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스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보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이 연출한 1974년 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중년 여성과 모로코 이민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청소부 에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술집으로 들어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독일에 아랍인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던 그 술집엔 평범한 노동자 알리가 그녀에게 다가와 춤을 청합니다. 둘은 에미의 집으로 향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막차 시간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려던 알리를 붙잡는 에미. 둘은 결국 한 침대를 쓰게 됩니다.
에미가 대략 스무 살 정도 많은 나이임에도 둘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소울메이트가 됩니다. 이 기쁨을 세 명의 자식에게 알린 에미이지만 자식들은 그 자리에서 분노를 하고 티비까지 부수고 말죠. 가족과 이웃의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만 결국 그 틈을 비집고 갈등이 조금씩 일어납니다.
70년대 뉴저먼 시네마의 선두주자이자 파스빈더의 대표작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볼 기회는 수십 번도 넘게 있었지만 잘 손이 가지 않았다가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생겨 놓치지 않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직접 출연하기까지 한 파스빈더는 실제 파트너이라고 알려진 알리 역의 벤 살렘과 에미 역의 브리지트 미라의 당시엔 상상하기도 힘든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마 현재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 이주민 문제를 좀 더 파고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선 나이 차와 인종문제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알리의 캐릭터는 마치 <행복한 라짜로>의 라짜로처럼 순수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스스로의 3인칭으로 부르면서 티 없이 순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미 또한 <아이 엠 러브>에서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틸다 스윈튼의 모습과는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알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감정을 솔직히 보여줍니다.
사랑에 빠져 불안해하는 에미에게 고향인 모로코의 속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잠언을 알리는 말해줍니다. 사실 어법에 맞지 않은 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고 하네요. 낯설고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인 알리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30대 후반에 요절한 파스빈더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에너지로 비교적 많은 작품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그의 대표작을 스크린으로 보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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