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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보고 (스포O, 스포주의)

폴아트레이드
466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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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봉준호 키즈의 입봉작으로 언론에 홍보되고 있는, 유재선 감독의 신작 <잠>을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컨셉이나 장르가 기대가 됐던지라 개봉일에 만나고 왔네요.
다만, 영화 특성상 스포일러를 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부득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점 유의 바랍니다.

 

1.
94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각본이 굉장히 콤팩트하게 짜여져 있는데, 이미 여러 곁가지에 대한 확답도 다 구성한 상태에서 주된 플롯 외에는 과감히 가지치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막을 여는 5분 간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이야기의 시작점(또는 설정이나 발단)을 거두절미하고 보여줍니다.

 

2.
영화는 크게 3장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막이 러닝타임의 30분 즈음까지인데, 프롤로그부터 곧바로 꺼낸 램수면장애라는 아이템을 본격적으로 여러 에피소드로 보여줍니다.
또한 램수면장애로 인한 여파로 수면클리닉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제법 순탄하게 전개됩니다.


사실 1막은 오컬트 장르에서 익숙히 봐왔던 귀접 에피소드라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서도 생활밀착형으로 녹여내면서 장르 문법을 활용해 긴장감을 유지시킬 줄 알고 1장의 종결법 또한 충격과 연속성을 적당히 가지는 기본기가 충실합니다.

 

3.
짧은 러닝타임에도 장 구조를 띄어서 충분히 설득가능한 간극을 두고 1장에서 2장으로 전환되어 제법 많은, 시간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령 1장에서는 임산부로서 주인공이 가지는 공포감을 다뤘다면, 2장에서는 아이가 출산하면서 가중되는 공포감을 다룹니다.
2장에 들어서면서, 특히 러닝타임의 50분 가량이 되면서 이야기의 판도가 뒤집힙니다.

 

생활밀착형 혹은 현실감을 있는 공포, 스릴러에 무당이 등장하면서 유사 오컬트 장르로 전개됩니다.
2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정유미 배우가 연기하는 ‘수진’이라는 인물이 시달리는 고통을 적극적으로 그려내더니 2장 후반부터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들이 얼핏 연상될 정도로 공포스럽게 인물을 묘사합니다.

 

4.
씬과 씬 사이, 그러니까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과감한 생략도 좋고 오줌을 비로 연결하는 유기성도 무척이나 좋습니다.
눈을 강조하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공포 연출로 다시금 언급하지만 기본기도 탄탄하고요. 
꽤 간결한 플롯이지만 군데 군데 이미 완성되어 있고 확장성 있는 설정들이 무심코 지나가서 눈 여겨 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꽤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는 한부모 가정이고, 모두 어머니가 가장으로 꾸려져 있다는 거죠.

 

5.
러닝타임의 65분 즈음부터 3장이 시작되는데 신인 감독의 과감한 질주랄까요.
사실 이전에 에피소드나 묘사는 참신하지는 않았는데 3장에서부터는 과감한 덕분에 신선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호불호가 나뉘겠지만 부적으로 도배된 온 집 안에서의 붉은 빛의 빔 프로젝트나 (플래시백이 아닌) 프레젠테이션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식이 참신하더군요.
각본이 잘 써졌다고 느껴지는 게 귀접 대상에 대한 복선의 뉘앙스 전달과 암시를 드러내고 이후 복선을 회수하는 타이밍을 늦추지 않아 리듬감과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6.
엔딩까지 보고나면 아마 3장의 현실적 고민거리가 개입되면서 1장에서 느꼈던 현실감과 동떨어지는 감상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현실성보다 영화의 텍스트에 근접해있고, 컨셉과 맞닿아 있게 쓰여서 감상법에 따라 감상이 차이가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계속 노출되는 가훈(‘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한 문제는 없다’), 그러니까 신뢰에 대한 텍스트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서 해답을 도출해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반신반의 하는 상황 속에서 표면상으로 어느 한 인물의 입장이 사실일 수도 있으면서도, 반대로 사실여부를 떠나 한 인물을 위해 연기하는 이중적인 결론을 냅니다. 
그런 점에서 이선균 배우가 연기하는 ‘현수’라는 인물이 배우라는 점에서 각본이 영리하고 군더더기 없게 쓰여졌다고 보이네요.

