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날씨의 아이 후기...나는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가 좋다.
너의 이름은이 처음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보았고, 날씨의 아이가 처음 개봉했을 때도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그 때 날씨의 아이를 보고 나와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좀 더 대중적인 작품은 너의 이름은이지만 좀 더 나은 작품은 날씨의 아이다. 너의 이름은이 광어회라면 날씨의 아이는 복어회나 홍어회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비슷한 소재를 비슷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러다보니 유사한 장단점을 가진다.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은의 후속작으로써 전작의 장점을 답습하고, 단점을 개선못한 점이 대중들에게는 실망감으로 돌아올 것이다. 따라서 두 작품이 나오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너의 이름은은 현재보다 저평가를, 날씨의 아이는 현재보다 고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 뒤로 이 두 작품이 재개봉하면 한번씩 보다보니 극장에서 총 4회를 관람하게 되더군요. 각각 회차가 늘어날 때마다 아래와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1회차 : 나는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가 좋다.
2회차 : 나는 여전히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가 좋다.
3회차 : 나는 아직도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가 좋다.
4회차 : 나는 확실히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가 좋다.
복어는 광어보다 회를 만드는데 있어 난이도가 높습니다. 홍어는 광어보다 맛이 독특하죠. 너의 이름은이 날씨의 아이보다 다루기도 편하고, 내용도 무난하게 뽑아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더 다루기 어려운 소재로 더 독특한 내용을 뽑아냈기 때문에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를 좀 더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 호다카
사실 날씨의 아이를 홍어회, 복어회로 만들어지게 된 가장 큰 지분을 호다카가 가지고 있습니다. 타키, 미즈하, 히나와 다르게 호다카는 호불호가 갈릴만한 캐릭터입니다. 가출을 왜 한 것인지 이유가 나오지 않으며, 총을 습득하고 그걸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진짜 총인지 알게 된 이후 왜 그걸 경찰에 반환하지 않는 것인지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죠. 히나가 서류 위조를 하는 행위를 하지만 그 이유가 생계를 위해서였고, 이해가 가는 사유였으니 히나에 대해서 관객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저 나이대의 어린 아이들이 항상 이해가 가는 행동만 하지는 않습니다. 미성숙한 어린 아이의 행동이 그럴수도 있지뭐...정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감점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2. 어른
이 작품은 너의 이름은에 비해서 확실히 어른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케이스케는 호다카를 구해주었다는 이유로 밥과 술을 얻어먹고, 숙식 제공이라는 이유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문제에 얽히기 싫다고 나중에는 호다카를 해고하죠. 술집 건달은 가게 앞에서 자고 있다는 이유로 호다카를 괴롭힙니다. 숙박업소 주인은 호다카가 비 맞고 왔다고 청소하기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경찰은 호다카와 히나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은 그렇다쳐도 경찰은 그냥 자기 할 일을 한 것인데 부정적인 세력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어른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 드러납니다. 호다카와 히나의 편을 들어주는 어른은 나츠미밖에 없습니다.
3. 결말
사실 결말부의 개연성이 없는 것은 너의 이름은이나 날씨의 아이나 똑같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아무 근거없는 미즈하 말만 듣고, 발전소를 폭파하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날씨의 아이에서 건물에 타이밍 딱딱 맞춰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나 개연성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날씨의 아이에서 너의 이름은보다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는 것은 결말의 전개방식 차이 때문입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여 그것이 공공의 이득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각자의 기억을 잃는 개인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됨으로써 그 개인의 희생은 보상을 받게 되었지요. 타키와 미즈하는 해야할 일이 명확했고, 그에 따라 고민과 갈등없이 그 한가지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지요. 갈등의 여지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관객이 딱히 비판할만한 요인도, 불편함을 느낄 요인이 없습니다.
날씨의 아이에서는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여 그것이 공공의 이득을 해치게 되었고, 그 결과 국토를 잃는 공공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지속되어 그 공공의 희생은 끝까지 감수하게 되었지요. 호다카는 개인의 이득과 공공의 이득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고, 애초에 호불호가 갈리는 호다카의 선택이었기에 관객 역시 이 선택에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품에서 마음에 안드는 요인이 있으니 단점이 더 부각됩니다.
호다카의 선택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 호다카는 이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아야하고, 그러한 세계를 만든 어른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져야 합니다. 어차피 미쳐버린 세계 따위, 그런 미쳐버린 세계를 만들어낸 다른 누군가들을 위해서 굳이 히나가 희생할 가치를 호다카는 느끼지 못할 것이기에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겠지요.
이 결말의 차이 때문에 두 작품이 나오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너의 이름은은 현재보다 저평가를, 날씨의 아이는 현재보다 고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독특한 호다카라는 캐릭터에 의한 놀라운 선택 이후에 무난한 타키라는 캐릭터에 의한 당연한 선택을 제시한다면, 더 대중적인 작품이기는할 테지만, 전작의 개성이 희생된 안정성에 치우친 작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봅니다.
추천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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