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헤어질 결심> 리뷰를 짤막하게 남겨봅니다.

바닷물은 손으로 뜨면 손바닥이 비칠 만큼 맑지만,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아래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이 바다와도 같은 영화였어요. 청녹색 바다 앞에 서서 '맑구나, 하지만 아득하고 깊구나'를 떠올리게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서래와 해준이 경찰서 밖에서 만나는 중요한 씬마다 비와 눈이 내립니다. 둘의 사랑이 잠깐 땅을 적시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사랑은 안개가 가득한 습한 이포에서 결말을 맞게 됩니다. 벽에 자라난 쿰쿰한 곰팡이처럼 거슬리는, 그리고 지우기 힘든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것입니다.
청녹색은 누군가가 보면 파랑색, 누군가가 보면 녹색을 띱니다. 서래가 즐겨입는 옷 색이기도 한데요, 서래 캐릭터가 그런 모호함을 가장 잘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철저히 살인마이면서 누군가에겐 불쌍한 여자, 또 누군가에겐 사랑의 대상이니까요.
영화에서 죽음을 주도한 펜타닐도 청녹색입니다. 죽음 역시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습니다. 펜타닐을 먹게 되어 죽음을 맞이한 자들은 오히려 좋아한 걸 보면요. 이처럼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호함을 물에 잉크를 푼 것처럼 부드럽고도 천천히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마침내' 파도처럼 결말이 몰아치듯 관객을 덮칩니다. 해준에게 이 사랑은 미결 사건이 되어 영원히 그를 맴돌 것입니다. 아무리 깊은 바다에 빠트려도 발견되고 재생되는 핸드폰 녹음 파일처럼, 서래는 영원에 빠져 해준 곁에서 재생될 것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보는 사람마다 여러 감상을 낳을 수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돌산처럼, 모래성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간만에 극장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보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려가기 전에 몇 번 더 관람해야겠어요. 여기 저기 입소문도 내야겠습니다.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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