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1980) 한 시대를 집약한 걸작
하명중, 정윤희, 최불암, 이대근 주연의 추리물이다. 추리물이라고하기에 뭐하다. 주인공인 형사는 목격자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다닌다. 그러면 목격자들은 하나 하나 자기가 아는 사건의 파편에 대해 말해준다. 이것들을 다 합치면 사건은 저절로 해결된다. 주인공 형사 오병호는 주체적으로 나서서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 그냥 기록자 혹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찾아헤메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1970년대 ~ 1980년대 한국영화의 나쁜점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괜히 슬퍼하고 감상적이 되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것 - 각본도 울음을 터뜨리고 배우들도 음악도 감독도 카메라도 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신파조다. 절제와 균형미같은 것이 없다. 각본이 좀 허술하다. 중요한 사건을 차근차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로 다 때우고, 뜬금없이 저 사건이 왜 일어나냐 하는 것들도 있다. 대사가 좀 오글거리는 것도 있다.
그래서 한때 이 영화를 범작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 영화에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시대를 집약해서 포착해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신파조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집약적으로 정직하게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에이다.
양조장 주인 양달수가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형사 오병호가 이 사건을 배당받는다. 오병호는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 출신이지만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승진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오병호는 차가운 추리기계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열혈에 걸핏하면 감격하고 가슴 뭉클해지는 사람이다. 범인과 목격자를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해서 사건에 개입하고 사건을 만들어내고 사건 당사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괜히 같이 억울해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추리물 주인공으로서는 낙제이지만, 이 영화의 목적은 사건 해결이 아니다. 관객들과 사건 배후에 있는 시대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의 동시대성을 체험하고 일체화되도록 하려는 것이니까, 오병호같은 캐릭터가 맞는 선택이다.
양달수 살인범은 누구일까? 추리물이라면 이 질문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나, 이 영화에서는 그냥 손쉽게 해결된다. 양달수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 당시 청년단장이다. 왜 여기 꽂혔는지 모르겠지만, 오병호는 이 사실을 파고든다. 오병호는, 양달수가 체포한 빨치산 부대장을 찾아가서 당시 있었던 일을 듣는다. 그러면 빨치산 단장은 누굴 소개해준다. 또, 그 사람은 다른 누구를 소개해준다. 이렇게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다 듣다보면, 범인이 누군지 이야기해주는 사람까지 나온다.
1950녇대 지리산에서 조여드는 국군의 포위망에 대항해 싸우던 빨치산대장은 자기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자기가 가졌던 빨치산 운영자금을 몰래 지리산 외진 곳에 묻고 그 지도를 빨치산 부대장에게 준다. 자기 딸 정윤희를 돌봐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청년대장 이대근은 그 자금을 노리고 정윤희를 겁탈하고 이를 알고 있는 빨치산 대원 최불암에게 살인죄를 덮어씌워 감옥에 보내 20년을 살게 한다.
이 영화는 추리물이라기보다 로드무비다. 당시는 교통도 불편했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없었던 시대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오병호가 이 사람 저 사람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연결해주기 전까지, 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파편적인 사실들을 합하여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 진실을 알 수 없었다. 지리산에 이 파편이 숨어있고 강원도 해안가에 저 파편이 숨어있고 기타등등한데 어떻게 누가 전모를 다 파악해서 시대의 아픔이라는 것을 입체적으로 구축해낼 수 있었을까, 오병호가 나서기 전에는 말이다.
오병호는 자가용도 없고 인터넷도 사용하지 못하는 시대에, 터덜터덜 걸어서 지리산, 전라도 시골, 강원도 해안 덕장, 서울 등을 구석구석 헤멘다. 그 외진 곳들에 쳐박혀 숨어있는 진실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찾아내서 붙여모은다. 이 과정이 굉장히 고난에 찬 고통스런 것이다. 오병호는 차가운 혹한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혹은 무서운 폭풍우 속에서 뺏속까지 젖어 혼자 황야를 헤멘다. 토굴같은 방에서 다 죽어가는 노인과 밥상을 같이 하기도 하고, 지리산에 오르기도 하고, 방석집에서 창녀와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명태를 말리는 덕장 토굴같은 방에 앉아 다리 없는 장애인에게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든 이들은 그들이 살았던 과거와 함께 죽어가고 있다. 이들이 죽으면 과거 빨치산 토벌 때 있었던 비극적 사건과 억울한 음모같은 것도 그냥 묻혀버릴 것이다. 오병호는 진실이 그들과 함께 죽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한다. 그리고 진실에 접근할수록 진실과 일체가 되어간다.
