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2023) 스포일러 약간 있음.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DNA는, 지금은 사라진 헐리우드 대하사극 -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십계, 벤허 등이다.
영화의 길이와 예산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 하고, 등장인물이 활동하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입체적이고 포괄적으로 파악하려 하는 그 태도까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빠른 스피드와 날렵한 스타일 그리고 재치 있는 구성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지루한 영화가 될 것이다.
예산은 천억원대에 불과하지만, 그 대신에 다른 것들을 물쓰듯 낭비한다. 영화 속 시간과 공간들 말이다. 대하사극은 이래야 한다.
오펜하이머의 성공에는 미국인들의 자존감과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인들에게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불을 가져다 준 위인이니까 말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다.
사차산업혁명시대에 잠시 주춤하고 있는, 국제적 주도권을 놓아 버리고 있는 현재 미국에게 자존감을 주는
영화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이 영화가 어떨까?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처럼,
전세계인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류사의 프로메테우스는 아니다.
영화가 너무 정적이고 늘어지는 감이 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스피드가 느린 것 같지 않다.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답답함이 있다.
"나는 죽음이 되었다" 이 메세지를 영화 속에서 얼마나 반복하는가?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이런 말을 내뱉어 버리는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이것을 직접 체험하도록 하여야 하지 않았을까? (이 말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괴로워하는 오펜하이머를 조롱하면서 대통령이 하는 말이다. "누가 직접 원자폭탄을 만들었는지 사람들이 관심이나 기울일 지 아느냐, 사람들은 내가 원자폭탄을 만들었다고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원자폭탄의 위협과 인류사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권력의 종속물로 정치역학적으로 파악하는 의견이다.)
"다 알고 있거든? 인간 오펜하이머의 육성을 들려 줘"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펜하이머가 영화의 훌륭한 주연감인지도 의문이다.
뼛속까지 학자이고, 사실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것이 별로 없다.
차라리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가 연기한 루이스 스트라우스가 더 훌륭한 주연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평범남 살리에리에 해당하는 인물이니까, 열등감과 분노 그리고 평범하다는 것의 슬픔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조국을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세계적인 석학들을 애써 모아놓았는데,
석학들은 인류를 멸망시킬 지도 모르는 원자폭탄을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려 획책하는 루이스 스트라우스를
경멸한다. 말도 안 섞으려 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에 아주 근접해 있을 듯하다.
이런 집중력을 가지고 이런 대가적인 연출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인류사적 사건을 "탐구"해 낸 영화가 또 있을까?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라는 영화가 한 때 이런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사람 귀에 쏙 들어오는 음모론과 자극적이고 화려한 선동기술로 관객들의 얼을 쏙 빼 놓는 뮤직비디오같은 영화가 JFK이다. 이에 반해,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쌓아나가가서 결국 수천 페이지짜리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대하소설같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진짜 대가라는 단어에 걸맞는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사건에 걸맞는 집중력 강하고 탐구적인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즉 세 시간을 견디어내고 나면, 대단한 영화사적 사건을 겪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사실이다. 볼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볼 필요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대단한 영화사적 사건인 영화들은 많다.
추천인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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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도 애들 이야기에서 속도가 느려지거든요.
오우 무빙은 친절한편이죠 각 에피별로 인물서사를 다 잡아주잖아요 오펜은 그의 서사도 다소 생략되어있습니다
절대 쉬운 영화는 아니어서....
개봉하고 나면, 호불호 꽤 갈릴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