 

근래 스마트하게 쓰여진 공포 영화 각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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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or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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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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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오 시간을 재면서 보신건가요? 상세한 후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조예가 깊으시네요
23:28
23.09.06.
letsfg
시나리오 공부할 겸 영화 볼 때 1~3막의 러닝타임을 체크하는 습관이 있어서요.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민망하네요.. 감사합니다!
23:33
23.09.06.
2등
진짜 오랜만에 나온 재밌으면서 작품성도 좋은 수작이에요
23:30
23.09.06.
profile image 3등
저도 뜬금없이 아리 애스터를 떠올렸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니까 감독이 참고하긴 했을 것 같네요.^^
23:57
23.09.06.
golgo
2장 후반부터 아리 애스터의 영화들이 얼핏 오버랩 되더라고요. 아리 애스터의 단편들도 찾아봤었는데 유재선 감독님이 참고 했을라나요~ ㅎㅎ 즐거운 추측이네요
00:04
23.09.07.
저도 아까 제 후기글에는 쓰지는 않았었는데 보는내내 유전이나 미드소마 느낌이 얼핏 나더라구요(뭐 워낙 유명한 영화이니까)
특히 배경음들.
근데 저는 좋았던 초중반에 비해서 후반부는 개인적으로는 별로여서 전체적으로는 그냥 soso 했네요
01:10
23.09.07.
마스터2012
아리 애스터 감독 단편들 찾아보시면 더 오버랩 되실 것 같아요. 같은 생각 하신 분들이 많군요!^^
저는 후반부가 좋았는데 호불호가 나뉘다보니 오히려 전반부가 좋으셨나봐요! 모쪼록 저는 콤팩트하게 잘 나왔다고 생각되네요 ㅎㅎ
01:15
23.09.07.
폴아트레이드
저도 신인감독이 요즘 트렌드의 독특하고 오묘한 공포장르를 한국식으로 보여준거는 솔직히 칭찬을 충분히 받을수있다고 봅니다 ㅎㅎ
다만 후반부가 그렇게 끝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다고 생각했네요
01:47
23.09.07.
마스터2012
영화 하나에 여럿 감상이 나뉘니 그래도 흥미로운 건 사실이네요 ㅎㅎ
09:09
23.09.07.
profile image
제가 쓰려다만 후기 보는 것 같네요.ㅎㅎ 공감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데 기생충이 생각나더라구요.
봉준호 키즈인줄 몰랐는데 영화속에 조금 묻어난 것 같긴 하더라구요.
03:32
23.09.07.
허니

오 제가 누군가 쓰고픈 글을 썼다는 생각에 기분 좋네요ㅎㅎ 괜스레 ㅎㅎ 감사해여

07:57
23.09.07.
profile image

각본과 연기력, 연출만 된다면 돈으로 떡칠안해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정확한 증거같은 영화였어요
저도 작성하신 후기에 격공합니다~!

11:01
23.09.07.
ReMemBerMe
격공 감사해요~ 뭐 그래도 큰 영화의 재미도 엄연히 있긴 하긴 하죠 ㅎㅎ 그렇다고 작은 영화의 힘을 무시하면 안되죠~!!
12:30
23.09.07.
profile image

제 글에도 적었지만 저는 이선균 원맨쇼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유미님의 연기도 좋았었어서 놀랐네요.
마지막 장면서 이선균 연기가 리얼했으면 정말 헷갈렸을거 같은데
결말해석에 대해 나눠지는거 보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초반 장면들에 비해 발연기 같다해야하나
그래서 마지막에 흥이 좀 깨졌었는데, 이걸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ㅋㅋ;;
그래도 신인감독 치곤 이 정도 퀄리티 뽑기가 쉽지 않는데
이거를 높게 보고 싶어요. 곡성 생각도 많이 났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11:47
23.09.07.
갓두조
헉 전 정유미 배우의 원맨쇼에 가깝다 생각했는데!
전 결말이 영화의 텍스트와 맞닿아 있고 신선한 착상에서 인물의 설정도 잘 활용할 줄 알고 여러모로 좋았어요! ㅎㅎ
감사해요
12:29
23.09.07.
profile image
폴아트레이드
중간 설명이 좀 생략되었는데, 1장까지 보고 이선균이 23아이덴티티처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유미가 미치는 순간부터
영화 다 끝나고, 정유미가 잴 기억에 남더군요 ㅎㅎ 무엇보다 영화가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
12:31
23.09.07.
아리 애스터 감독 말씀해 주시니 공감가네요ㅎ 오늘 봤는데 깔끔한 작품이었습니다~
21:23
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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