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을 보았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을 보았습니다.

오늘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김지운 감독은 '대중성' 이란 측면에서 봉준호, 박찬욱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창작자 이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매끈한 미장센과 과감한

전개는 김지운 만의 개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밀정>으로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그가 <인랑>에서 삐끗 하고
절치 부심끝에 개봉한 영화가 바로 <거미집> 입니다.

이 리뷰를 읽는 시점에선 누구나 결과를 아는 <거미집>은

<인랑> 보다 더 끔찍한 악몽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매끈함을 좋아하는 성향탓에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어지간 하면 피해 왔지만, 이번 <거미집> 은 시대극이란
설정과 영화속 영화를 다루는 액자 구조에 회가 동했습니다.

영화의 기본 내용은 이러 합니다. 스승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감독 김열은 이미 완성한 영화 '거미집' 의 새로운 엔딩의 꿈을 반복해서 꿉니다. 엔딩을 바꿔 걸작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한 김열은 영화사와 검열, 배우들의 방해를 이겨내 새로운 엔딩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앞서 김지운 감독의 스토리 텔링, 연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저는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영화속 영화 '거미집'의 완성도에 놀랐습니다. 특히 제일 처음 등장하는 히치콕을 연상케 하는 그 송강호의 꿈 장면은 몇번이고 되돌려 보고 싶은 명장면 입니다.

또 배우들의 연기 역시 감독의 연출과 상상력안에서 발휘된다고 볼때 본 작품의 연기력은 훌륭합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연기력을 발휘한 배우는 '임수정' 배우로 캐릭터의 서사가 빈약함에도 불구 하고 영화속 연기와 현실의 연기 모두 주연으로서 중심을 잡아 줍니다.

뻔한 악역이지만 뛰어난 딕션으로 입체감을 살린 베테랑 박정수 배우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다만, 중반 이후 존재감을 잃은 오정세 배우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고 (물론 제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입니다만)

보이시한 캐릭터를 잘 살려낸 전여빈 역시 주목할만 합니다.

정수정 배우는 어쩌면 캐릭터에 갇힐 한계를 벗어나려 노력한 모습이 눈에 띕니다.

송강호배우는 어디서나 많이 본 송강호..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 이 영화에서 송강호 배우는 주연인 동시에 주연이 아닌 (감독이란 역할이 그렇듯) 배역이란 점에서 보면 납득이 갑니다.

이야기의 흐름역시 다소 복잡할수 있는 군상극을 흥미롭게 잘 풀어갑니다. 이리저리 꼬인 이야기의 실타래가 맥거핀으로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잘 풀어낸 것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결론으로 말해 <거미집>은 블록버스터 와 같은 영화는 아니지만,
베테랑 김지운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은 소극입니다.

그런데 그 소극의 완성도가 꽤 훌륭한, 대가가 만든 라면 같다 랄까요.

여담으로 <거미집>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계의 어둠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소회 처럼 도저히 흥행할 구석이 보이지 않던 <조용한 가족>이 흥행에 성공했던 당시보다 오늘의 관객이 훨씬 보수적 이란 해석이지요.

꼭 관객이 새로운 시도에 반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것을 싫은 것으로 해석하는 시대의 슬픔 이랄까요.

그나마 관객의 지갑이 너그러울 추석 즈음을 선택했어야 하는 제작자의 고난이 느껴진 작품 이었습니다.

ps. 영화를 보고나니 고전영화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ps1. 사실 이 리뷰를 쓰는 이유는 김지운 감독에게 좋은 영화를 잘 보았다는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유가 더 컸습니다.

ps2. 항간에서는 영화가 난해해서 재미가 없어서 망했다는 차가운 평도 보이지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거미집 보다 훨씬 더 개똥같은 편집으로 완성하는 모 영국계 미국 감독의 영화도 흥행하는 판국에 말이죠. 재미 없다는 평가 역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재미는 주관적이지만, 관객의 이해력과 결부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ps3. 그래도 코미디는 많은 부분이 아쉽습니다. 영화의 제작과정을 미루어 보아 시나리오를 각색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이해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