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에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언급된 이유? (스포)
영화 오펜하이머 초반부에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가 언급된 장면 기억하시나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는 오펜하이머가 등장했는데요.
아주 짧게 스쳐지나가듯 나왔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봤는데, 놀라운 사실들이 꽤 있었습니다.
영상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는 실제로 아는 사이였다?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는 실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1966년 맥카터 극장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레퀴엠 칸티클스>가 초연되었는데요.
이 자리에 오펜하이머가 있었다고 해요.
곡에 깊은 감명을 받은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이 곡을 틀어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초연 4개월 이후 그의 장례식에서 ‘레퀴엠 칸티클스’가 울려 퍼졌죠.
장례식 음악을 스트라빈스키의 곡으로 미리 정해놓았을 정도로 그는 생전에 스트라빈스키에게 적잖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2. 미국 물리학자와 러시아 음악가의 공통점
무관해 보이는 이 둘의 사이엔 여러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대적인 배경인데요.
스트라빈스키가 활동하던 1900년대 초엔 고전, 낭만 음악을 거쳐 이전엔 없던 혁신적인 음악이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1908년엔 쇤베르크에 의해 ‘무조음악’의 시대가 열렸고,
1913년 파리에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발표되며 ‘리듬의 혁명’이 열렸습니다.
작곡가들에게는 혁신과 실험의 장이 열렸지만, 청중들에게는 불친절한 현대음악의 세계가 열린 겁니다.
이전 시대의 음악들과 비교해서 ‘음악’이라 말하기 어려운 선율이 대다수였던 건 물론 청중들의 마음도 울리지 못했죠.
20세기 초 현대음악은 말 그대로 ‘혼돈의 음악’이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불가능했던 원자핵 분열이 가능해지며 거대한 전환점이 마련됩니다.
오펜하이머는 그 대변혁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며 인류를 혼란스러운 평화의 시대로 안내했죠.
물리학계와 음악계는 분명 다른 영역이지만, 두 사람이 주도한 혁신이 발전과 혼란을 동시에 야기했다는 사실은 상당한 공통분모처럼 느껴집니다.
3. 봄의 제전과 원자폭탄
두 사람이 탄생시킨 결과들은 모두 충격적인 후폭풍을 불러왔습니다.
특히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불길한 사운드와 경련을 일으키듯 뒤틀리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불쾌함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죠.
그가 반영한 러시아식 이국성이 당대 음악계에서 허용되던 그로테스크의 최대치를 상회한 겁니다.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파괴력을 염려하면서도 끝내 실험을 강행해 만들어 낸 대량살상 무기인 만큼 사람들에게 원자폭탄은 단순한 두려움 그 이상의 공포를 전달했습니다.
많은 이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이외에도, 이 무기를 사용하는 걸 쉽게 저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도 만연해졌는데요.
결국 두 사람이 빚어낸 결과는 미지의 세계가 선사하는 공포를 자아냈지만,
결과적으로 각 분야가 나아가고 추구해야 할 발전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이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물리학과 무관한 음악,
더 나아가 그 음악을 창조한 이의 서사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본질을 다각도로 표현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충돌하는 원자들만큼 복잡미묘한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외에도 오펜하이머와 스트라빈스키가 추구한 민족성에 대해 설명한 파트도 있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 보시고 의견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짧게나마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인 5
댓글 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몰랐던 부분인데 잘 짚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