이 영화는 빨치산 대장 딸 정윤희와 억울하게 18년을 옥살이한 최불암 그리고 그들을 모략한 기회주의자 이대근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1980년 당시 이들에 대해 파헤친 오병호에 대한 영화다. 당대 문제를 다루고 당대의 상황을 집약한 영화다.
왜 정윤희와 최불암의 억울한 사정은 수십년 동안 억지로 묻혀져야 했을까? 영화는 여기 대해 침묵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이념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사회 때문이다. 오병호는 정윤희와 최불암의 억울한 사정에 접근하기 위해, 이 이념 중심 사회를 해체해야 했다. 빨치산을 토벌한 청년단장 이대근이나 그들을 취조한 검사는 모두 이념 중심 사회에서는 영웅이다. 오병호는 이 영웅들의 신화를 파괴한다. 아니, 이들이 기회주의자이자 비열한 방법으로 정윤희 최불암같은 억울한 사람들을 낳았음을 폭로함으로써 그 신화를 밑바닥부터 전복시켜버린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주제는 이 영화가 개발한 것이 아니다. 당시 영화들이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던 주제였다. 말하자면, 당대의 시대적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모두가 고민하고 생각했던 문제를, 이 영화가 가장 잘 예술적으로 구현해내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대를 가장 잘 집약하고 표현해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오병호는 정윤희와 최불암의 억울함을 친구인 기자를 통해 전국에 알린다. 그리고 사회적인 반향을 끌어내어 적극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모든것을 잃고 살인자가 되고 결국 정윤희와 최불암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대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순교자가 된 것이다. 정윤희와 최불암의 억울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속에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고 만 때문이다. 이런 열정이 결국 파멸을 가져오는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이 영화는 그냥 어떤 주제를 영화화한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아주 재밌는 로드무비이자 형사물이다. 정윤희와 최불암이 억울함하게 당했다면 이익을 본 무리도 있을 것이다. 오병호가 진실에 도달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심지어 그를 죽이려까지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액션씬과 스릴러 장면이 생기게 된다. 양달수와 정윤희 그리고 최불암 사이에 로맨스가 생기게 된다. 양달수와 정윤희가 지리산으로 금괴를 찾으러 가는 장면이나 국군과 빨치산의 총격전같은 역사물도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이념의 객관화가 아니라, 풍부한 드라마가 들어있는 재밌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주연배우 하명중의 열연을 첫째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인텔리의 예리함과 연약함 그리고 갈등을 표현하기에 최적화된 얼굴과 분위기 연기력을 갖고 있어 이쪽 역할로 특화되어 많은 걸작들을 남긴 배우다. 그의 최고작들 중 하나에 들 것이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나 존재감이 하명중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하명중의 역할이 전체 영화의 70퍼센트는 되니, 다른 배우들의 평범한 연기는 영화 전체 성공에 큰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
영화의 세련됨이 좀 부족한 듯도 하지만, 날 것 그대로 현실을 다룬 생생함, 직접성, 비극성으로 이런 부족을 메꾸고도 남는다. 오히려 덜 세련됨이 어떤 표현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P.S. 이 영화는 정직한 것이기에 당대 인식의 한계 또한 반영하고 있다. 가령, 이념 중심 사회를 가져온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냥 사람들의 휴머니즘이 부족해서 이런 억울한 사람들이 생겼다 식의 감상적이고 단순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 양달수는 나쁜 사람이 맞지만, 그가 담당했던 시대적 임무는 없었을까? 왜 그는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남은 물고기처럼, 순수악으로 단순화해서 그려졌을까? 빨치산 대원이었던 최불암은 너무나 순수하고 착해서 시대적 희생양이 되었다 하는 식으로 단순화해서 마치 성인처럼 그리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리고 이런 단순화를 얼버무리기 위해, 신파조 격정 울음같은 감정적 소모로 영화를 덮어버리려 한다. 적어도, 지적이고 입체적 접근방법은 아니다. 이것 또한 시대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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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로 사서 봤는데 정윤희 배우 진짜 이쁘더라고요.
요즘 태어나셨음 어땠을지...
여러 모로 80년대 초반 풍경들을 담은 장면들이 무척 재밌었습니다.

훌륭한 경험하셨군요. 참 부럽습니다.


