 골딘을 만들어 낸 삶도, 낸 골딘이 지금 살아가는 삶도 결국 시작은 거기다. 고아원으로 쫓겨나 커튼을 불태우고 탈출한 낸 골딘의 언니에게 붙은 편견의 꼬리표. 그러나 그녀는 그저 House가 아닌 Home을 원했을 뿐이다. 살아있을 수 있는 집. 존재 그대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집.

 

음 국가가 만들어질 때도 그랬다. 개인이 존재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제도를 위해 연대하고 계약하며 국가를 만들었다. 국가는 비실존체이나 개인은 실존한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국수주의 등 비실존하는 이념에 개인이 점차 희생당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거대한 Home이 되어줘야 한다. 그러나 개인을 머릿수로 계수하려는 House가 되려는 순간, 그 속에 수없이 죽어가는 개인을 숫자 몇 개 바꾸는 것으로 대체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로 전락해 버린다. 삐딱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삐딱한 시선은 언제까지고 주변인들에게 좌파니 빨갱이니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유혈사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결국 유혈사태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조금 멀리서 응원하게 된다.

시태라 시태라
3 Lv. 1646/1740P

공포, 한국 로맨스 빼고 거의 다 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6

  • Sonatine
    Sonatine
  • Robo_cop
    Robo_cop

  • 이상건
  • 해리엔젤
    해리엔젤
  • MJ
    MJ
  • golgo
    golgo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탐욕으로 미국에 마약중독자들을 무수히 만들어낸 새클러 가에 저항한 아티스트 이야기라던데.. 꽉 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10:57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golgo
호불호는 충분히 갈릴 수 있고, 영화로서 완성도는 아리송하긴 하지만...의의 자체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21:14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이상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21:14
24.06.04.
profile image
시태라 작성자
Robo_cop
졸고를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날아갈 것 같네요
21:14
24.06.04.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데드풀과 울버린] 호불호 후기 모음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3일 전11:41 16487
HOT 악마의 공놀이노래 (1977) 긴다이치 코스케 수작. 스포일러 ... BillEvans 1시간 전23:50 237
HOT 2024년 7월 27일 국내 박스오피스 2 golgo golgo 1시간 전00:01 684
HOT 이렇게 좋은 노래들이 많았다니! 1 진지미 2시간 전23:11 429
HOT (*스포) <데드풀과 울버린> 데드풀 군단 카메오 6 카란 카란 5시간 전20:40 1774
HOT (*스포) <데드풀 & 울버린>에서 깜짝 등장한 배우 2 카란 카란 4시간 전20:59 1685
HOT 코지마 히데오 '데드풀 & 울버린' 리뷰 1 NeoSun NeoSun 4시간 전20:53 747
HOT (*스포) 레이디 데드풀의 비하인드 스토리 2 카란 카란 6시간 전19:33 1455
HOT 데드풀과울버린 잠실월드타워 팝업스토어 다녀왔습니다 ㅎㅎ 4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19:24 824
HOT <데드풀과 울버린> 촬영지에 다녀온 팬 2 카란 카란 6시간 전18:53 1224
HOT 라이언 레이놀즈, '데드풀' 1편때 테스트 푸티지 ... 1 NeoSun NeoSun 7시간 전17:46 1858
HOT [데드풀과 울버린] 3일째 박스오피스 1위…골든에그지수는 85... 3 시작 시작 7시간 전18:29 1131
HOT [데드풀과 울버린] 울버린 19금 액션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 10 사라보 사라보 11시간 전14:17 1327
HOT '위키드' 파리올림픽 프로모영상, 뉴 티저 3 NeoSun NeoSun 9시간 전16:42 622
HOT '롱 레그즈' 오늘 '기생충' 앞지르고 ... 3 NeoSun NeoSun 9시간 전16:45 2165
HOT 데드풀과 울버린 시네마 스코어 9 호러블맨 호러블맨 12시간 전13:31 1359
HOT <슈퍼배드4>를 보고 4 폴아트레이드 9시간 전16:37 614
HOT The Sound of Music Cast Then and Now 5 totalrecall 9시간 전15:58 338
HOT SDCC '에일리언 로물루스' 패널 무대에 페이스허... 2 NeoSun NeoSun 9시간 전15:49 739
HOT 에디 레드메인 '더 데이 오브더 쟈칼' 첫 스틸들 1 NeoSun NeoSun 10시간 전15:43 566
1145683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00:45 290
1145682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00:42 171
1145681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00:38 244
114568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00:36 141
1145679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00:26 153
1145678
image
golgo golgo 1시간 전00:01 684
1145677
normal
리틀디 1시간 전00:00 308
1145676
image
BillEvans 1시간 전23:50 237
1145675
normal
방랑야인 방랑야인 2시간 전23:28 447
1145674
image
진지미 2시간 전23:11 429
1145673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23:10 680
1145672
normal
Pissx 2시간 전22:53 363
1145671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22:20 416
1145670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3시간 전22:12 361
1145669
normal
Pissx 4시간 전21:35 696
1145668
image
golgo golgo 4시간 전21:06 913
1145667
image
카란 카란 4시간 전20:59 1685
1145666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20:53 747
1145665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20:42 322
1145664
image
카란 카란 5시간 전20:40 1774
1145663
image
Sonatine Sonatine 5시간 전19:56 897
1145662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9:33 1455
1145661
image
전단메니아 전단메니아 6시간 전19:24 824
1145660
normal
Andywelly 6시간 전19:08 362
1145659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6시간 전18:55 305
1145658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8:53 1224
1145657
image
시작 시작 7시간 전18:29 1131
1145656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7:53 545
1145655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7:50 569
1145654
image
NeoSun NeoSun 7시간 전17:46 1858
1145653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17:40 480
1145652
normal
발바로사 8시간 전17:39 510
1145651
normal
도삐 도삐 8시간 전17:27 731
1145650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17:25 549
1145649
image
NeoSun NeoSun 8시간 전17:24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