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리뷰][바빌론] 왜 망했는지 알겠는데 마냥 까기에도 아쉬운 그런 느낌적 느낌

어린 시절 친구따라 한동안 다녔던 교회의 경험과 성인이 되고 깔짝깔짝 습득한 성경 지식에 따르면
바빌론은 오래전 번영했으나 그 세속적 타락으로 환란을 겪고 사라져 잊혀진 도시이고
그보다 앞서 신에게 도전한 인간의 무모한 도전인 바벨탑이 세워졌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미언 셔젤의 신작 타이틀을 '바빌론'으로 붙인 것은
짧은 기간 번영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또는 무너진) 무성영화와 그 속의 쇼맨들을 다뤘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광이나 영화학/영화사 전공자들이야 무성영화 시절까지 섭렵하겠지만
저같은 경우엔 고작해야 채플린의 작품과 소수의 명작 정도만 보았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유성영화와 테크니칼라가 도입되면 개화한 골든에이지의 헐리우드 스튜디오 작품들이 익숙해요.
그리고 매우 당연하게도 무성-유성으로의 전환기의 인상은 황금기의 끝에 만들어진 '사랑은 비를 타고(1952)'에 빚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보충이 필요하다면 21세기에 이를 흑백무성으로 리바이벌 한 '아티스트(2011)' 정도가 더해지겠고요.
감독은 바로 이 시기의 헐리우드의 명암을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서술하려 합니다.
시작부터 20여분이 넘게 이어지는 파티 장면은 흔히 '퇴폐와 향락'이란 표현으로 일축하는 그 시절의 일면을
매우 집약시켜 영상으로 펼쳐보여주는데요, 아무래도 현대적 터치가 조금 더해지긴 합니다.
약물과 성, 욕망과 방종이 판치는 가운데 주요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해주는 파티씬이 끝나면
타이틀 바빌론이 떡 찍히며 앞서 언급한 성서 속 도시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이후 각각의 인물을 병렬로 서술하며 그들의 흥망성쇠를 그리는 이야기의 변곡점은 유성영화의 등장입니다.
펼쳐지는 상황과 갈등은 앞서 언급했던 작품들에서 묘사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그 작품이나 바빌론 모두 실재 인물과 사건을 참조했기 때문이고 심지어 영화의 엔딩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직접 언급되며 그 속의 인물을 '바빌론'의 인물과 오버랩시키기도 합니다.
다만 그 사연을 보다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라로이의 첫 유성영화 촬영 장면처럼) 인물들의 이야기도
매우 어두우며 동시에 집요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선 영화들과 차별점을 가집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과격하고 노골적인 표현들이 필요했는가는 의문인데요.
똥,오줌으로 프롤로그를 연 작품은 술과 마약, 섹스(그리고 토사물?)를 거쳐 피와 눈물로 끝이 납니다.
매니의 52년 극장 장면으로 끝내기도 아쉬운지 21세기까지의 영화역사 몽타쥬 작품 같은 것도 끼워넣고
이런 결말엔 테크니컬러도 책임 있어요 외치고 싶은지 RGB도 정신없이 보여주고 그럽니다.
이 과정에서 막판에 시간 잘못 알고 들어온 관객이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어 아바타 상영관이네?'라고 돌아갈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연출적으로 과잉이고 욕심에 차 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영화를 위해 앞뒤 따지지 않고 뭐든지 저질러 버리는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말이죠.
이런 태도가 아마도 바빌론에 대한 대중의 불호에 일조하였을 겁니다.
과격한 표현들만 거둬낸다면 매우 익숙하다 못해 평범한 서사거든요.
영화가 대중에게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할 또 하나의 이유는 캐릭터도 있을 겁니다.
화려한 캐스팅에 많은 등장인물들에도 불구, 영화는 이야기의 초점을 제때에 옮겨가며 잘 맞춰주고 분배도 적절해 보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정이 가는 인물이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하나같이 난장판 인생들이라 관객이 깊숙히 이입할 수가 없다는 거죠.
의도된 극본이고 연출이라는 건 알겠지만 라라랜드 감독이 그리는 고전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세계를 기대한 사람들은
충공깽 상태로 중간에 튀어나가거나 엔딩에서 '뭐지? 시네마 천국.. 뭐 그런 건가?' 아노미가 왔을 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드미언 셔젤의 작가로서 이고(ego)가 지나치게 도드라진 영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전작 '퍼스트맨'도 좋은 작품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돈을 쓴 작가주의 영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욱 짙어진 것 같고, 그것이 흥행실패에 큰 몫 했을 것 같다는 거죠.
(제작에 1억불 태웠으면..... 어느 정도 타협은 필요했고 충분히 여지도 있었는데 대차게 3시간짜리 찐19금을 만들었으니...)
하지만 개인적으론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흥미로운 부분도 많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2차시장으로 넘어오면 적어도 한 번은 더 다시 보게 될 것 같고요.
감독의 장기인 영상미나 음악 측면에서도 꽉 들어차서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기도 합니다.
장단이 분명한데 단점이 너무 강해서 대중픽은 힘들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가 처음 주목을 받고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립을 세우는
'무어' 역할을 사마라 위빙이 연기하는데... 라로이의 최후를 생각하면 아마도 의도한 캐스팅이겠지요.
두 배우는 예전부터 닮은 꼴로 유명했으니까요.
++
브래드 핏이 연기한 잭 콘래드의 매니저 조지 역으로 루카스 하스가 출연하는데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요
제 기억엔 깡마른 배우였는데 나이 때문인지 역할 때문인지 제법 살집이 붙어서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 나이가 들수록 '백 투더 퓨쳐'의 브라운박사님 크리스토퍼 로이드랑 닮아가네요. ㅎ
+++
이 작품을 관통하는 레퍼런스인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은 영화에 나온 것처럼 1952년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더 전에 만들어진 영화로 여태 알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실존 인물과 겹쳐 보일 캐릭터들이 많으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야 가능한 얘기였겠네요.
또, 52년이면 한국전쟁의 한 가운데인 시기이기도 합니다. 같은 시간에 미국에선 저런 비주얼로 '옛날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 시절 어르신들이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쌀국이 얼마나 신세계로 보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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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를 타고는 지금 봐도 세련돼 보여서... 정말 그 시기의 한국 사람이 봤다면 충격 그 자체였을 것 같아요.

이게 1952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게 충격이었어요
바빌론 다시 보기전 보면 좋을꺼 같아서 봤는데 의외의 경험이었입니다



제목이 영화를 본 저의 심정이었어요ㅎㅎ 제가 느낀 점과 비슷해서 이 글을 보니 머리에서 정리가 잘 되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