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호러 - 6개의 밤 가운데 홀 (2022) 굉장한 수작이다. 스포일러 있음.
굉장히 짧은 영화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주 인상적이고 강렬한 공포를 선사한다. 웬만한 공포영화들 중 수위에 놓을만한 작품이다.
저예산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안동 고택같은 것 하나 빌려놓고 배우 둘이 연기하는 것이 다다. 하지만 그 공포는 대단하다.
감독의 역량이 대단함은 한 눈에 분명하다.
어느 거대한 한옥에서 장님인 노인을 돌보면서 견습수녀 복녀는 단조로운 삶을 산다. 신부가 봉사활동 겸 수련의 목적으로 파견한 것이다.
척 보아도 어린 소녀인 복녀는 굉장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장님인 노인은 나무토막이나 마찬가지라서 무서울 것 없다.
하지만 복녀가 잠 드는 자기 방 창호지 창문에 누가 구멍을 뚫고 엿본다. 그리고 그 구멍은 매일밤 늘어난다. 무슨 유령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살인자도 없다. 그냥 방 창호지에 구멍이 늘어난다. 이 단순한 것으로 엄청나게 화끈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연출이라기보다 묘기다.
하지만 이 공포가 잘 먹히는 이유는 이것이 사회적인 것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뚫리는 "구멍"을 복녀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처녀성 상실에 대한 어린 소녀 복녀의 공포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견습수녀인 복녀에게 순결은 종교적 상징과 연결되는 것이다. 어쩌면 복녀는 종교적 순결로부터 자기를 일탈시킬 성적인 쾌락을 무서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공포가 배가되는 것은 그 성적 침탈의 대상이 혐오스럽게 생긴 노인이기 때문이다. 이 장님이 노인이 아니라 잘 생긴 젊은이였다면, 복녀와 장님 간 관계는 섹슈얼 텐션이 넘치는 그런 밀당관계였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살이 찌고 눈이 멀고 생체활동이 둔해져서 마치 나무토막같은 노인이다. 섹슈얼 텐션이라기보다는, 노인에 의한 일방적인 관음증 및 성적 침탈 (이라고 복녀는 의심한다)일 뿐이다. 얼굴이 넓적하고 좀 간사하게 기름져 보이는 노인의 모습은 어린 소녀가 바라보는 전형적인 노인의 인상이리라.
복녀는 처음에는 이 구멍을 불쾌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매일밤 그 구멍이 늘어난다. 그녀는 점차 노이로제에 걸리다가 나중에는 광기 비슷한 것에 사로잡힌다. 주연여배우 연기가 좀 과장되고 설익은 감은 있지만, 복녀의 심리 변화를 아주 강렬하고 화끈하게 에너지로 밀어붙인다. 원숙한 배우가 완급조절하면서 뻥하고 폭발시키는 그런 연기가 아니라, 젊은 여배우가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와 광기를 마구 쏟아붓는 그런 느낌이다. 무제한의 에너지를 가진 젊은이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연기다. 그런 연기가 이 영화에는 맞는다. 이렇게 되니까, 그 구멍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녀의 광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복녀는 칼을 들고 노인의 방을 찾아간다. 노인이 실제 구멍을 뚫었든 아니든 그녀 공포의 원인이 되는 노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 점은 지금 페미니즘 현상을 상징하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넓어지는 것은 이때부터다. 복녀를 먼저 칼로 찌르는 것은 노인이다. 마치 나무토막으로 보이던 노인이지만, 그는 사실
복녀가 광기로 물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노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포다. 나는 장님이고 혼자 무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날 돌보는 유일한 사람이 광기로 점차 물들어가며 자기 생명을 위협하니 말이다. 노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어도 훌륭한 공포영화였으리라. 복녀가 자길 찌르기 전에 노인이 먼저 복녀를 칼로 찌른다.
하지만 복녀는 겨우 눈동자를 칼로 찔렸을 뿐이고 자기 칼로 노인을 찔러 죽인 다음 토막낸다. 순결성을 가진 복녀는 그것을 침탈하는 사람에게 잔인하다.
어쩌면 이 에피소드는 지금 세대를 상징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노인세대는 엄청난 자산을 독점하고 앙상하게 늙어간다. 이 거대한 저택에 노인과 공존하지만, 복녀는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그저 노인을 돌볼 뿐이다. 그는 복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 엄청난 부는 그것을 채워줄 누군가의 활동이 없기 때문에 공허하다. 노인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심리적 혹은 생리적 공포 혹은 시대적 사회적 공포, 종교적 공포를 다 아우르는 거대한 것이다. 관객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이 집안이 사회라고 볼 수도 있고, 권력자의 권력 안이라고 볼 수도 있고, 종교적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점은 탁월하다.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너무 저예산이고 또 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주제를 응축해서 상징적으로 강렬하게 관객들을 향해 쏘아낼 뿐이고 그 이상 정교하게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정도만 해도 굉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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