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스등'(1944) 리뷰-영화 '가스등' 속 '가스라이팅'
사진=네이버 영화
얼마 전 배우 서예지가 사과문을 냈다. 그러자 과거에 불거진 사생활 논란에 대한 사과 없이 컴백하려는 데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서예지의 과거 행적 중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전 남자 친구를 향한 '가스라이팅'이었다. 당시 해당 논란으로 인해 가스라이팅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모든 단어에는 근원이 있기 마련이다. 가스라이팅도 그렇다. 이 말은 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스릴러 연극 '가스등'(1938)에서 출발한다. 이후 영국에서 그의 연극이 영화화(1940)되었고, 1944년에는 '로얄 패밀리 오브 브로드웨이'(1930)·'여인의 계단'(1981) 등을 연출한 조지 큐커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연출했다.
어느 날,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다.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고, 피해자의 조카이자 유일한 상속자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는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배우던 폴라는 그레고리 안톤(샤를 보와이에)과 사랑에 빠지고, 성악을 그만둔다. 이후 그녀는 안톤과 결혼을 하고, 남편의 청에 따라 런던에 있는 이모의 집으로 이사한다. 이모의 집에서 사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폴라는 그곳에서 남편과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런던으로 이사 온 이후, 남편은 그녀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방에 있던 폴라는 방에 있는 가스등의 불이 희미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치 남편의 정신적인 학대 때문에 위태로워진 자신의 자존감처럼.
안톤과 폴라의 집은 한쪽에서 등을 켜면, 다른 방에 있는 등의 불빛이 작아지는 구조다. 그래서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의 불빛이 줄어드는 설정이 중요하다. 영화를 보면 작품 속 가스등이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영화는 가스라이팅 수법, 가해자·피해자의 행동 양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런던으로 이사한 초기, 안톤은 폴라를 탓하며 비난한다. 그녀가 이모에 대한 생각에 젖어 들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는 가스라이팅 수법 중 하나인 '비난'이다. 이에 폴라는 안톤의 눈을 응시하면서 "잊을 건 이모가 아니라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에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폴라는 성악 선생과 안톤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안톤은 아내를 속이고, 잘못을 뒤집어씌우면서 비난한다. 이는 가스라이팅의 수법인 거짓말과 비난이다. 이 과정에서 폴라의 정신은 흔들리고,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그녀는 남편의 가스라이팅이 있을 때마다 위축되고, 눈은 초점과 힘을 잃어 버린다. 심지어 남편의 눈치를 살피고, 지친 모습까지 보여준다. 여기서 가스라이팅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신을 불신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안톤은 폴라의 외출을 제한한다. 이로써 가스라이팅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한다. 부인을 고립시켜서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폴라의 각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폴라는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 가스라이팅의 희생양이 된다.
영화 '가스등'의 원작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창조한 연극이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의 주요 수법과 단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동 양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미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는 내러티브를 포함한다.
러닝 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되는데 전개가 빠르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남편으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신에서 폴라를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은 초점 잃은 눈을 보여주었다. 또 남편 앞에서 안절부절하지못하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의 불안하고 위축된 심리를 현실적으로 보여줬다. 4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한 배우의 위엄을 알 수 있는 연기였다. 이사 온 집에서 이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 때문에 어두워지는 폴라의 표정,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숏이 있다. 이 숏으로 아픔과 트라우마에 잠식된, 그의 심경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안톤을 의심하던 브라이언 경관의 행동에 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스포일러 때문에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럼에도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잘 묘사했고, 40년대 작품이고 흑백인데도 세련되어 있다. 몰입감도 높다. 이에 영화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오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평점-4/5
추천인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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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나온 용어라니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